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일 <조선일보> 전 주필은 7월 8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그의 고정 칼럼
'1150만표'로 돌아가야'을 통해, "이명박 대통령이 '호헌세력(1150만 표)'을 위해 죽을 각오로 임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호헌세력의 대동단결에 앞장 설 것을 호소하고 있다. 그는 친박연대나 이회창씨 세력도 '호헌'을 위해 협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필자는 <경향신문> 7월 7일자에 실린 기고문을 통해, 이명박 대통령이 헌법을 위반한 국정철학과 역사관, 그리고 명백한 언론탄압 행위 등으로 현행 헌법을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당연히 탄핵되어야 하지만, 국회가 대통령의 거수기와 비슷한 모습으로 전락한 현 상황에서는 취임식에서 "헌법을 준수할 것을 엄숙히 선언"한 대국민약속을 지키기 위해, 대통령 권한대행(국무총리)를 임명하고 자진 사퇴하던가, 억울하다면 국민에게 재신임을 묻기 위한 국민투표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식의 아집을 버리고 하루 빨리 국론의 분열을 종식시켜야만 한국경제를 위기에서 구출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류근일씨는 필자가 주장하는 '호헌'과는 180도 다른 각도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하는 세력을 힘으로 제압하는 것이 '호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조선일보>를 비롯한 수구세력들의 현행 헌법에 대한 견해가 얼마나 시대착오적인 것인가를 여과 없이 드러낸다. 그러나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1987년에 제정된 현행헌법은 누가 무어라고 해도 아직 시퍼렇게 살아있다. 그런데도 이들은 이 점을 무시하고, 그 이전의 독재정권 시기의 헌법이 대한민국의 올바른 헌법이라고 우기고 있다. 이는 현행 헌법의 파괴를 선동하는 반국가적 언설이 아니고 무엇인가? 현행헌법이 아닌 독재정권 치하의 헌법을 현행헌법이라고 우기면서 이를 '죽을 각오로 지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소설에 나오는 '돈 키호테'도 이렇게 흰 것을 검정이라고 억지를 부리지는 않았다. 이것이야말로 정말로 웃기는 말장난이다. 견강부회라는 말은 이런 경우를 가리키기 위해 존재하는 말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조선일보>를 대표하는 논객으로 행세하고 있다. 그런 신문이 오늘의 대한민국의 여론을 주도하는 거대 매체다. 이들과 생을 같이 하고 있다는 것이 창피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현행 헌법을 다시 한 번 읽어보라. 그 전문엔 3.1운동의 정신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는다고 적혀있다. 불의에 항거했던 4.19의거의 정신을 계승하고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해 노력한다고 했다. 국민경제의 균형적 발전을 실현한다고도 했다. 헌법 제1조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했다. 그 밖에 사상과 학문의 자유, 언론 출판의 자유, 종교에 대한 정부권력의 불편부당성, 인권의 보장, 법 앞의 평등, 노동기본법 보장, 교육의 기회평등 등 이렇게 국민의 민주적 권리에 관한 여러 가지 조항들을 갖고 있다.
류근일씨는 이들 조항들을 모조리 '빨갱이'들의 보호막이라고 생각하고 싶겠지만, 현행 헌법은 이들 조항들을 근간으로 한다. 이 조항들을 지키는 것이 호헌이며, 이를 부정하는 행위나 정책은 헌법 위반이며, 선열과 국민에 대한 반역이다. 류근일씨의 주장은 호헌이 아니라 '反호헌', 즉 헌법파괴를 선동하는 '반국가적' 언설이다. 국정철학과 역사관을 이명박 대통령이 류근일씨와 공유하기 때문에 탄핵의 대상으로 거론되는 것이다. 이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류근일씨는 다음을 척결하는 것이 호헌운동이라고 했다. '맥아더 동상 철거' '연방제 추진' '선군정치 찬양' '평택 미군기지 반대' '미친 교육 비판' '광우병 방송' '북한 인권문제' '종북(從北)주의' '노동귀족'문제 등. 이것들을 법으로 엄단하는 것이 헌법을 지키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의 견해는 바로 한나라당을 받치고 있는 뉴라이트의 견해이며 이 땅의 수구세력들의 지배적 견해이다.
물론 이것들이 문제가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런 것들도 다수의 민주시민의 건전한 상식을 통해 여과해 내는 것이 민주주의 사회의 힘이다. 이들 현상들을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민주주의 사회의 강점이다. 이것을 보안법과 같은 구시대적 법률로써 규제하는 것은 독제정권의 수법이다. 그것은 현행 헌법의 정신에 어긋난다.
대화와 설득과 타협을 통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 이것이 민주사회의 원칙이며, 현행 헌법이 규정해 놓은 규범이다. 류근일씨의 주장대로 이것들을 법으로 틀어막고, 반인권적 고문을 자행하는 것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역행하는 반시대적 반국가적 견해다. 그것은 독재정권의 수법이며, 현행 헌법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국정철학이다.
그런데도 류근일씨는 이런 반인권적인 독재시대의 헌법을 되살리는 것이 '합헌'이라고 우기고 있다. 그러면서 이명박 대통령이 이런 반 헌법적 '합헌'을 지키기 위해 "죽을 각오로 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는 이것이 지난번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했던 1150만 유권자들의 뜻을 받드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난 대선에서는 경제살리기와 BBK 등 비 본질적 문제에 갇혀 현행 헌법이 제시하는 국정철학의 문제는 거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류근일씨가 말하는 1150만 유권자들은 지난 시기의 독재자의 행동과 수법을 답습하라고 이명박 대통령에게 한 표를 던진 것은 아니었다. 경제를 살려달라는 소망을 이명박 대통령에게 기탁했을 따름이다. 류근일씨는 이를 구시대로 돌아갈 것을 요구한 것이라고 아전인수하고 있지만, 만일 이명박 대통령이 류근일씨의 요구대로 구시대의 헌법정신에 따라 국정을 이끌어나간다면 그의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거센 국민적 저항일 것이다.
그는 대통령 취임식에서 "헌법을 준수할 것을 엄숙히 선언"했다. 그가 국민 앞 엄숙하게 약속한 것은 구 헌법이 아니라 현행 헌법이었다. 구 헌법으로 돌아갈 생각이라면 당연히 사임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도리다. 촛불시위 과정에서 분명히 드러난 것은 이명박 대통령의 그간의 행동과 정책들이 현행 헌법을 위반해 왔다는 점이다.
류근일씨는 '합헌'을 외치면서 가장 '반합헌적' 국정을 이명박 대통령에게 훈수하고 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을 확실하게 탄핵의 대상이 되도록 유도하고 있는 셈이다. 그가 몸담고 있는 <조선일보>가 많은 사람들에 의해 척결의 대상으로 되고 있는 이유도 이런 반시대적 반민주적 반민족적 국정철학을 가장 적극적으로 전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지금의 정치적 대립각은 보수 대 진보의 대립이 아니다. <조선일보>로 대표되는 수구적 사대주의적 독재추구세력과 현행 헌법의 정신을 이어받은 민주 민족 민중의 가치를 추구하는 세력과의 한판 승부다.
수구세력들은 이것을 진보 대 보수의 틀로 몰아가면서 색깔시비를 일삼고 있다. 민족 민주 민중 세력은 이런 술책에 말려들지 말아야 한다. 지금은 6·10민주항쟁을 이어받아 민주주의 혁명을 완성시키기 위해, 그것이 탄생시킨 현행 헌법의 기본정신을 높이 들고, 모든 역량을 현행 헌법의 정신에 따라 간접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직접민주주의를 실현시키는 일에 힘을 하나로 모아야 할 결정적 시기다. 이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주종환 기자는 동국대 명예교수입니다.
이 기사의 요지는 경향신문에도 송고했습니다. 이 기사 전문은 ‘시민사회신문’과 ‘평화만들기’에도 송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