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오랜만에 배낭을 챙긴다. 몇 년 만인가. 산다는 게 뭐라고 많은 시간을 산속에서 옹크리고 앉아 하늘만 쳐다보았더란 말인가. 나이가 들어도 여행은 여전히 설레고 긴장된다. 후쿠오카를 가는 중이다. 비행기를 타자 먼저 머리를 스쳐온 것은 생뚱맞게도 윤동주 시인의 '쉽게 씌어진 시'였다.
독립운동 협의로 체포되어 해방을 기다리며 부끄럼 없는 삶을 위해 죽을 때까지 일제 강점기 종말에 대한 예언을 하다 복강감옥에서 옥사한 도시를 찾아가는 죄송스러움 때문일 게다.
착륙 전 기내에서 내려다 본 후쿠오카 공항 주변은 바둑판처럼 네모반듯하게 잘 정리된 들판모습들이 평화롭고 아늑하기만 하다. 버스를 타고 한 시간 쯤 지났을까. 학문의 신을 모시고 있다는 '다자이후 텐만궁' 신사에 도착했다.
일본적인 모습이 가장 많이 숨쉬는 곳이란다. '스가와라미치 자네공'을 숭앙하는 신사로 학생들과 수험생자녀를 둔 부모들이 합격을 기원하는 장소로도 유명하다. 더구나 학문의 신은 한자와 천자문을 일본에 처음으로 전한 '왕인' 후손이란 말에 귀가 번쩍하였다.
신사로 들어가는 길 양쪽으로 상가가 나란하다. 상가라 하기엔 깨끗하고 조용하다. 노점상도 없고 길바닥에 내다 놓은 물건도 보이지 않는다. 가게마다 아기자기하게 차려놓은 상품들이 소꿉장난 모습을 대하듯 오밀조밀하고 재미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