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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엔 불황과 고유가에 따른 경비부담을 줄이기 위해 외국여행을 선호하던 사람들까지 국내에서 알뜰휴가를 보내려는 짠돌이 휴가족이 많아졌다고 한다. 이와 맞물려 자연에서 피서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하는데, 고유가, 고물가, 고환율 시대에 여름휴가는 어디로 가는 것이 좋을까.

 

인파가 구름떼처럼 몰려드는 잘 알려진 계곡이나 해수욕장보다는 실속 있고 알뜰하면서도 즐거운 나만의 피서지법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그렇다면 나만의 피서지라고 할 수 있는 곳은 어떤 곳이 있을까. 지난해 여름휴가 때 나는 멀리 떨어져 있는 고향 부모님도 찾아뵐 겸 휴가도 보낼 겸 고향을 찾았다.

 

바다에서 자랐어라

 

내 고향은 경남 거제도. 통영에서 거제대교를 거쳐 고현을 지나서도 한참을 들어가야 하는 작은 마을이다. 내가 자란 그곳은 산이 마을을 넉넉히 감싸고 있고, 마을은 바다를 껴안는 모양을 하고 있다. 마을 안까지 들어온 바닷물은 또 더 넓은 바다로 마음껏 헤엄쳐 나가 먼 바다까지 쪽빛 바다의 레이스를 펼쳐놓고 있다. 나는 바다를 껴안고 산을 업고 있는 내 고향 작은 동네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지금이야 아주 가끔, 명절이나 여름휴가 혹은 가족 행사 등이 있을 때라야 그곳을 찾지만, 이곳은 내 어린시절, 나를 키운 곳이다. 찾아가지 않는다 해서 고향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나서 자란 그곳이, 내 고향 바다가 문득 문득 그리워질 때가 있다. 평소에는 자주 찾아갈 수 없지만, 여름휴가에라도 찾아가면 내가 자란 고향 바다도 만나고 부모님 얼굴도 뵐 수 있어 아주 좋다.

 

언니, 형부와 함께 하는 여행의 즐거움

 

작년 여름 8월 8일부터 10일까지 2박 3일간 거제도 고향집에서 여름휴가를 보냈다. 일상을 내려놓고 오랜만에 부모님 얼굴도 뵐 겸, 고향 바다도 볼 겸, 여름휴가도 보낼 겸 겸사겸사해서 거제도로 출발했다. 참으로 오랜만에 가는 걸음이었다.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 위로 상쾌한 바람을 타고 달리는 기분, 상쾌했다. 일상에서의 잠깐의 일탈은 마음 가볍고 유쾌한 것이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우연히 서울 사는 언니가 형부와 함께 거제도로 내려오고 있다는 소식을 전화통화를 통해 알게 되었다. 무척 반가웠고 이번 휴가가 기대되었다. 언니를 만나는 것도 참 오랜만의 일이다. 얼마쯤 달렸을까. 통영 옆구리를 거쳐 거제대교를 건너고 사등면을 지날 때쯤 언니한테 다시 전화를 했다. 어디쯤 오고 있는지 궁금했다.

 

"응, 지금 여기 고현이다. 친구가 고현에 있어서 잠깐 만나고 있는 중이야. 어디야?"

"곧 고현에 접어드는데!"

"그럼 만나서 같이 가면 되겠다. 이쪽으로 올래?"

 

언니는 친구가 다니는 교회에 있다고 했다. 우리는 언니가 말해주는 약도를 따라 고현에 접어들었다. 다행히 어렵게 헤매지 않고 쉽게 고현시청 부근에 있다는 XX교회를 찾을 수 있었다. 언니와 형부는 이제 막 나오고 있는 중이었다. 교회 앞마당에서 우린 맞닥뜨렸다. 정말 반가웠다. 다른 때 같으면 고현에서 곧장 부모님 집으로 가는 길로 갔겠지만 오늘은 언니도 만났겠다, 드라이브하면서 반대방향으로 차를 돌려 구조라를 지나 장승포 옥포 등을 거쳐서 빙 둘러 가기로 했다.

 

우린 다시 차를 탔다. 언니와 형부가 탄 차가 앞섰고 우리 차는 그 뒤를 따랐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한적한 국도를 따라 익숙지 않은 길을 따라 가는 것은 즐거웠다. 언니는 잘 따라오라는 듯 몇 번이고 수신호를 보내오기도 하고 전화를 걸기도 했다. 길은 한적했다. 구조라 해수욕장엔 많은 피서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잠시 바닷가 구경을 하다 가려고 했지만 차를 주차할 마땅한 장소가 없었다.

 

그냥 지나치려다 구조라 마을에서 적당한 음식점을 찾았다. 횟집에서 매운탕을 주문하고 앉아 점심을 먹으며 우리는 즐거운 대화로 시간을 보내다 다시 일어났다. 장승포를 지나 옥포 방향으로 가던 중 능포로 빠졌다. 이상하다. 이 길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언젠가 부산에서 배를 타고 장승포에 내려서 거제도로 갔던 적이 있는데 이쪽으로 빠지는 것이 아닌 것 같은데, 하면서 언니 차 뒤를 따랐다.

 

아니나 다를까. 길을 잘못 들어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능포 마을, 능포 앞바다가 보였다. 능포 마을 바다끝 쪽으로 난 길을 따라 가 보니 길은 어느 지점에서 뚝 끊어졌다. 마을 사람한테 길을 물어보았다. 길을 잘못 들어섰다고 했다. 넘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우리는 능포 방파제를 거닐기도 하고 바닷물에 손을 담그기도 하고 사진을 찍기도 하면서 잠시 쉬었다. 다시 출발, 겨우 길을 찾아 쪽빛 바다를 옆에 끼고 해안도로를 달렸다. 가슴이 확 트이고 상쾌했다.

 

언제나 변함없이 그때, 그 자리에 있는 것들

 

고향마을이 저만치 내려다보였다. 어릴 적부터 다녔던 교회의 높은 종탑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부모님은 오랜만에 찾아온 큰 딸과 둘째 딸, 그리고 사위들을 보며 아주 반가워했다. 시원한 수박을 먹으며 그동안의 못다한 얘기들을 나누었다. 원래 우리집은 오랜만에 만날 수 있는 명절이나 여름휴가 때면 밤이 늦도록 이야기가 끊이질 않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저녁밥을 먹고 나서는 아버지와 어머니, 언니와 형부, 남편과 나는 시원한 밤 바닷가를 걸어 방파제 끝까지 나갔다. 여름밤에 밤낚시를 즐기는 사람들도 보였다. 우리는 방파제 끝에 모여앉아 막힘없이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쐬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리고 모두가 잠든 늦은 밤, 엄마와 언니, 그리고 나는 새벽 늦게까지 무슨 비밀 이야기라도 하는 것처럼 소곤대고 웃고 하면서 밤을 잊었다.

 

다음날 이른 새벽, 남편과 나는 조용히 일어나 어린시절부터 내가 장성할 때까지 다녔던 교회 새벽예배를 참석하고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엔 새벽 바다를 보러 닭섬 방파제 끝까지 걸어가서 깨어나는 고향의 아침을 한참동안 바라보며 바위 끝에 앉아 있었다. 해가 떠오르기도 전에 선창에 정박해 있는 배들은 바다를 가르며 먼 바다로 나가고 있었다. 수평선 저 끝에서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아침밥을 일찍 먹고 모두 밭으로 향했다. 언니는 집에서 점심 준비하고 있겠노라 해서 그  외 식구들만 밭으로 향했다. 부모님이 봄부터 여름 내내 뙤약볕에서 가꾼 채소들, 고추와 깨, 콩, 부추, 옥수수, 호박... 종류도 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들이 숨겨진 보화처럼 밭에 풍성하게 자라고 익어가고 열매를 거두고 있었다. 고추는 여름 햇볕을 받아 벌써 빨갛게 익어가고, 풋고추도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여보, 수영하러 가!'

 

들깻잎은 또 얼마나 싱싱하고 푸른지, 부추는 함부로 자란 긴 머리처럼 짙푸르게 자라고 있었다. 엄마는 뭐든지 많이 챙겨 주려고 손이 바빴다. 우리도 함께 고추를 따기도 하고 부추를 베기도 하고, 깻잎을 따면서 여름볕에 얼굴이 발갛게 익어갔다. 낮이 될수록 점점 햇볕은 강렬해졌다. 그래도 땀 흘리면서 부모님이 가꾸시는 밭에서 함께 하는 즐거움이 더 컸다. 형부는 보릿대 모자를 쓰고 아버지의 작업복을 입고 일하는 폼이 천상 농부의 모습이었다.

 

모두들 땀 흘리며 지칠 줄 모르고 일하고 있는데 그 중에 유일하게 한 사람은 방관자처럼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으니 그건 바로 남편이었다. 밭에 왔을 때 처음엔 같이 깻잎도 따고 고추도 따는 시늉을 하더니 놀이에 재미를 잃은 어린아이처럼 시들하게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있었다. 사실, 거제도에 오기 전부터 바닷가에 나가서 고둥 잡고 수영할 것이라고 기대에 차 있던 남편이었다.

 

가고 싶은 바닷가엔 가지 않고 밭에서 땀 흘리고 있으니 영 재미가 없는 모양이었다. 깻잎을 따고 고추를 따서 담으면서 즐거워하고 있는 내게 살짝 다가와 참다못해 하는 말.

 

"여보야, 바닷가에 수영하러 가자. 고동도 따고, 고둥 따러 가자. 여보야, 서방님 띰띰해!"

 

"이것만 끝내구요"하고 내가 말했다. 상심한 채 매실나무 아래 주저앉아 있는 폼이 꼭 순진한 어린아이 같았다.

 

엄마는 그런 사위가 밉지 않은 듯 "이런 걸 해봤어야 말이제"하고 말했다. 몇 시간 동안 밭에서 부지런히 고추랑 부추랑 깻잎이랑, 콩이랑 여러 가지를 가득 가득 담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언니가 준비한 점심을 먹고 우리는 또 밭에서 가져와 마루에 놓은 채소들을 손질하고 씻고 하느라 바빴다. 남편은 결국 그렇게 원하던 바다로 나갔다.

 

밖에 나갔다온 막내 처남을 보고 반색을 하더니 바다로 나가자고 했다. 남편은 신이 나서 미리 준비해 온 튜브에 바람을 넣느라 바빴다. 아이처럼 즐거워하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결국 남편은 수영을 하기 싫다는 형부까지 꼬드기고 막내 남동생을 보디가드 삼아 바닷가로 나갔다. 옆구리엔 자기 덩치보다 큰 탱탱해진 노란 튜브를 끼고서.

 

몇 시간이 지났는데도 바다에 수영하러 나간 사람들이 오지 않아 골목 밖을 나와 보니 저 멀리 선창 주변에서 수영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남편은 튜브에 몸을 올려놓고 발을 바닷물에 철벅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수영을 하고 싶어 하더니 겨우 튜브에 얹혀 있는 모습에 나는 풋~하고 웃고 말았다. 신나게 수영을 하고 집에 돌아온 남편은 즐거웠던 수영 이야기를 해 주었다.

 

처음엔 바닷물이 무서워서 튜브를 타고 있었는데 용기를 내서 잠시 처남한테 튜브를 맡기고 옆에서 지켜보라고 한 뒤 수영을 몇 분 동안 했노라고 자랑을 했다. 밭에서 따온 채소들은 생각보다 훨씬 많아서 다듬고 씻고 또 김치 양념을 만들고 하느라 여자들은 오후 내내 바빴다. 이게 여름휴가가 아니라 명절 준비라도 하는 것 같았다. 현관 밖에서 수돗물을 콸콸 틀어놓고 넓은 다라에 부추를 씻고 깻잎을 씻었다.

 

넘치는 축복

 

부추김치를 담그고 깻잎 김치를 담궜다. 우리가 나눠서 가져가고 뒤에 올 동생네들이 와서 가져 갈 만큼 많은 분량이었다. "아이고 힘들다~이건 휴가가 아니라 명절 준비하는 것 같다"면서 힘든 시늉을 하기도 했다. 오후에 아버지는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미리 쳐놓은 어망과 통발에 걸려든 생선을 가득 가지고 오셨다. 넘치는 축복이었다. 바다에서 밭에서 풍성하게 건져 올리는 이것들은 그야말로 넘치는 축복이 아니고 무엇이랴 싶었다. 엄마와 형부는 생선을 다듬었다.

 

저녁엔 바다에서 건져올린 생선회와 생선구이, 밭에서 가지고 와서 마련한 깻잎과 상추, 풋고추, 나물 등으로 식탁이 풍성했다. 한상 가득 차린 풍성한 식탁 앞에 모여 앉아 먹는 저녁은 거룩한 성찬 같았다. 이 식탁 위에 올라온 음식들은 모두 부모님이 직접 밭에서 가꾼 것이었다. 이른 봄부터 뜨거운 여름 뙤약볕에서도 매일 아침과 낮 그리고 저녁까지 들에 나가 지심을 메고 자식 농사하듯 씨 뿌리고 모종하고 거름을 주면서 알맞은 흙과 거름과 물, 그리고 정성과 사랑으로 가꾼 것들이었다.

 

바다는 바다대로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것들을 바다에 나가 통발에 걸려 든 것을 가지고 와서 장만한 것들이었다. 엄마는 가끔 아버지와 바다에 나가 통발에 걸려든 생선을 집으로 가지고 오면 깨끗이 장만해서 차곡차곡 냉동실에 얼려 보관해 뒀다가 자식들이 다녀갈 때 가져가라고 내놓곤 했다. 다음날 아침엔 이제 각자의 생활공간으로 돌아가기 위해 분주했다. 이것저것 챙겨서 담고 차에 실었다. 함께 담근 부추김치, 깻잎김치, 고추, 호박, 마늘, 양파, 옥수수, 콩, 생선 등을 봉지에 넣고 박스에 담고 하느라 바빴다.

 

부모님 집에 이렇게 오면 내가 가져 간 것보다 가져가는 것들이 더 많다. 집에 도착해서 차에 가득한 것들을 내리느라 한참 시간이 걸렸다. 가끔씩 찾아가는 고향 부모님 집에 가는 것은 반갑고 기쁜 마음이 앞서지만 이것저것 챙겨주시느라 쉴 틈 없이 움직이는 엄마를 볼 때마다 내년 여름에는 안 와야지, 괜히 부모님 고생만 시키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곤 하지만, 어김없이 이번 여름에도 고향에 계신 부모님, 그리고 그 바다가 보고 싶어 다시 그리워진다. 해서 이번 여름에도 갈 계획을 하고 있다.

 

가고 또 가도 좋은 곳, 찾아 가면 기꺼이 반가이 날 맞이하는 곳, 다시 그리워지는 고향바다, 그리고 고향집, 이번 여름에도 변함없이 날 반겨줄 그곳이 그리워진다.

 

‘바닷가에 대하여’ -정호승-

 

누구나 바닷가 하나씩은 자기만의 바닷가가 있는게 좋다

누구나 바닷가 하나씩은 언제나 찾아갈 수 있는

자기만의 바닷가가 있는게 좋다.

 

잠자는 지구의 고요한 숨소리를 듣고싶을 때

지구 위를 걸어가는 새들의 작은 발소리를 듣고 싶을 때

 

새들과 함께 수평선 위로 걸어가고 싶을 때

친구를 위해 내 목숨을 버리지 못할 때

서럽게 울던 어머니를 껴안고 함께 울었을 때

 

...................(중략)..........

 

바닷가 기슭으로만 기슭으로만 끝없이 달려가고 싶을 때

누구나 자기만의 바닷가 하나씩 있으면 좋다

자기만의 바닷가로 달려가 쓰러지는게 좋다.

덧붙이는 글 | [2008 이 여름을 시원하게] 응모글 입니다.
'나만의 특별한 피서법'


#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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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전5: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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