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이 끝난 자리에서 한 번쯤 "2차는 노래방으로!"라고 외쳐보지 않았나요? 혹, '노래방'이란 말에 속으로 '아뿔싸' 하고 한숨을 내쉰 적은 없나요? 사실, 후자의 경우는 딱 제 이야기였지요. 음정, 박자 무시하며 노래를 불러서가 아닙니다. 음정이며, 박자며 정확하게 부르는데 분위기에 맞는 노래에 맞춰 움직이지 못하는 단점이라면 단점이 제게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몸치'는 아닙니다. 뻣뻣하게 똑바로 선 자세로 노래 부르기가 일쑤라서 문제이지요.
그리하여, 아니 지인의 권유로 문화센터의 노래교실에 등록을 하면서 조금은 망설였습니다. 공연히 다른 사람의 흥까지 깨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들었기 때문이지요. 언제가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다함께 일어나 몸을 흔들라고 했는데 사회자가 "안 일어나면 바보"라는 극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앉아있던 대여섯 명 중에 나도 끼어 있었다고 하면 제 태도가 이해가 되시나요?
노래교실이라고 하면 왠지 행복만을 노래해 즐거워질 것만 같은 기분을 밀칠 수 없었기에 망설임도 잠시 저는 등록을 하고 말았습니다. 바쁜 일상을 쪼개 일주일에 한 시간 이상을 내기 어렵기도 하지만 마음 깊숙이 익숙하지 못한 분위기에 적응할까 걱정이 더 많았던 듯싶습니다.
노래 부르기보다 노랫말에 관심을 갖고 있는 요즈음의 제게 딱 맞는 선택이었습니다. 여러 차례 지나고 보니 여기 안 왔으면 큰일 날 뻔 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책을 보면서도 흥얼흥얼, 설거지를 하면서도 흥얼흥얼. 길을 가면서도 노래가 끊이지 않으니 '그 많은 노랫말 덕분에 치매는 안 걸리겠다'는 생각까지 들곤 합니다.
도대체 사람 사는 이야기가 이렇게 많단 말인가요. 무슨 이야기냐구요? 노랫말에 담겨진 사랑이야기, 이별이야기, 친구이야기 등등 수많은 사연들을 말하는 겁니다. 친구이야기 노래를 할 땐 오랫동안 보지 못한 친구 생각도 했고, 부모님 이야기가 나오면 울컥하니 우리가 부르는 노래에 슬프고 기쁜 인생 이야기가 다 들어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예전에 친구가 한 말이 이제야 와 닿습니다. 한 남자에게서 프러포즈를 받고 많이 망설이게 되었답니다. 결혼이 배우자만 보고 하는 것이 아니고 주변 여건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지요. 여러 달 고민 끝에 마음의 결정을 하고 먼 곳의 그를 찾아갔더니 하필이면 그 날이 그 남자의 약혼식(!)이 있는 날이었다지요. 오랫동안 연락조차 하지 않고 고심해 큰 맘 먹고 찾아갔던 길을 되돌아오는 차 안에서 들리던 가요가 모두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들렸다던 친구의 말이 다시금 생각납니다.
아마도 제가 매주 월요일을 기다리는 이유는 마음껏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시간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더군다나 오늘처럼 생각지도 못했던 가수 등장 보너스까지 있으니 왜 안 그렇겠습니까! 씩씩한 노래교실 선생님의 입담에 자신감이 생겨 큰 소리로 노래 부를 수 있는 용기가 생긴 것도 제겐 대단한 수확이지요. 비록 허겁지겁 늦을세라 들어서곤 하지만 노래 부르는 시간만큼은 모든 일상을 잊고 노래를 부르곤 합니다.
'이렇게 슬픈 이야기도 있구나', '이렇게 행복한 이야기도 있구나'
마치 온종일 노래만 부르던 동화 속의 베짱이가 된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새로운 충전으로 더 큰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다면야 이보다 더 큰 수확은 없겠지요. 비록 땀 흘려 일하는 개미는 아닐지라도 말이지요. 날마다 새로운 노래로 행복해지는 일원이 되어 새로운 행복에 빠졌습니다. 제 노래가 들리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