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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기말고사 마지막 시험 감독을 끝내고 막 교실을 나가려는데 한 아이가 제 팔을 붙잡았습니다.

 

"선생님, 제 성적이면 간호대 갈 수 있어요?"

"간호대 가고 싶어? 너 간호사가 되고 싶은 거로구나."

 

일단 이렇게 대꾸를 해놓고 잠시 호흡조절을 했습니다. 세원(가명)이가 제게 그런 질문을 던진 것이 너무도 뜻밖의 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담임도 아닌데 자신의 진로에 대해서 선뜻 제게 질문을 던진 것도 그렇거니와, 아이가 대학 진학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입니다.

 

세원이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눈에 기쁨이나 열정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환한 기운이 가득 들어차 있다는 것입니다. 기분이 좋은 날은 수업 시간 내내 그런 눈빛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문제는 그런 눈빛이 수업에 반응하면서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거나 남자친구에게 몰래 편지를 쓰면서 더 많이 작렬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일이야 귀엽게 봐주거나 애정을 가지고 주의를 주면 될 일입니다. 하지만 가끔은 허망한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감정의 기복이 너무 심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꼭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그런 아이라서, 행여 그것이 나쁜 버릇으로 자리 잡지 않을까 염려하여 어쩌다 한 번 언성을 높인 일로 해서 사뭇 오랫동안 눈길조차 주지 않을 때가 바로 그 때입니다. 오랫동안 쌓아온 성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지는 그런 참담한 기분이지요.   

 

하지만 그때마다 화해의 손길을 먼저 내민 것은 제 쪽이었습니다. 그것이 조금은 억울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아이의 버릇이 나빠질까 염려가 되기도 하여 이런 말을 개평 삼아 던지기도 했지요.  

 

"너 부부싸움 하면 누가 먼저 사과하는 줄 알아? 성숙한 사람이 먼저 사과하는 거야. 선생님이 너보다 어른이니까, 성숙한 사람이니까 내가 먼저 사과한 거야. 다음엔 네가 먼저 사과해. 선생님은 이미 어른이니까 더 이상 성숙할 필요가 없지만 넌 아니잖아. 이제 어른이 되려면 넌 더 많이 성숙해야 하잖아. 너 아직은 많이 부족해. 그건 알지?"

 

이런 말에 기분 나빠 하는 아이는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저대로 할 말을 다 한 셈입니다. 아이를 미워하지 않는 것도 어찌보면 하나의 기술입니다. 여기서 기술이란 곧 전문성을 의미합니다. 정신과 의사가 정신질환 환자에게 화를 내지 않는 것은 사랑이 많아서가 아니라 전문가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아이를 미워하지 않고,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말을 해주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대단한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교사가 교육전문가라면 말입니다.     

 

아이들과의 만남(혹은 싸움)은 단거리가 아닌 장거리 경주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감정을 다 쏟고 난 뒤에 허탈해하는 것보다는 속도를 조절해가며 다음 기회를 기약하는 지혜가 필요하지요. 그러다보면 생각보다 빨리 환한 아침이 당도하기도 합니다. 정말 세원이와 이런 대화를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한 일이었습니다.   

 

"간호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했어요. 그런데 제 실력이…."

"그래. 간호대학에 들어가려면 수능도 준비해야하고 수시로 가려고 하면 성적이 아주 좋아야하는데."

"물리치료과는 어때요, 선생님?"

"물리치료과도 좋지. 그런데 간호과든 물리치료과든 들어가는 것도 문제지만 대학에 들어가서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해. 학교에서 배워야할 과목이 만만치가 않거든. 처음에는 어려워보여도 인내심을 갖고 하다보면 흥미가 생기는 법인데 넌 하기 싫은 것은 죽었다가 깨어나도 안 하잖아."

 

그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 것을 보면 세원이는 자신의 단점을 잘 알고 있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순순히 인정한 것은 어디까지나 '타이밍' 때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같은 내용이라도 아이를 교무실로 데려와 잘못을 나무라면서 말을 던졌다면 상황은 백팔십도 달라졌을 것입니다.

 

말을 물가로 끌고 갈 수는 있어도 억지로 물을 먹일 수는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옳고 마땅한 일이라고 억지로 강요하다보면 오히려 역효과를 내기 십상이지요. 아이들과의 행복한 소통을 위해서는 좀 느긋할 필요가 있다고나 할까요? 그것을 깨닫고 난 뒤로는 아이들을 만나는 것이 많이 수월해졌습니다. 그날 우리의 대화는 이렇게 갈무리되었습니다.

 

"이제 네 마음을 더 키우면 돼. 하고 싶은 것만 하고 하기 싫은 것은 하지 않으려는 것은 아직 네 마음이 어리기 때문이야. 어린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 유치원생이 유치한 것은 나쁜 것이 아니잖아. 하지만 넌 고등학생이고, 고등학생으로서 마땅히 지녀야할 그런 것이 네게 없다면 누구보다도 네가 힘들어져. 또 대학에 가면 하기 싫은 과목도 열심히 공부해야하는데 유치원생이 반찬 투정하듯이 공부하기 싫다고 짜증이나 내면 곤란하잖아. 간호사가 되겠다는 네 꿈을 이룰 수도 없고 말이야."

"전 제 꿈을 꼭 이룰 거예요."

"당근이지."

 

아이와 헤어져 복도를 걸어 나오면서 마치 영화의 필름이 지나가듯 아이와 있었던 지난 일들이 머리에 스쳐 지나갔습니다. 어쩌면 오늘 있었던 일도 그 많은 필름 중 한 장에 불과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백번 잘해주다가 한 번 잘못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모든 일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그런 허망한 일을 다시금 경험할 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렇다하더라도 참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태그:#행복한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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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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