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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문화원 파행사태의 정점에 서 있던 권연옥(73․천안시 문화동) 전 천안문화원장이 지난 4일자로 공식 사퇴했다. 2005년 2월 4일 원장 취임 이후 3년여만. 2006년 9월 직원 성추행 사건으로 사퇴여론이 불거진 뒤 1년 10개월만에 이뤄진 자진사퇴다.

 

천안문화원 파행사태의 핵심인물인 권연옥 전 원장은 스스로 물러났지만 올해로 개원 54주년을 맞는 천안문화원은 이미 망신창이가 되어 식물문화원으로 전락한 지 오래. 원장 사퇴를 기화로 천안문화원이 파행사태를 종식하고 정상화를 실현할 수 있을까? 아직은 불투명한 상황이다.

 

4일 이사회 개최, 권연옥 전 원장 사퇴 받아들여

 

지난 4일 오전 11시 천안문화원 2층 회의실에서는 2008년 제4차 천안문화원 이사회가 열렸다. 이사회에는 권연옥 전 원장을 비롯해 천안문화원 30명 이사 가운데 17명이 참석했다. 불참한 이사 가운데 6명은 위임의사를 밝혔다고 문화원측은 전했다.

 

기자들은 배제하고 경찰과 시 공무원의 참관만 허락한 채 비공개로 한시간 가량 진행된 이날 이사회에서 권연옥 전 원장은 사의를 공식 밝혔고 이사들은 원장의 사퇴표명을 반대없이 의결했다. 원장 직무 대행으로는 2명의 부원장 가운데 연장자인 (주)충남신호 대표인 임병현(53) 이사가 선임됐다.

 

이사들은 당분간 부원장의 원장 대행체제를 유지하고 후임 원장의 선출 시기는 이사회를 다시 열어 결정키로 했다. 현재 공석인 사무국장 자리는 회계운영과 사무총괄을 위해 빨리 채용해야 한다며 모집공고를 통해 인사위원회에서 심사 뒤 서면으로 이사회 승인을 받기로 했다.

 

권연옥 전 원장은 사퇴표명에 앞서 경찰과 검찰이 자신을 상대로 조사한 몇 가지 혐의에 대해 수차례 해명했다. 권 전 원장은 자신이 원장으로 재선출된 지난 1월 문화원 총회의 적법성 논란과 천안문화원 업무방해 혐의에 대해 경찰과 검찰의 조사결과 하자 없음으로 밝혀졌다고 언급했다. 또 문화원 예산의 개인 횡령 혐의도 경찰과 검찰의 조사결과 문제 없는 것으로 판명됐다고 여러번 강조했다.

 

이날 이사회에서는 권 전 원장의 업무추진비 사용과 문화원 차입금과 관련한 사항도 논의됐다. 이사들은 문화원 파행사태에 따른 자금난으로 수개월동안 권 전 원장에게 지급 안 된 매달 200만 원의 원장 업무추진비와 원장 개인이 문화원 운영비로 차입한 금액을 문화원 정관에 명시된 대로 지급키로 했다.

 

이에 따르면 문화원의 시 예산 지원이 재개될 경우 권 전 원장은 재임기간 동안 받지 못한 상당한 액수의 업무추진비와 개인 차입금을 지급받게 된다.

 

권연옥 전 원장의 사퇴 배경, 검찰 수사, 사무국장 사퇴 작용한 듯

 

원장 사퇴 후 권 전 원장은 이사 자격으로 4일 이사회 회의장을 끝까지 지켰다. 이사회가 끝난 뒤 권연옥 전 원장은 사퇴배경을 묻는 질문에 즉답을 피했으며 향후 이사 신분 유지에 대해서는 "돈을 낸 만큼 있어야 되지 않느냐"며 유지의사를 피력했다.

 

2006년 9월 직원들의 집단 사표와 직원 성추행 논란이 불거진 직후부터 지역사회에서는 권 전 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특히 권연옥 전 원장의 거듭된 항소와 상고에도 불구하고 2007년 11월 29일 대법원에서까지 권 전 원장의 성추행 혐의가 인정돼 벌금 500만원형이 확정되자 더 이상 원장 자리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가 권 전 원장은 자리를 고수했고 지난 1월 28일 천안문화원 2008년 총회에서는 권 전 원장을 비롯한 이사진의 동반 사퇴 뒤 다시 원장에 선출되기도 했다.

 

사퇴여론에는 등 돌린 채 원장에 재취임한 권 전 원장을 더 이상 용인할 수 없다며 지난 2월 1일에는 천안지역 20여개 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천안문화원 정상화를 위한 범시민대책협의회'(범대위)가 출범했다.· 같은 달 21일 천안역 광장에서는 '천안문화원 정상화 촉구 시민대회'까지 개최됐다.

 

그럼에도 꿈쩍않던 권연옥 전 원장이 최근 전격적으로 사퇴를 결행한 배경은 무엇일까? 경찰과 검찰의 계속된 수사에 따른 압박, 그리고 이정우 전 천안문화원 사무국장의 사퇴가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권 전 원장의 사퇴여론이 고조되고 범대위의 진정이 접수되자 경찰은 지난 3월 13일 천안문화원과 권연옥 원장의 자택 등 2곳을 압수수색했다. 경찰은 4월 23일에는 권 원장을 업무상 횡령 등의 혐의로 입건해 대전지방검찰청 천안지청에 송치했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그동안 전방위적으로 수사를 진행, 막바지단계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경의 계속되는 조사가 칠십을 넘긴 고령의 권 전 원장에게도 상당한 압박이 됐을 것이란 분석이다.

 

하지만 권 전 원장은 사퇴를 표명한 지난 4일 이사회 석상에서 자신의 혐의가 수사기관에서 이미 근거없음으로 판명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의 공식적인 수사발표는 없었다.

 

권 전 원장의 사퇴에는 이정우 전 사무국장의 사퇴도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천안문화원 파행사태가 불거지며 이 전 사무국장은 권 전 원장과 함께 인적 청산의 대상으로 지목됐다.

 

2007년 1월 횡령 등의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 기소된 이정우 전 사무국장은 같은 해 6월 1심에서 벌금 200만원을 선고 받았다. 1심 선고에 불복해 항소, 올해 6월 4일 2심 선고에선 횡령과 배임 혐의는 무죄를 인정받았다. 지난달 17일 이 전 사무국장은 사직서를 제출하고 자진 사퇴했다.

 

동반사퇴 대상으로 꼽혔던 이정우 전 사무국장이 스스로 물러난 이상 권연옥 전 원장도 계속 자리를 지키기는 부담이 컸을 것이라는 설명. 원장과 사무국장의 자진 사퇴로 천안문화원 파행사태는 또 다른 국면을 맞게 됐다.

 

천안문화원 정상화, 갈 길 '험난'

자격시비 논란 속 이사진 전원 사퇴 주장도 제기

 

사퇴여론이 제기된 두 사람은 천안문화원에서 스스로 떠났지만 당장 문화원 정상화를 기대하기에는 여건이 녹록치 않다.

우선 사퇴한 권연옥 전 원장을 비롯해 현 천안문화원 30명 이사진들이 자격시비에 연루되어 있다. 권 전 원장은 지난 1월 총회에서 원장으로 재선출된 뒤 이사진을 새롭게 구성했다. 그리고 그 이사진들은 권 전 원장이 물러난 지금, 문화원의 유일한 공식적인 의사결정기구이다.

 

하지만 지금의 이사진 가운데 절반을 넘는 20여명은 법적인 등기이사가 아니다. 법인등기사항증명서에는 지난 4일까지도 과거 이사진들이 그대로 등재되어 있다. 등기여부를 떠나 이들의 이사 선임 과정자체가 문제를 안고 있는 만큼 문화원 정상화를 현 이사진에 맡길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윤성희 천안예총 지회장은 "정당하지 않은 총회에서 선출된 원장이 입맛에 맞는 인사들을 중심으로 구성한 이사진이 자격이 있느냐"며 "현재의 이사진까지 모두 물러나 새판을 짜야 천안문화원 정상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윤 지회장은 또 "권 전 원장이 이사직은 유지한 채 원장직만 사퇴한 것은 진정성과 책임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행동"이라고 덧붙였다.

 

천안문화원 정상화를 문화원 인사들에게만 맡겨선 안 된다는 목소리도 있다. 천안문화원 이사를 역임한 한 인사는 "천안문화원은 재정의 70% 이상을 시나 도 보조금에 의존하면서도 외부의 관여나 자문, 협조체제는 미약했다"며 "새 이사진 구성에 공정성 시비를 불식하고 객관성을 지니도록 시나 시의회에 전권을 위임, 백지상태에서 출발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천안문화원이 뼈를 깎는 자성의 노력으로 전국 최고 문화원이라는 옛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까. 아니면 얼굴만 바뀌어 과거 퇴행적인 모습이 또 다시 반복될까? 천안문화원 정상화를 위한 관심과 노력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시점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천안지역 주간신문인 천안신문 486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윤평호 기자의 블로그 주소는 http://blog.naver.com/cnsisa


#천안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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