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가 7일 교과부 장관 인사를 발표했다.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인 안병만씨다. 이렇게 되면 사람은 바뀔지 몰라도 정책은 '도루묵'이다. '하던 대로 계속 하겠다'가 이명박 대통령식 '쇄신'인가?
국민이 요구한 건 교육정책의 철회지 단순한 인적 교체가 아니다. '미친 교육'을 규탄했던 광장의 그 수많은 시민들이 사람 한둘 바꾸자고 희생을 감내하며 그 자리를 지켰겠는가? 정부가 국민의 요구에 단순한 사람 교체로 응수하는 것은 촛불의 열망을 희화화하는 행태다.
교육부문 쇄신에서 장관보다 관심이 더 쏠렸던 자리는 청와대 교육과학문화수석이었다.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을 실질적으로 기획·주도한 것은 장관이 아닌 이주호 전 수석이었기 때문에 그 후임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새로 임명된 정진곤 교육과학문화수석도 미래기획위원회 위원 출신이다. 둘 다 '이명박의 사람'이다. '내 사람 데리고 내 정책 추진한다'는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이럴 거면 뭐 하러 복잡하게 사람들을 자꾸 바꾸나?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들의 간절한 요구를 단지 새 얼굴로 갈아달라는 치졸한 수준으로 격하시키고 있다.
고양이에게 생선가게 맡긴 이명박 대통령
정진곤 신임 수석은 참여정부 시절부터 엘리트교육을 주장했던 인사다. 한국의 교육풍토상 엘리트교육은 반드시 시험교육이 된다. 또 시험교육은 반드시 사교육으로 연결된다.
그런데도 이명박 대통령은 정진곤 신임 수석을 임명하는 자리에서 "사교육비 없애는 일에 본격적으로 나서 달라"고 말했다. 이는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면서 "생선을 안전히 보전해주게"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대통령이 현실을 우화로 만들고 있다.
이 대통령은 또 "제일 중요한 것이 질 높은 교육 자율권을 주는 것"이라며 "교육부문을 계속 진행해 달라"고 말했다. 촛불집회장에서 외치는 '미친교육'은 크게 봤을 땐 이명박 교육정책을 전반적으로 다 일컫는 말이지만 좁게는 '학교자율화' 조치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0교시, 야간 자율학습, 우열반 등이 모두 학교자율화 조치와 관련된 이슈들이다.
신임 교육수석을 임명하며 '자율권'을 강조한 것은 이런 자율화 정책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뜻으로 들린다. "교육부문을 계속 진행해 달라"고 부탁하기까지 했다. 국민들이 그렇게 반대의 뜻을 표했는데도 '마이 웨이'로 가겠다는 이야기다. '뼈저린 반성'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엉터리 반성'에 '엉터리 쇄신' 아닌가?
이 대통령은 또 "있는 사람, 없는 사람 차이가 많이 나니까" 문제라고 했다. 엘리트교육을 하고 학교자율성을 확대하면 100% 사교육비 부담이 늘어난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있는 사람, 없는 사람'의 차이가 벌어지게 된다. 대한민국에서 이걸 모르는 분은 대통령뿐인 것 같다.
TV 오락 프로그램도 이렇게는 안 한다. 어떤 포맷이 시청자들의 원성을 사면 그 포맷을 폐지하는 게 상식이지, 비슷한 이미지의 다른 출연자로 교체하는 것으로 무마하는 일은 없다. 그렇게 되면 시청자들은 '시청률'로 응징한다. 이 대통령은 이미 '지지율'고 경고를 받은 상황인데도 '마이웨이'식의 이상한 '쇄신'을 단행했다. 이러고도 국정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가능할까?
정진곤 교육과학문화수석의 위험한 교육관
'전국 단위의 학력진단 평가는 계속해서 시행해야 한다... 고등학교는 대학입시 때문에 공부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중학교가 사각지대다.' - 3월14일자 <중앙일보> '[시론] 학력 평가가 필요한 이유'
위의 글은 정 수석이 올 봄에 있었던 중1 진단형가, 즉 일제고사를 옹호하면서 발표한 글의 일부분이다. 이 글에서 정 수석은 일제고사의 이유로 중학교에는 고등학교보다 긴장감이 덜 하다는 것을 들고 있다.
우리 학생들은 세계 최악의 시험지옥에서, 고등학생의 경우 약 5%가량이 자살기도를 할 정도로 심신이 황폐해진 상황이다.
중학교에서라도 학생들이 공부스트레스에서 조금이나마 자유로울 수 있다면 교육자로서 환영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정 수석은 이런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이런 교육관의 소유자가 시험지옥, 입시지옥의 교육정책을 맡게 되는 것은 정말 위험한 일이다. 우리 아이들도 사람이다. 지옥의 전사가 아니다. 얼마나 더 시험의 고통 속에서 친구들과 경쟁해야 하는가?
'이달 말께에 발표할 정부정책이 외고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 놓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래야 차기 정권에서 외고를 되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 2007년 10월24일자 <중아일보> '[중앙시평] 거꾸로 가는 외고정책'
위의 글은 참여정부 말, 정 수석이 특목고를 옹호하며 발표한 글의 일부다. 정 수석의 특목고 사랑이 절절하다. 이 글의 바람대로 차기 정권, 즉 이명박 정부는 특목고와 자사고 등을 전면화하며 입시경쟁·사교육지옥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저는 사회에서 엘리트를 체계적으로 키워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자립형 사립학교를 귀족학교라고 공격하는데, 자신들의 사회적 책무감과 자세 등을 갖춘 사람이 사회의 '노블리스'들입니다."
위는 지난 2004년 3월 29일 <한겨레> 대담에서 정 수석이 한 말이다. 한국에서 엘리트교육은 결국 부자교육이다. '엘리트사랑'은 '부자사랑'일 수밖에 없다. 정부가 이렇게 대놓고 '부자사랑행각'을 벌이면 국민은 소외된다.
자립형사립고의 부자들이 아무리 훌륭한 '노블리스'가 돼도 돈 수천이 없어 거기에 자식을 못 보내는 서민들은 피눈물을 흘릴 것이다. 그것은 결국 원망으로 발전해 사회 안전을 해친다. 이런 교육관은 정말 위험하다.
엉터리 쇄신에 위험한 교육과 무의미한 사람 얼굴 바꾸기. 과연 무엇을 위한 반성이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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