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1일~22일 Stage 5, 'The Long March'거리: 80km
고비사막의 밤은 아름답다. 아니 사실 사막의 모든 밤들은 아름답다. 낮과 밤이 교차하는 노을 진 사막의 대자연에 감동을 느낄 여유도 없이 찾아 오는 사막의 밤.
천일야화의 아라비안 나이트를 꿈꾸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린 왕자의 낭만을 찾아 사막의 여우를 만나려고 하는 사람도 있다. 또 낙타 떼를 몰고 실크로드를 횡단하는 상인이나 탐험가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다.
모래를 침대 삼아 누워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사막의 밤하늘에서 쏟아지는 은하수 군단의 장관에 전율하다 보면, 어딘지 모르는 먼 곳에서 불어오는 사막의 아름다운 바람 소리에 취하게 된다. 무시하리 만큼 고요한 사막의 정적에 빠져들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몸이 사막의 한 부분이라고 착각할 때가 있다. 거기다가 만약 사막의 로맨스(?)까지 겹쳐진다면 이거야말로 진정한 사막과 나의 일체화라 할 수 있겠다.
대자연이 주는 감동은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사소한 감동에 비해 그 규모와 깊이에 있어 어마어마한 차이를 느끼게 만든다. 일 주일간의 레이스 중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고통은 자연이 발산하는 놀라운 힘으로 한방에 치유를 시켜준다.
옛날 로마 병사들의 하루 행군 거리는 50km라고 했다. 사막에서 허우적거리는 나의 모습을 보았을 때 그들은 대단했다는 말 밖에 할 수 없다. 이제 사막 레이스의 마지막 관문인 롱 데이를 넘어야 한다.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닌 어려운 상태지만 포기하지 않는 정신력만큼은 아직 살아있다는 걸 느낀다. 벌써 골인 후 마실 시원한 콜라가 눈 앞에 어른거린다.
코스 브리핑에서 계곡, 마을, 강 그리고 마지막에 파미르 평원을 지난다고 한다. 그리고 날씨가 더울 수 있으니 수분 섭취에 주위하라고 한다.
아직까지 한국팀에서는 탈락자가 없다.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사람들은 단체 활동 측면에서 서로를 잘 챙겨주는 편이다. 좀 자세히 말하면, 군대 같이 속박된 강압에 의한 행동이 아니라 단체 속에 개인 활동을 한다고 보면 된다. 알아서 상태가 좋은 사람이 안 좋은 사람을 도와주고 챙겨주는 자발적인 움직임을 보인다. 이런 점이 이전 시대와 다른 환경이며 외국인 눈에도 부러워 보이는 우리만의 장점이다. 이야기를 해보면 외국 참가자들이 우리의 화합과 단결된 모습을 무척이나 부러워한다. 가끔 힘든 일이 있으면 우리에게 와서 도움을 요청하기도 할 정도였다.
하위 30%는 아침 7시에 출발하고 나머지 그룹은 9시에 출발을 했다. 한국팀은 6명(조경일, 이동욱, 최명재, 송기석, 송경태, 박미란)이 7시 그룹에 속해 있었다. 나머지 사람들이 모두 나와 먼저 떠나는 이들을 응원하는 모습은 지난 시간 동안 모두를 하나의 가족으로 만드는 힘을 발휘한 것 같다.
롱 데이 코스는 시작과 동시에 가파른 경사의 산을 올라가야만 했다. 갈 길이 먼데 처음부터 온몸의 에너지를 모두 소비해야 하게 만든 주최측의 심술스런 코스 설계. 다시금 마운틴 데이의 시작인지 걱정이 앞선다. 어제 다친 무릎은 다행히 아침에 스틱을 빌릴 수 있었기에 아파도 견딜 수가 있었다. 약 1시간 반정도 걸려 정상에 오르니 주변의 경치가 한눈에 들어온다. 멀리 눈 덮인 고봉과 나무 한 그루 없는 삭막하지만 신비로운 산들이 온통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같이 오른 참가자들끼리 서로 고생했다며 격려를 해준다.
이제는 내리막이다. 기분 좋게 노래도 흥얼거리며 산을 내려가니 계곡을 따라 끝없이 이어지는 코스가 기다리고 있다. 이곳은 이전에 비가 내린 곳 같다. 아직까지 군데군데 물과 진흙이 남아 있었다. 이제 온도가 올라가면서 바닥의 습기와 함께 습도 있는 더위가 몰려온다. 사실 사막에서 50도가 넘는 더위 속에서 버틸 수 있는 것은 습도가 적기 때문이다. 그런데 습도 있는 더위를 만나면 천하의 사막의 아들도 견디기 힘들다. 오늘 예감에 탈락자의 대부분은 이곳 계곡 코스에서 발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첫 번째 체크 포인트를 지나서부터 상연이와 헤어지고 얼마 후 조경일님을 만났다. 수년간 같이 사막을 다니는 조경일님은 이번에 딸 조이가 자원봉사로 참가를 했다. 그런데 첫날부터 신발에 문제가 생겨서 발에 물집이 장난이 아니다. 그래도 딸에게 용감한 아버지가 되고 싶은 마음에 엄청난 고통을 참아가며 버티고 있다. 다행히 나의 무릎 상태는 많이 좋아져서 통증을 못 느끼고 있다. 조경일님에게 스틱을 넘겨 주고 달리기 시작했다.
두 번째 체크 포인트에 도착하니 다케시, 메구미 부부가 서로 발 치료를 하고 있다. 다케시는 작년 고비대회에 같이 참가한 친구로 후쿠오카에서 임대업을 하고 있는데, 올해는 새로 결혼한 신부까지 데려와 둘이 같이 고생 바가지를 하고 있다. 몸은 근육질이고 약간 거칠게 생겼지만 마음이 여려서 눈물이 무척이나 많아 약간의 감동과 고마움이 있으면 자주 우는 친구다.
두 번째 체크 포인트부터는 먼저 출발한 후미 그룹 참가자들을 자주 만났다. 일부는 더위로 인한 탈수로 주로 옆에서 쉬고 있고 발 부상으로 기권한 참가자들도 만났다. 중간 중간 강물을 건너는데 하류 쪽이라 강폭이 넓고 물살이 상당히 거칠다. 주최측에서 스태프와 현지인을 동원해 위험 지역에서는 로프와 사람을 이용해 강을 건너게 했다. 일부 아주 위험 지역은 당나귀 마차도 타고 강을 건넜다. 정말 이번 대회는 그 동안 겪어보지 못한 진귀한 경험을 많이 하는 것 같다.
오늘도 송경태님의 도우미는 박미란님이 전담을 했다. 부지런히 쫓아가 교체를 하려 했는데 끝까지 자신 있다며 걱정 말라고 한다. 남자보다 더욱 대단하다 여겨진다. 이번 고비사막 대회의 진정한 영웅은 박미란님이라 생각된다.
네 번째 체크 포인트를 지나서부터 파미르 고원을 가로 지르는 코스다. 해가 저물어 가는 시간에 통과를 하는데 아직도 뜨끈뜨끈한 열기가 남아 있었다. 만약 이 곳을 한낮에 지나 갔다면 더위로 쓰러졌을 것 같다. 이곳의 낮 기온은 영상 50도를 훌쩍 뛰어 넘는 리얼 사막 지역이다. 이 코스에서는 많은 이들이 더위로 쓰러져 링거을 맞거나 탈락을 했다. 주최측에서는 안전을 위해 의무적으로 최소 2시간 이상을 쉬고 가게 했다.
가도 가도 끝없는 평원의 중간에서 만난 다섯번째 체크 포인트에서 여럿 한국 참가자들과 같이 비박을 했다. 밤 하늘의 별들을 구경하면 지낸 그 밤은 모두에게 너무나 낭만스러운 시간이었다. 허기진 배를 채우고 몇 시간 잠을 잤더니 다시금 힘이 난다.
깜깜한 새벽 또다시 길을 나섰다. 중간에 빨리 가려고 지름길로 가다 길을 잃고 약간 헤맸지만 예상 시간에 맞춰서 진행이 되고 있다. 그래도 곁으로 보면 평원이지만 수시로 오르막과 내리막의 연속인 지역이라 몸의 피로는 상당했다. 더욱이 밤에는 어둡기에 평상시보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더욱 길이 멀게만 느껴진다.
마지막 체크 포인트에서 자원봉사자인 조이를 만났는데 아버지 조경일님은 비박을 하고 있다고 한다. 조경일님은 길 바닥에 침낭을 깔고 자고 있었는데 그 모습에서 얼마나 힘든 길을 참고 왔는지 예상이 된다.
서서히 날이 밝아오며 코스 주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끝이 안 보이는 이 넓은 대지에 나라는 존재는 얼마나 작은 점으로 보일까? 사람은 해가 뜨고 질 때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 동안 지니고 있던 많은 걱정과 근심이 사라지며 몸이 가벼워지기 시작한다.
23시간 25분 40초. 정말로 기나긴 시간을 지나왔다. 송경태님, 박미란님, 송기석님, 수동이와 함께 상당히 힘들었던 롱 데이의 관문을 통과했다.
6월 23일 Stage 6, 'In the Shadow of Chairman Mao'거리: 10km
마지막 날은 등수에 따라 3그룹으로 나눠서 출발을 한다. 나는 롱 데이에서 까먹은 시간이 많아서인지 전체 순위가 내려가 제일 먼저 출발하는 그룹에 속했다. 하지만 잘 됐다는 생각이다. 가급적 빨리 달려서 한국인이 제일 먼저 골인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어차피 현지인들의 관심은 누가 제일 먼저 골인 하냐가 중요하다.
그 동안 함께 고생한 참가자들과 함께 사진 촬영을 하고 출발을 했다. 처음부터 치고 나가 두 번째 주자와 거의 1km 정도의 여유를 두고 58분 만에 전체 참가자 중 첫 번째로 결승점을 통과했다. 현지 사람들은 내가 1등 인줄 안다. 아니 한국사람이 1등인지 알고 있다. 하하하! 어찌됐건 한국이란 나라를 이들에게 알려서 좋다. 그리고 놀랐던 일은 굽이굽이 이어지는 오래된 전통 마을에서 만난 사람들이 한국, 코리아를 많이 알고 있다는 점이다. 기분이 좋다.
한국 참가자들은 김철홍님을 마지막으로 전원 완주를 했다. 시각 장애인 포함 총 16명이 참가를 해 전원 완주를 했다는 사실에 외국 참가자들은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운다. 밖에 나가면 모두 애국자가 된다고 한다. 외국인들에게 인정을 받고 당당해 질 수 있는 우리들은 민간 외교 사절이다. 수많은 역경과 고난을 극복하고 우리는 해냈다. 자랑스런 대한국인, 모두에게 박수를 보낸다. 나의 8번째 사막 레이스를 58시간 30분 12초 전체 112등으로 기분 좋게 마무리했다.
덧붙이는 글 | 20007년 6월 17일부터 23일까지 열렸던 고비 사막 마라톤대회 참가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