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산' 안착 직전 YTN
이명박 정부의 정책 및 인사 임명이 너무나도 다양한 분야에서 파열음을 내는 지금, 시민들이 가장 심각하다고 판단하는 문제 중 하나는 '방송 장악 기도'다.
시민들은 촛불을 방송사 앞으로 확장시키는 것으로 대응했다. 보수단체 회원들이 승합차에 가스통을 메고 돌진을 시도하거나 폭력 시비를 일으키는 것으로 맞대응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꺼질 촛불이 아니라는 것은 시위참가자들 스스로 가장 잘 알고 있다.
KBS와 MBC에 비해 관심은 떨어지지만, 일부 시위 참가자들이 가장 급박한 현실에 처했다고 판단한 방송사는 다름아닌 YTN이다. YTN은 이미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후보 시절 언론특보를 지낸 구본홍씨가 사장으로 내정돼 있다.
그가 정식 사장이 될지 안 될지는 오는 14일에 열린다는 YTN의 주주총회에 달려있다. 하지만, 시위참가자들은 YTN의 지분구조를 주목하면서 더욱 좌시해선 안된다고 판단하고 있다. YTN의 지분구조를 살펴보자.
*한전 KDN - 21.43%
*KT&G - 19.95%
*미래에셋 - 13.57%
*한국 마사회 - 9.52%
*우리은행 - 7.65%
'미래에셋' 이외엔 대주주 대부분이 공기업이나 정부출자기관이다. 시위참가자들과 YTN 노조 구성원들은 그래서 더욱 불안을 느끼고 있다.
시위참가자들이 다소 떨어지는 세인의 관심 속에서도 YTN 본사 앞에서 촛불을 끄지 않는 이유, 그리고 YTN 노조 구성원들이 시위참가자들과 더불어 촛불을 든 이유를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YTN 노조에 대한 연대의 목소리가 담긴 현수막을 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YTN 본사 앞, 환호성 속 마이크 잡는 심상정 공동대표
시위참가자들은 매일, 그리고 YTN 노조 구성원들은 매주 화·금요일에 촛불을 들고 집회를 열고 있다. 지난 4일 집회에서는 진보신당 심상정 공동대표도 방문해 더불어 촛불을 들면서 열렬한 박수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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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TN 본사 앞 촛불시위 찾아온 진보신당 심상정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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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형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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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프레스 프랜들리'를 거론하면서 소름끼쳐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프렌드'들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고 있고,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통'을 '통제'로 오인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노조위원장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현덕수 YTN 노조위원장이 자리에서 내려오실 때, 구본홍·최시중·이명박 등의 사람들을 같이 데리고 내려가실 수는 없을까?"
다음은 심상정 공동대표와 한 인터뷰다.
[심상정 공동대표] "민주화 20년 지났어도 시민들이 혜택 못 누려 죄스러워"
-심 대표가 18대 총선에서 낙선하신 것에 안타까움을 느낀 시민들이 많은데, 심 대표가 촛불정국에서 활약하시는 것을 보고 그 안타까움을 더욱 크게 느끼는 것 같다. 게다가, 노동운동을 하신 처지에서는 이명박 정부나 경찰의 '촛불'에 대한 대처 방식에도 느낀 바가 많을 듯하다.
"민주화를 이룬 지 20년이 넘었다. 시민들은 이제 그 혜택을 누리셔야 할 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리로 나서 민주주의 수호에 나섰다. 정치인으로서 죄스럽고 안타까울 따름이다. '촛불'이 승리할 수 있도록 믿음직한 대안 정치 세력의 발전을 이뤄내겠다."
-한나라당이 원내과반을 점했고, 소위 말하는 '친박' 세력까지 합친다면 18대 국회는 보수세력이 압도적인 세를 과시하고 있다. 제1야당이라는 민주당도 81석에 불과해 혼란을 거듭하고 있는 상황이라, 원외정당인 진보신당으로서는 한계를 더욱 뼈저리게 느낄 것 같다.
"야당은 대안 권력을 의미한다. 하지만 정부를 견제하고 신뢰할 수 있는 야당이 보이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 뿐만 아니라 국회에 대한 불신도 심각하다. 그런 의미에서 18대 국회를 제도적으로 제구성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야당 본연의 역할에 주목하고자 한다. 국민의 문제제기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정치다. 원외 야당으로서의 한계가 분명하지만, 그 본연의 역할을 주목한다면 믿음직한 대안 정치 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심 대표는 17대 의원 시절 블로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정치인이었다. 촛불 정국에 있어 블로거나 BJ와 같은 1인 미디어들의 활약을 주목하는 언론도 많다. '블로거 심상정'이 바라본 1인 미디어에 대한 관점을 이야기해달라.
"1인 미디어는 촛불시위가 준 가장 큰 충격이다. 이미 국민의 중요한 소통 수단으로 자리잡았다. 주권자인 국민이 원하는 바를 최대한 활성화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의미는 아닐까.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보수언론과 함께 압력을 행사하고 탄압을 자행하며 방송장악을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현실에서, 1인 미디어는 진실과 소통을 알리려 하는 '민주주의의 자원'이나 다름없다."
짧은 인터뷰였지만, 심상정 공동대표의 성실한 답변 덕분에 나로서는 알찬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다. 현덕수 위원장이 어렵게 심상정 대표의 방문을 이끌어냈다고 하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내가 뺏은 시간이 상당해서 다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내친 김에 또다른 인터뷰를 시도했다. 집회를 진행한 현덕수 YTN 노조위원장이다.
[현덕수 위원장] "이 싸움은 방송인으로서의 소명의식이 맞닿아있다"
-KBS나 MBC에 비해 YTN이 처한 현실을 알지 못하는 국민들이 많은 것 같다. YTN의 현실을 간단히 국민 여러분께 설명해달라.
"구본홍 내정자는 지난 대선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언론특보를 맡아 당선을 위해 앞장선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사장으로 취임한다면 YTN이 과연 치우침 없고 불편부당한 보도를할 수 있을까? YTN은 공기업의 지분이 대단히 많은 방송사다. 공기업이라면 공공성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둬야 하며, YTN 역시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다. 특히 YTN은 24시간 내내 뉴스를 취급하는 방송사 아닌가. 무차별적인 낙하산에 반대할 수밖에 없다."
-KBS 앞 촛불시위에서는, 언젠가 어느 시민이 자유발언에 나선 양승동 KBS PD연합회장에게 "당신들은 방송을 통해 싸울 의향은 없느냐"라고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그 질문을 YTN의 구성원에게도 던져보고 싶다.
"노조가 보도 편성에 개입할 수는 없다. 특히나 그쪽은 태도도 불투명하고 오히려 뒷짐진다는 식의 자세를 보이고 있다. 보도 편성에 목소리를 반영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촛불집회의 본질을 제대로 전달하고 의료보험 민영화 문제와 같이 '공공의 가치'가 흔들리는 사안 등을 집중적으로 전달해나가겠다는 각오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노조위원장으로서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곧, '위원장'이 아닌 일반조합원 중 1명으로 돌아가는데 앞으로 견지할 '일반조합원'으로서 자세를 이야기해달라.
"이 싸움은 방송인으로서의 직업 소명 의식이 맞닿은 싸움이다. KBS나 MBC와는 달리 YTN은 1995년 출범 이후에 이렇게 '국민의 방송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에 대해 명확하게 각오를 다질 계기가 없었다. 이제야 성장을 위한 진통을 겪는 것 같다. YTN은 지금 사춘기에 비유할 수 있으며 성장을 하는 과정이다."
-YTN 본사 앞에서 매일 촛불을 밝히고 있는 시민들에게 할 이야기가 있다면?
"우리는 직장의 문제지만, 그분들은 그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서주셨다. 고맙게, 그리고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 시민들의 그런 동참을 방송의 정립을 위한 움직임, 그리고 '방송계의 조중동'이 탄생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지극히 상식적이고 이치에 맞기 위한 것을 돌려놓기 위한 것이다."
현덕수 위원장은 무척이나 바빴을 것이다. 자유발언 진행하랴, 내 인터뷰 답변해주랴, 그래서 현덕수 위원장 본인도 사회를 맡는 도중에 나를 소개하면서 "이 분과 대화도 나누느라 지금 몹시 바쁘다"고 가볍게 언급했다. 소중한 시간을 뺏는 것 같아서 그들에게 미안했다. YTN의 현실을 단 1명에게라도 더 알리기 위한 것으로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율동'이 함께 한 즐거운 집회, 시민과 YTN 노조는 '하나'
비장했지만, 비장하지 않았다. 시민과 YTN 노조 구성원들이 함께 한 자유발언은 진심이 묻어져 나오면서도 한편으로는 경쾌했다.
"사실 YTN 본사 앞 촛불시위는 나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사태를 지켜보면서 '막 나가는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어 참지 못해 나왔다. 구본홍씨는 우리가 시위를 하든 말든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은 끝까지 지킬 것이다. 언론과 정부가 '국민'과 '시위대'로 나눠서 보도하고 있던데, 우리도 국민 아니냐. '천민'으로 몰고 '빨갱이'로 몰아도 끝까지 참여해 이기고 말겠다."
-아이와 함께 나온 어느 30대 여성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할 때, 베트남 국영 V-TV 기자가 현장을 지나간 적이 있었다. '뭘 하느냐'고 묻기에 YTN의 현실을 설명해줬더니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고, 내가 18년차라고 소개하니 말 그대로 깜짝 놀라더라.
나는 85학번이다. 요즘 들어 대학 시절을 자주 생각한다. 대학 재학 시절 이후 이런 어이없는 일을 맞이하고 그 시절을 요즘처럼 많이 생각해보긴 처음이다. 시청 광장의 잔디를 파헤쳐 놨던데, 이것이 바로 이명박 정부의 현실 인식인 것 같다. 이것은 1980년대 당시 광장에서의 시위를 막기 위해 종종 동원되던 수단이다.
뜻을 하나하나 모아가면 이길 수 있다는 예감이 99%다. 이렇게까지 뭉쳤음에도 구본홍을 저지하지 못하고 이기지 못한다면 그것이 더 큰 문제다."
-YTN 정치부 김태현 기자
물론, 율동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바위처럼'에 맞춰 율동을 보여주는 젊은 노조원들에 대해 시위참가자들까지 흥겨운 박수로 그들을 격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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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TN의 젊은 구성원들의 '바위처럼' 율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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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형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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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시위참가자들과 방송인들은 이렇게 하나가 돼 의지를 다지고 있다. 응원도 곳곳에서 쏟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낙하산 인사'가 오는 14일에 강행될 수 있을까? 그래도 강행된다면, 시위참가자들과 방송인들은 결코 쉽게 물러설 것 같지 않은 예감이 든다.
그리고 다가온, 7월 5일 '국민 승리의 날' 역시 마찬가지다. 참여를 벼르는 시민들, 그리고 애를 태울 것이 뻔한 청와대, 과연 이날에는 어떤 하나된 목소리로 이명박 정부의 간담을 서늘하게 할 것인가. 내일의 태양은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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