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그렇게 해서 되겄우?”
“되고 안 되고는 이 담에 보고 얼른 파 엎기나 해요. 참 잔소리 많네요.”
“아니 잔소리가 아니고 이렇게 돌만 나오는데 여기서 뭐가 돼요.”
“돌은 대강 고르고 파기나 해요. 그래도 흙이 더 많구만.”
티격태격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우리 집 터앝이다. 시골로 이사 온 후 첫봄, 봄이란 놈이 오기가 무섭게 아내는 나를 채근한다. 집이 기억자로 꺾이고 난 공터에 무언가 심어야 한다는 것이다. 귀찮은 마음이 더 많은 나는 거기에 무엇을 심어 거둔들 얼마나 많은 소출을 할까 싶어 자꾸 그냥 놔두자고 했다.
호박 싹 안 나는 게 남편 탓?
아내의 성화는 그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시장에 나가 채소 모를 사다 심었다. 옥수수와 토마토, 고추와 치커리는 모종으로 사다 심고, 호박은 단호박을 한 개 사 호박죽을 쒀먹고는 씨앗을 흙에 파묻었다. 다해서 든 돈은 5천원 남짓.
일주일이 지났을까? 모를 사다 심은 것들은 튼실하게 자랐다. 그러나 호박은 영 나올 기미가 없다. 아내는 호박이 안 나오는 게 내 불찰이라도 되는 듯 울상을 지으며 왜 안 나오는 거냐고 내게 따진다. 난들 알 리가 있겠는가. 내게 묻는 저의가 의심스럽다고 말하는 내게 아내는 이렇게 말한다.
“그래도 당신은 농사꾼 아들이잖아요? 것두 모르우?”
아내는 앰한 데 신경질을 부린다.
“아, 이 사람아! 어렸을 때 농사짓는 어머니 좀 도와드린 걸 가지고 농사꾼이라니? 내참! 어렸을 때 시골서 안 자란 사람이 얼마나 있나? 내 나이 또래에.”
“그래도 도시에서 산 나보다는 당신이 더 나을 거 아니우?”
“허, 이 사람이 안 되는 건 다 남의 탓이네그려.”
아내는 다시 채근이다. 귀찮지만 어쩌겠는가. 가정의 평화를 위하여 나는 다시 운전대에 올랐다. 마트에 달려가 다시 그때 먹었던 단호박을 샀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아내는 호박죽은 뒷전이고 호박을 턱 반으로 가르더니 호박씨만 쟁반에 받쳐 들고 밖으로 쌩하니 나간다.
호박꽃도 꽃이냐고? 진짜 호박꽃 보기는 했어?
궁금해 따라가 보니 이게 웬일인가? 아내는 한 주먹씩 그 호박씨란 놈을 호미로 판 골에 쳐 넣는다. 그래도 어렸을 때 농사꾼 어머니를 도왔던 자락이 있는지라, 그냥 두고 보는 것은 도리가 아닌 듯하여 옛날 농사꾼(?)의 사명을 가지고 내가 말했다.
“여보, 그렇게 한꺼번에 많이 집어넣으면 어떡해요? 두세 알씩만 넣어요.”
“당신은? 지난번에 싹이 안 난 것 보고도 그런 말을 해요. 성한 씨앗 한 둘 정도 날 건데 뭐.”
막무가내인 생자 농사꾼 아줌마를 누가 말리랴 싶어 그냥 놔뒀다. 아내는 터앝은 좁아 성에 안 찼던지 집을 두른 둔덕으로 돌아가며 모두 호박씨앗을 심었다.
그러고는 다시 일주일, 그새 한바탕 비가 와주어 하늘도 도왔다. 지난 번 안 났던 것까지 둔덕이 온통 호박밭이 되어버렸다.
아직도 호박꽃을 꽃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은 회개해야 한다. 온 둔덕을 덮은 호박꽃 때문에 우린 신이 난다. 벌떼가 우르르 몰려와 한가한 우리부부의 동무가 되어줄 때의 행복을 알고 그런 말을 하는가?
호박꽃이 나비를 부르는 원흉(?)이다. 활짝 핀 호박꽃이 얼마나 예쁜지 모른다. 아내가 벌이 든 호박꽃을 바라보며 말한다.
“지금도 ‘호박꽃도 꽃이냐’라고 말할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아내 말처럼 정말 찬찬히 들여다보면 호박꽃은 참 아름답다. 그리 아름다운 노란색은 다른 데서 본 적이 없다. 꽃잎도 두툼하니 얼마나 넉넉한가. 그 속에 벌이란 놈이 들어앉은 품새란, 정말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자연의 아름다움이다. 오묘한 자연의 신비가 다 그 속에 들어앉았다.
옥수수가 키 자랑하고, 고추가 맵게 익고, 토마토가 불그레 부끄럼 탄다
봄에 산에 오르다 그 향 좋기로 유명한 취나물도 뿌리째 채취해 빈 둔덕에 심어 놨으니 내년에는 산에 올라가지 않아도 집 곁에서 취나물을 뜯어먹을 참이다. 치커리는 이른 여름이 다가올 때까지 다 추수를 마쳤고, 그때는 치커리 쌈만 먹었다.
이미 고추는 몇 번이나 수확을 했다. 된장에 꾹 찍어 한 입 물면 매콤달콤한 맛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냥 마트에서 사다 먹는 고추하곤 질적으로 다르다. 된장국에도 던져 넣고 끓이면 그 맛이 매콤쌉싸름한 게 참 감칠맛 난다. 무공해에다 우리부부의 달콤한 사랑까지 먹고 컸으니 어찌 달지 않으랴.
토마토는 좀 그렇다. 종묘상 아저씨가 분명히 큰 토마토라고 해서 사다 심었는데 열리는 걸 보니 방울토마토다. 그러면 어떠리. 바알갛게 익은 방울토마토를 한 알 톡 입안에 넣고 이빨로 톡 건드리면 그 새콤달콤한 맛이란, 말로는 다 표현이 안 된다.
아직 소출이 없는 것은 옥수수인데 이미 며칠 안에 ‘날 따다 잡슈!’ 하고 큰 키를 자랑하고 있다. 옥수수수염이 뽀드득 마르는 날 냉큼 따다 가마솥에 쪄 먹을 것이다. 터앝에서 자라는 우리 부부의 보배들을 보며 시가 절로 나온다. 내년에는 이런 행복 당신도 잠겨보시길.
터 앝
옥수수가 쑥쑥 키다리 되고
고추가 맵게 달리고
토마토가 불그레 수줍음 탄다.
나도 키 좀 컸으면
힘들고 버거운 이들 잘 살필 수 있게
나도 좀 매웠으면
거친 세상 여무지게 헤치게
나도 좀 붉었으면
흑백 같은 삶에 색깔을 넣게
터앝에서 내 스승들이
오늘도 젊고 푸른 손을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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