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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옥순

"선생님, 오늘은 책방 나들이 가는 날이지요?"

 

우리 반에서 제일 호기심이 많고 뭐든지 알고 싶어하며 호기심의 더듬이가 돋아있는 은지는 등교하자마자 참새처럼 쫑알댑니다.

 

"응, 그런데 지금은 아침독서 시간이니까 조금 있다 이야기하자."

"네, 선생님"

 

지난 7월 9일 덕진초등학교(교장 배남주)는 1학기 동안 아침독서를 잘 하는 친구들을 데리고 읍내에 있는 서점에 갔습니다. 마침 학력평가도 끝나고 모처럼 차분해진 1, 2학년 아이들과 함께 책방 나들이를 가는 날이었습니다. 1, 2학년 15명 중에서 서점을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아이들이 절반을 넘었고 부모님과 함께 직접 가서 책을 사 본 경험이 있는 아이들 수는 더 작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덕진초등학교에서는 지난 4월부터 책방 나들이 체험학습을 통하여 아이들이 직접 책을 고르게 하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우리 학교는 작은 학교라서 학교에 도서관이나 도서실이 없답니다. 그래서 각 학년 교실이 도서실 구실을 잘 해야 합니다. 담임 선생님들이 사서교사까지 겸한다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하고 선생님부터 아침독서에 솔선수범하지 않으면 독서교육이 정착되기 힘든 것도 현실입니다. 가장 좋은 독서 육아법은 어렸을 때부터 부모나 가족이 책을 읽어주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 장옥순

그러나 대부분의 시골 학부모님들이 마음이 있다하더라도 생업에 바빠서 자녀들에게 수시로 아름다운 동화책을 읽어주기 힘든 게 현실이며 그나마 한부모 가정이거나 조손가정, 다문화가정의 아이들까지 생각하면 시골 아이들의 독서 환경은 전적으로 학교 교육에 의지한다고 봐도 무리가 아닙니다. 어찌 보면 아이들이 책 읽어 주는 부모를 만나는 것은 교육의 첫 단추를 잘 끼우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시골 읍내의 책방이라 규모도 작고 준비된 책들도 충분하지는 않았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책방에 가서 자신의 손으로 직접 책을 고르는 아이들의 표정은 흥분 그 자체였답니다. 가기 전에 예의 바른 행동이나 질서지키기와 같은 규범도 지도하고 동화책을 많이 사서 읽길 바랐지만 요즈음 유행하는 만화 책들이 단연 인기였습니다. 만화책을 읽는 것이 결코 나쁜 일은 아니지만, 만화책만 읽는 아이들은 어휘력이 약해서 문장을 읽고도 뜻을 이해하지 못하여 요약하기나 비판하기, 상상하기, 추론하기 등 독해력 전반에 걸쳐 어려움을 겪기 때문입니다.

 

사실적인 지식을 담고 있는 과학이나 역사책들은 만화책이 효과적이고 문학적인 소재들은 문자 위주의 책들이 더 효과적임을 감안한다면, 초등학교 1,2학년 수준의 아이들에게는 만화책과 문학책의 비율이 비슷하게 책을 사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학적 지식과 사실적인 지식의 균형이 잡혀야 독서 교육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아이들 15명이 들어간 읍내 책방은 떠들썩했답니다. 요즈음 불황이다 보니 손님도 없는데 꼬마 손님들이 들이닥치니 주인 아주머니께서도 귀엽다며 아이들에게 간식거리도 사 주셨지요. 내가 사는 곳에서도 책방에 갈 때마다 느끼는 아쉬움 중의 하나가 책방에 들어오는 학부모나 학생들이 사가는 것은 대부분 문제집 위주라는 것입니다.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그러겠지만 문학서적이나 과학, 역사책을 골라서 사가는 모습은 거의 보기 힘들 정도입니다.

 

`책을 읽음은 집안을 일으키는 근본이고, 배운 사람은 벼와 같고 배우지 않은 사람은 쑥과 같다. 벼는 나라의 좋은 양식이며 세상의 보물이다. 그러나 쑥은 밭가는 사람도 싫어하고 김매는 사람도 귀찮아 한다. 배우지 않음으로 인해 벽을 마주한 듯 답답한 마음에 후회하지만 이미 늙어 버린 후이다`라는 명심보감, 유배 중에도 폐족의 위기 속에서 자식들에게 5천 권의 책이 머릿속에 들어 있어야 세상을 제대로 뚫어보고 지혜롭게 판단 할 수 있다며 좋은 책을 읽도록 아버지의 간곡한 정을 담아 편지를 쓴 다산 정약용의 글을 대하면 좋은 책의 위대한 힘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 장옥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나라 국민의 독서 시간은 세계적으로도 부끄러울 정도이며 더구나 책을 직접 사서 보는 책값의 지출은 국민 1인당 만 원정도라고 하니 나라의 장래로 보아 무척 걱정되는 일입니다. 어른들이나 아이들 모두 독서의 중요성은 이론적으로나 상식으로 매우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책값에 인색하고 독서 시간이 부족한 현실을 타개할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깊이 따지고 들어가면 입시위주의 교육 현장에 기인하고 독서의 효과는 금방 나타나지 않고 기나긴 기다림이 필요한 큰 나무와 같기 때문일까요? 정약용은 <다산시문집>에서 " 사람이 글을 쓰는 것은 나무에 꽃이 피는 것과 같다. 나무를 심는 사람은 가장 먼저 뿌리를 북돋우고 줄기를 바로잡는 일에 힘써야 한다. 그러고 나서 진액이 오르고 가지와 잎이 돋아나면 꽃을 피울 수 있게 된다. "고 하였으니 책은 곧, 작가들이 피워 낸 아름다운 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그 아름답고 소중한 꽃들을 자주 들여다보고 향기를 음미하며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으니, 좋은 책을 본다는 것, 독서를 한다는 것은 사색하는 특권을 지닌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소중한 보물임을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이 알게 해야 하는 것은 학부모와 선생님이 해야할 의무입니다. 밥을 굶으면 큰 일 날 것처럼 호들갑을 떨면서도 영혼의 식량인 책을 안 보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도 현실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텔레비전과 컴퓨터 게임에 함몰되어 독서하기의 즐거움을 모르고 사는 게 참 안타깝습니다. 외식하는 것보다도, 옷을 사 입는 것보다도 책방에 들어가서 책을 고르고 사 주는 어른들의 모습을 많이 보았으면 참 좋겠습니다. 그렇게 되는 날, 우리 사회는 좀 더 따스하고 아름다운 소식들이 넘치리라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곧 여름방학입니다. 그 동안 학교 생활에 힘들었을 아이들이 무척 기다리는 방학이지만 가장 염려되는 것이 독서 생활입니다. 학교에 오면 적어도 하루에 한 시간 이상 독서할 수 있는 분위기로 100일 이상 소중한 독서탑을 쌓아왔는데 그 습관이 허물어질까 걱정이 됩니다.

 

"사랑을 배워라, 특히 좋은 책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라. 세상의 모든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보물이 좋은 책 안에 들어 있다. 배우고 노력하고, 애쓰지 않는다면 그 보물을 찾을 길은 없다." 고 말한 G.잉거소울이나 "한 권의 좋으 ㄴ책은 위대한 정신의 귀중한 활력소이고, 삶을 초월하여 보존하려고 방부처리하여 둔 소중한 보물이다."고 한 존. 밀턴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아직은 어린 1, 2학년 아이들이 긴 방학에 들어가기 전에 책방 나들이 체험학습을 통하여 어렴풋이나마 책의 향기를 맡고 놀이공원이나 물놀이를 좋아하는 것처럼 책방도 자주 갈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시작한 일이랍니다. 용돈이 생기면, 부모님에게 생일 선물을 받을 때에도 먹는 것도 좋지만 책방에 가서 책을 사는 정신적 포만감을 가질 수 있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도서실이 없지만 학급에 꽉찬 학급문고의 대부분을 읽어낸 아이들은 1학기가 끝나는 지금 500권을 넘기 아이도 있습니다. 3월에는 읽기 책의 문맥도 잘 찾지 못하던 아이들이 독서를 많이 하고 나니 독해력과 사고력이 커져서 행간을 읽어내기도 하고 일기나 생활문도 참 잘 쓰게 되었습니다. 행동도 소잡하지 않고 차분해진 것은 당연하지요.

 

우리 아이들을 사랑하는 학부모님, 그리고 어르신들! 사는 게 힘드시지만 이번 여름방학에는 시원한 도서관에 자주 데려가 주시고 가끔은 책방에 들러서 책을 사지 못하더라도 한 시간쯤 함께 읽는 모습을 보여 주시면 어떨까요? 말로 가르치면 힘들어도 몸으로 보여주면 금방 따라오는 게 아이들이랍니다. 우리 학교에서도 더욱 열심히 좋은 책을 읽게 하고 2학기에도 더 좋은 독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답니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이 나라의 밝은 미래를 위하여 학교와 가정이 하나되어 알찬 독서 교육에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기울이는 노력을 해야겠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아이들이 좀 더 좋은 책을, 마음으로 부터 깊이 사랑하는 법을 일찍부터 배우고 실천하기를 빌어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한교닷컴, 에세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독서교육#책방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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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매에는 사랑이 없다> <아이들의 가슴에 불을 질러라> <쉽게 살까 오래 살까>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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