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수경 스님(화계사 주지)이 <불교신문>에 기고한 글로, 필자의 양해를 구해 싣습니다. [편집자말] |
누군가 지금 나에게 이명박 정부의 정체성을 묻는다면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으로 똘똘 뭉친 정부'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불자라면 누구나 알듯이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은 중생을 해롭게 하는 악의 근원이라고 했습니다.
최근 촛불 민심은 이명박 정부의 '삼독심'을 극명하게 드러내 보여 주었습니다. 경제지상주의와 성장제일주의라는 '탐욕'이 졸속 협상을 낳았고, 주권자로서 잘못된 협상을 바로잡으려는 국민을 '분노'로써 적대시했으며, 민심을 아랑곳 않는 최근의 후안무치한 개각은 '어리석음'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 정부의 국정 철학 근저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잘못된 신앙관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씻을 수 없습니다. 그 전조는 이미 서울시장 시절 '서울시 봉헌' 발언으로 드러난 난 바 있습니다.
교회 장로로서 이명박 대통령의 신앙은 조금도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그 신앙의 행태가 반사회적이거나 반인륜적이지 않다면 오히려 더 존중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는" 대통령을 가졌다는 사실을 기뻐할 일입니다.
이명박 장로는 한 개인이 아니라 '대통령'
하지만 반대의 길을 간다면 대단히 불행한 일입니다. 현재 이명박 장로는 한 개인이 아니고 이 나라의 대통령이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으로서 직무 수행에 대통령 개인의 종교가 문제시될 수는 없지만, 신앙과 국정을 혼동하고 잘못된 신앙관으로 국정을 그르친다면 어떤 이유로든 용납될 수 없습니다. 드러난 현상만 가지고 보건대 이명박 대통령의 잘못된 신앙관의 핵심은 '배제'와 '독단'입니다.
백보를 물러나, '고소영 강부자'라고 냉소를 받는 내각이지만 그들의 직무 태도가 올바르다면 인정을 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들은 나라 전체를 하나의 교회로 보는 듯한 행동을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여의도에 있는 한 교회의 장로인 주대준 전 청와대 경호차장은 "정부 부처의 복음화가 나의 꿈"이라고 얘기합니다. 자신의 삶을 하나님에 대한 충성이라고 믿는 것은 그 사람의 자유지만, 공직자로서 그러한 태도는 대단히 위험합니다. 배타와 배제의 원리가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현 정부와 권력 기관이 배타와 배제의 원리로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은 국토해양부에서 만든 대중교통정보이용시스템인 '알고가'에 수도권의 소형 사찰은 물론 조계사·봉은사 등 대형 사찰들에 관한 정보가 누락된 사건에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어청수 경찰청장의 기도회 포스터 등장도 개인의 종교적 자유라고 너그럽게 보아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선 경찰서의 공보게시판에 그것이 나붙었다면 전혀 다른 얘기가 됩니다. 광신적 행태를 보인 주영기 경기여고 교장의 훼불 행위는 측은한 마음마저 자아내게 합니다.
지금 불교계에서 이명박 정부의 종교편향을 문제 삼는 것은 단순히 불교의 입장에서 소외감을 느끼고 분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도 안 됩니다. 문제는 정부 조직이나 국가 권력기관의 수장이 종교적 신념으로 무장하는 것의 위험성입니다. 합리와 효율과 불편부당으로 작동해야 할 정부 기능이 특정 종교의 신념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비판'의 수용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들의 태도에서는 종교적 '헌신'과 '순교자적 자세'마저 보입니다. '촛불 대중'을 '사탄의 무리'라고 발언한 추부길 전 청와대 비서관이 한 예입니다.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의 섬뜩한 그림자가 어른거립니다.
불교계에서 진정으로 걱정하는 것은 불교에 대한 배타적 태도가 아닙니다. 국민에 대한 배타적 태도입니다. '국민을 적대시하면서 하나님만 섬기고', '국민 앞에 부끄러워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종으로서 부끄럽지 않으면 된다'는 유아적 도그마가 심히 걱정스러운 것입니다.
종교적 분열로 국민을 가르지 말라
한편 대통령의 종교편향은 국가의 인적 자원을 반토막나게 합니다. 결과적으로 '개신교 우대'가 '타종교 배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설마 그랬을리라고 믿지는 않지만 촛불 민심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않고 국민 기만으로 일관한 대통령의 오만과 독단이 개인의 종교적 신념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을 떨치기 힙듭니다. 기우이기를 바라지만, 돌아선 민심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자신의 종교적 기반에서 위안을 찾아서는 안 됩니다. 경제적 양극화뿐만 아니라 종교적 분열로 국민을 가르면 국정 파탄과 시대정신의 퇴행을 부를 것이 뻔합니다.
간곡히 바라건대 이명박 대통령께서는 누구에게나 보장된 휴일 날 교회에 가셔서 하나님을 영접하시고, 청와대에서는 장로가 아니라 대통령으로서 국정 운영에 진력하십시오. 눈과 귀를 활짝 열고 열린 마음으로 민심에 귀 기울이십시오. 그러면 우리 모두는 형제애로 화답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