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관광객 사망 사건을 놓고 남북한 사이의 대립이 더욱 더 첨예해지고 있다. 12일 베이징에서 끝난 6자회담이 비교적 원만하게 끝난 것과 비교해 보면 남북한 대치는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13일 북한의 명승지종합개발지도국은 대변인 담화를 통해 박왕자씨의 사망에 대해 "유감스럽다"면서도 "남조선 관광객이 관광구역을 벗어나 불법적으로 군사통제구역 안에 들어온 게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대변인은 "이번 사고의 책임은 전적으로 남측에 있다, 남측은 우리측에 명백히 사과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세워야 한다"며 "남측 당국이 일방적으로 금강산 관광을 잠정중단하도록 한 것은 우리에 대한 도전이다, 남측이 사과하고 재발 방지대책을 세울 때까지 남측 관광객을 받지 않겠다"고 밝혔다.
북한은 남측 당국자가 진상 조사를 위해 들어오는 것도 거부했다.
박왕자씨 사망 사실을 알고서도 국회 연설에서 전향적인 대북 정책을 내놓았던 이명박 대통령은 12일에는 분위기를 바꿔 "이번 사건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 벌어졌다"고 비난했다.
13일에는 통일부 대변인 명의의 대북 성명도 나왔다. 북한의 명승지종합개발지도국 대변인 담화에 대한 맞대응 차원이었다.
성명은 "남북 당국간 금강산지구 출입·체류합의서에 의하면 우리 측 인원의 신체 불가침을 보장하게 돼 있다, 만약 문제가 있다면 이를 중지시킨 후 조사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그런데도 총격으로 사망하게 한 사실은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성명은 "이번과 같은 불행한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상호 협조 하에 반드시 진상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며 "북측은 우리 측의 진상 조사단을 받아들이고 재발방지 대책을 강구해 나가는 것이 책임있는 당국으로서 취해야할 마땅한 조치"라고 지적했다.
"아직 북쪽 최고위층 의사는 나오지 않았다"
남북한이 서로 상대방이 잘못했다고 주장하면서 맞비난하는 형국이다.
특히 우리 정부가 금강산 관광을 중단시켰는데, 북한도 남쪽의 사과와 재발 방지를 요구하면서 남쪽 관광객을 받지 않겠다고 맞불을 놓은 점이 주목된다. 양쪽이 모두 금강산 관광을 하지 않겠다고 하니 이 상태로 대립이 계속되면 금강산 관광이 자연사할 지경이다.
그러나 한 남북 관계 전문가는 "이번 북쪽의 성명이 명승지종합개발지도국 대변인 명의로 나왔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며 "명승지종합개발지도국은 현대아산의 북쪽 사업 파트너로 북쪽 최고위층의 의사를 그대로 반영한 것으로 아직 단정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북쪽 최고위층에서 명확한 결론을 내리기 전까지 북쪽 체제의 특성상 하급 단위는 무조건 자신이 옳고 상대방은 틀렸다는 식으로 주장할 것이다, 이는 북한식 화법"이라며 "2002년 6월 29일 발생한 서해교전에 대해 북한이 사과한 것은 7월 25일로 거의 한 달이 걸렸다"고 상기시켰다.
2002년 7월 25일 북한은 김영성 남북 장관급회담 북측수석대표 명의로 전화통지문을 보내 "서해상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한 무력 충돌사건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이런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공동의 노력을 기울이자"면서 제7차 장관급 회담을 제의했다. 당시 남한 정부는 이를 사과로 인정한다고 공식발표했고 북한도 이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는 "북쪽 최고위층이 최종 결론을 내리기 전까지 내부적으로 고민거리가 많을 것"이라며 "남북 당국간 대화를 완전히 끊기로 했는데 남쪽의 현장 조사를 받아들이면 이런 방침도 바꿔야 한다, 당국간 접촉도 완전히 끊겨 설사 사과를 하려고 해도 마땅한 사전 협의 창구도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남북 당국간 대화가 완전 끊긴 것이 여전히 큰 문제다. 그러나 거꾸로 이번 사건이 남북 당국간 대화 재개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조성렬 국제문제조사연구소 신안보연구실장은 "1983년도 중국 민항기의 불시착 사건으로 한중간 정치적 접촉을 시작했다"며 "이번 사건도 그런 계기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이명박 정부 대북 정책도 기로에
1983년 5월 5일 중국민항(CAAC) 소속 여객기 1대가 6명의 중국인 무장 승객에 의해 납치되어 춘천 부근 중부전선 공군기지에 불시착했다. 이 사건의 처리를 위해 한중 정부간 회담이 열렸는데 이는 1949년 중국에 중화인민공화국 정권이 선 뒤로 최초의 양국 정부 접촉이었고, 1991년 양국 수교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는 낙관적으로 봤을 때의 전망이다. 남북 당국간의 자존심 싸움 차원으로 비화되면 대립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 금강산 관광 완전 중단으로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금강산 사업의 상징성으로 볼 때 이는 남북관계의 파탄이나 다름없다.
북한이 금강산 관광 사업에 애착이 있다고 하지만, 현재 이명박 정부에 대한 태도로 볼 때 폐쇄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북 사업가는 "남한 정부가 당국간 회담은 없지만 민간 교류는 활발하니 통미봉남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며 "그런 주장을 자꾸하면 북한 당국이 '이것 봐라'하면서 민간 교류도 끊을 수 있고, 개성과 금강산도 중단해버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남측 정부 입장에서도 만약 북측이 계속 남측 당국의 진상 조사 참여를 거부하고 공식 사과를 하지않는다면 국민 감정 차원에서도 금강산 관광 재개를 허용하기 어렵다.
또 보수 진영이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을 북한에게 일방적으로 달러를 퍼주는 시혜적 사업으로 보면서, 이들 사업의 중단은 북한을 압박하는 효과가 있다고 믿는 것도 문제다.
개성과 금강산을 통해서 북한이 버는 돈은 연간 2500만달러 수준이다. 북한의 어려운 경제상황에서 큰 돈인 것은 분명하지만, 정권의 명운을 걸고 국제 사회의 혹독한 제재를 무릅쓰고 핵실험까지 한 김정일 정권이 2500만달러가 아까워서 남쪽에 고개를 숙일 것이라고 믿는 것은 큰 착각이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도 기로에 섰다. 현재 국민 감정은 비무장한 50대 여성을 사살한 북한 당국에 대한 분노와 함께, 남북 당국간 대화가 끊겨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 무능력에 대한 성토 분위기가 병존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11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내놓은 전향적인 대북 정책을 그대로 밀고나갈 것인지, 아니면 태도를 확바꿔서 통일부를 없애겠다고 기고만장하던 올 2월 인수위 시절로 돌아갈 것인지도 관심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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