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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짓말의 딜레마> ⓒ 열대림
<거짓말의 딜레마> ⓒ 열대림 ⓒ 박정호
만약 우리가 거짓말을 할 수 없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항상 정직과 진실만을 말한다면 세상은 더 살만해질까.

상상이 잘 안 된다면 짐 캐리가 주연한 영화 '라이어 라이어'를 보면 답을 찾을 수 있다. 아들의 기도로 거짓말을 못하게 된 짐 캐리. 절대 입밖으로 나오지 못했던 그의 진실된 생각이 계속 튀어나오자 모든 사람들은 그를 비난한다.

우리의 실생활에서도 쉽게 실험해볼 수 있다. 여자친구가 만든 맛없는 음식을 정직하게 "진짜 맛없네"라고 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친구들의 생일선물을 던져 버리며 "정말 마음에 안 들어"라고 외쳐보라. 얼마나 거짓말이 소중한지 깨닫게 될 것이다.

200번. 학자들이 주장하는 한 사람의 하루 평균 거짓말 횟수다. 10분의 2번꼴로 거짓말을 한다는 주장도 있다. 믿기 어렵다. '그렇게나 많이 해'라며 고개를 가로젓게 된다. 어렸을 때부터 '거짓말은 나쁘다'라는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거짓말을 많이 하면 코가 길어지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깨닫는다. 때로는 거짓말이 필요하다는 것을, 진실을 말할 수 없을 때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어렵다. 나쁘다는 거짓말이 필요하다니. 마치 눈으로 효모와 곰팡이를 구별하라는 것과 같다. 헷갈리는 거짓말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 <거짓말의 딜레마>(클라우디아 마이어 지음, 열대림 펴냄)를 읽어보자. 거짓말은 물론 사기, 기만, 조작, 위조, 속임수까지 다양한 '거짓 패키지'도 덤으로 얻을 수 있다.

"거짓말은 삶과 인간 존재의 일부"

거짓말의 사전적 정의는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상대방에게 이것을 믿게 하려고 사실인 것처럼 꾸며서 하는 말'이다. 즉,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상대를 속이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아이들은 무의식적으로 거짓말을 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거짓말은 의식적으로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꾸민다.

그래서 사람들은 의도에 따라 '햐얀 거짓말'과 '검은 거짓말'로 나누기도 한다. 다른 사람을 해치려고 하는 거짓말이 아니라면 거짓말을 용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교부이자 주교였던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는 "타인을 구하기 위한 거짓말도 인류의 원죄이자 근본악이다"고 비난했지만, 대개 사람들의 인식은 사생활 보호나 다른 사람을 생각해서 하는 거짓말을 용인하고 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저자는 "거짓말을 삶과 인간 존재의 일부"라고 정의한다.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거짓말은 진화의 원동력이고 생존 전략이며 일종의 사회적 윤활제이다. 거짓말을 함으로써 많은 행운을 불러올 수 있다. 즉 거짓말은 우리 세상을 결속시킨다."

예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머리 모양이나 옷대 대한 칭찬은 전형적인 '윤활제'다. 한번 기억을 더듬어 보자. 우리가 친구나 직장동료들에게 얼마나 자주 거짓말을 하는지. 촌스러운 머리 모양을 보고도 "개성있네, 멋져"라고, 칙칙한 티셔츠를 보고도 "선명해보여서 좋네"라고 한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촌스럽네" "칙칙해"라는 진실보다 거짓말이 훨씬 듣기 좋기 때문이다. 인간관계를 이끌어 가는 원동력은 바로 거짓말로부터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거짓말이 언제나 윤활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위조와 기만이라는 모습으로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이른바 '짝퉁'이라고 불리는 명풍 브랜드의 위조품의 시장규모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EU는 2000억 유로, 미국은 5000억 달러로 '짝퉁 시장'의 규모를 추산하고 있다. 2005년 우리나라의 무역규모가 5000원 달러였던 것을 감안하면 '짝퉁'의 어마어마한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명품시장 뿐 아니라 예술시장이나 화폐도 위조의 대상이다.

위조는 다른 사람은 물론 자기 자신까지 속이는 것이다. 저자는 "겨우 30유로를 주고 산 시계이면서 1만 유로짜리 시계를 찰 능력이 있는 것처럼 행동하며 가짜 깃털로 치장한 채 누군가를 속여넘기면서 기뻐하고 우월감마저 느낀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도 "그 많은 위조품들은 평등화 효과를 낳는다, 만질 수 있는 거짓은 결국 우리를 다 똑같이 만든다"고 덧붙였다.

<거짓말의 딜레마>는 거짓말하는 방법도 소개되어 있다. 저자는 "뛰어난 거짓말쟁이들이 가장 자주 사용하는 전술은 허구와 진실의 절묘한 조합이다"며 "완전히 새로 꾸미지 않고 과거 실제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거짓말을 한다"고 밝혔다. 단순히 "토요일에 친적집에 가야 해"라는 거짓말보다 할머니 생신잔치의 기억을 더듬어 "토요일에 할머니 생신이 있어서 금요일부터 집에 가서 음식하는 것도 도와드리고 선물도 사야 해"가 훨씬 그럴 듯하다.

함축과 미화법도 자주 쓰인다. 뛰어난 거짓말쟁이들은 정직하게 의견을 털어놓고 싶지 않을 때 쓰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마음에 들지 않는 친구의 머리 모양을 얘기할 때 "짧아···"라고만 말하는 것이다. 흉하다는 생각을 다 드러낼 필요가 없다. 그저 사실만으로 대답을 끊는 게 도움이 된다. 말 뿐만 아니라 사진과 영상, 통계에서도 우리는 조작을 경험할 수 있다. 카메라와 컴퓨터라는 도구를 이용한 거짓말인 셈이다.

그렇다면 정치인의 거짓말은 어떨까. 용납할 수 있을까. 저자는 "정치가들이 정말 일반 시민들보다 높은 사람이라 해도 멋대로 거짓말할 자유는 없다"면서 "공익에 기여하고 국민의 이해를 대변하며 자신의 정치 활동과 계획을 국민에게 솔직하고 정직하게 알려야 하는 의무를 갖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어떻게든 진실을 감추고 국민을 기만하려 한다.  미국 쇠고기 수입협상 과정만 봐도 알 수 있다. 청소년용 교통카드를 꺼내 든 정치인은 또 어떤가.

불행히도 정치인의 거짓말은 하얗지도 않고 잘 드러나지 않는다. 정치인들이 각종 언론과 선전전을 이용해 자신들을 포장하기 때문에 국민들은 그들의 거짓말을 쉽게 알아챌 수 없다. 정보의 불균형이 생긴다. 정부와 여당이 YTN과 KBS 사장 임명에 목숨을 거는 이유 중의 하나다. 그리고 시민들이 YTN 주주총회장 앞을 지킨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거짓말은 상황에 따라 사회생활의 윤활유가 될 수 있지만, 사회에 불을 지르는 휘발유가 될 수도 있다. 제목 그대로 <거짓말의 딜레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제 블로그(blog.ohmynews.com/gkfnzl)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거짓말의 딜레마 - 거짓말,기만,사기,속임수의 심리학

클라우디아 마이어 지음, 조경수 옮김, 열대림(2008)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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