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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기가 몰고 온 장맛비의 변화가 무쌍하다. 좍좍 쏟아지다가 금세 그쳐 웃비가 된다. 산 저편으론 해가 나고 이 편에선 비가 내려 햇비가 되는가 하면, 햇볕이 잠깐 나는 틈을 타 여우비를 질금거리다 거센 바람에 나뭇가지를 뒤흔들며 비보라가 일기도 한다.

 

농부에게 칠월은 어정대는 계절이다. 바람이 불고 비가 세차니 텃밭, 논두렁, 개울가를 어정대다 돌아와도 별반 할 일이 없다. 수박이나 따 후텁지근하고 퀴퀴한 더위나 식혀볼까 덩굴을 헤쳐 본다. ‘나 여기 있어요’ 저마다 보름달 같은 모습으로 넉넉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다 자라 속을 탱탱하게 채워낸 모습은 언제 보아도 크고 묵직해 안정감이 있어 보기에 흐뭇하다.

 

 수박꽃 위에 개미가 살짝, 섹시하네요.
수박꽃 위에 개미가 살짝, 섹시하네요. ⓒ 윤희경

 

수박은 중앙아프리카에선 하늘의 은총이다. 사막에 사는 사람들에겐 물이고 식량이며 가축의 먹이로도 쓰인다. 수박은 중앙아프리카에서 실크로드를 따라 들어와 서과(西瓜), 통속엔 95퍼센트의 물로 꽉 차 영어권에서는 수과(水瓜), 즉 워터메론(watermelon)이라 부르기도 한다. 

 

여러 해 수박을 키워왔어도 잘 익은 것을 골라내는데 신경을 써야한다. 두드려 봐서 가야금줄처럼 맑고 청아한 소리가 서늘하게 들려오고, 연두색 바탕에 줄무늬가 선명하며, 땅에 닿은 부분이 노랗고, 배꼽자리가 알맞게 작아 꼭지가 싱싱하고 탄력적이면, 속이 야물 차고 당도가 뛰어나다 할 것이다.

 

 여린 수박이 넘 싱싱합니다.
여린 수박이 넘 싱싱합니다. ⓒ 윤희경

 

수박은 한유할 때 여럿이 모여 씨를 발라가며 천천히 먹어야 제 맛이 난다. 우리 옛 문헌에 수박을 많이 먹거나 빨리 먹으면 배탈이 나고 설사가 쏟아져 아니 먹음만 못하다 전해오고 있다. 천천히 조금씩 적당히 먹으라고 수박 속에다 씨를 박아놓았을 터. 조물주의 마음 씀씀이와 배려가 사뭇 시원하고 넉넉하다.

 

조선 건국 초 이성계 장군이 여진족에 쫓겨 샘가에 도착했을 때 목마른 장수에게 버들잎을 띄워 물을 떠받친 어느 여인의 설화와 수박 속 씨는 일맥상통하는 오묘한 조화라 할 것이다.

 

아직도 백마타고 올 훤칠한 연인을 기다리는 여인이 있다면 버드나무가 찰랑거리는 우물가 샘물에 통 수박을 담가 둥둥 띄워놓고 말발굽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볼 일이다.

 

 수박 위에 비는 내리고...참, 잘 생겼습니다.
수박 위에 비는 내리고...참, 잘 생겼습니다. ⓒ 윤희경

 

씨 없는 수박은 당도가 높다하지만, 수박에 씨가 없으면 껍데기가 두꺼운 데다 공동(空洞)이 드문드문해 상품 가치가 덜하다니 알아서 골라 먹을 일이다.

 

수박은 여럿이 모여 먹을 때 그 맛이 더하다. 복 때가 되면 해마다 반 천렵(川獵)을 한다. 이 때마다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수박이다. 달덩이 만한 수박을 시원히 흐르는 냇가에 담가놓았다가 발을 씻으며(濯足), 쫙쫙 쪼개 함지에 담아놓고 너도나도 모여앉아 뱃속을 채워낸다.

 

 수박속이 붉게 꽉 차 있습니다. 씨 없는 수박인가. 씨가 안 보여?
수박속이 붉게 꽉 차 있습니다. 씨 없는 수박인가. 씨가 안 보여? ⓒ 윤희경

'수박 한 조각 입에 대지 않고' 삼복더위를 보내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 복 때가 되면 수박 맛 음미하는 재미로 산다. 수박씨를 골라내며 불뚝거리는 성깔을 가라앉히고 단물을 마시며 더위를 식혀낸다.

 

수박의 꽃말은 '큰마음'이다. 조금 전부터 갈매기 태풍도 잠잠하고 장대비도 물러가려는 지 햇볕이 쨍하다. 오늘 저녁엔 음력 열이레 둥근달이 서산마루에 솟아오를 것이다. 뜰 밖 샘터에 물을 길어다 둥근 수박을 함지박에 담가놓고 씨를 골라 배를 채우며 수박처럼 둥글고 원만한 큰마음의 깊이를 되새겨 보며 이 여름을 서늘하게 보내려 한다.

 

모처럼 산골짝을 타고 내려온 하늬바람이 이리 시원할 수가 없다.

덧붙이는 글 | 다음카페 '북한강 이야기' 네오넷 코리아 북집, 농촌공사 전원생활. 정보화 마을 인빌뉴스에도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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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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