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기 싫다. 호전적인 사람도 아니다. 누구한테도 미움받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할 이야기를 하지 않는 사람은 아니다. 같이 가자는 것이다. 작은 ‘아고라’지만 힘과 용기를 얻는다. 나중에 여러분 뒤에 숨어서 같이 가자고 할지 모른다."
정연주 KBS 사장의 퇴진에 반대하다 동의대 교수(광고홍보학)와 KBS 이사에서 해임된 신태섭 교수가 한 말이다. 신 교수는 22일 저녁 부산민주언론시민연합 강당에서 열린 '신태섭 교수와 함께하는 속 시원한 언론풀이-작은 아고라'에 참석해 심정을 털어놓았다.
이날 모임에는 부산민언련 회원과 언론노조 부산울산경남협의회 간부, 누리꾼 등 50여 명이 참석했다. 신 교수는 이날 2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선을 많이 받다 보니 부담스럽다. 어떻게 하다 보니 상황이 여기까지 왔다"는 말부터 한 신 교수는 박재완 청와대 수석이 최근 KBS와 관련해 했던 발언은 "그냥 망언이다"고 말하며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과거 국민들은 방송을 철저하게 외면했으며, 국민들은 KBS에 돌도 던지고 화염병도 던졌다. 87년 6월 항쟁 이후 민주주의를 조금씩 해왔다. 제도가 되었다고 해서 민주주의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실천하겠다는 의지가 중요하다."
그는 "박재완 수석의 망언은 방송에 대한 무식함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며 "힘 있는 사람이 쥐락펴락하는 도구 정도로 밖에 여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이명박 정부는 '모 아니면 도'식이다"며 "5년 단임이니까 성급했는지 모르겠는데 되자마자 대운하며 영어몰입교육, 공공분야 민영화(선진화)를 하겠다고 했는데, 절차를 무시하면서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대표적인 게 미국산 쇠고기 수입인데, 퇴임하는 부시 미 대통령한테 선물 하나 주고 왔다"고 밝혔다.
"대통령직 인수이 시절부터 압력 느껴"
신태섭 교수는 이명박 대통령직 인수위 시절부터 KBS 이사 사퇴의 압력이 올 것이라고 느꼈다고 밝혔다.
"저에 대한 압박이 들어온다고 예상했었다. 인수위 시절에 기자들이 취재를 해서 이야기를 해주더라. 당시 인수위에서는 KBS 사장과 이사를 누가 하느냐는 거론까지 있었던 것 같다. 기자들은 KBS가 최우선 순위에 들어가 있다고 했으며, 고생 좀 하시겠다고 하더라. 그 말을 듣고 시련을 좀 하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학교를 통해서 올 것으로는 생각하지 못했다."
신태섭 교수는 총장을 통해 KBS 이사 사퇴 압력을 받았던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는 "3, 4월 사이 총장한테 네 번 불려갔는데 그때는 살이 빠졌다"면서 "어디 가서 말을 하지 못하고 속으로 끙끙 알았다, 나중에 안 되겠다 싶어 주변에 알렸다"고 말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보궐이사(강성철 부산대 교수)를 추천하고 대통령이 위촉한 것에 대해 신 교수는 "이 정부가 법 위에 있다"고 지적했다.
"이명박 정부는 우리의 상상력을 넘어서고 있다. 동의대를 상대로 해임무효가처분신청을 냈는데, 아직 법원의 결정이 나오지 않았다. 대통령이 보궐이사를 위촉하면서 7월 1일자(동의대 신태섭 교수 해임 날짜)로 소급했다. 그것은 법 위에 있는 것이며, 저들은 구름 위에 신선 놀음하고 있다."
"KBS 이사 자격 문제는 법원에 내놓은 가처분신청을 보고 판단해야 할 문제다”면서 “가처분신청 결정이 나오려면 최소 20일 내지 한 달 정도 걸리는데, 그것이 받아들여지면 교수직에서 해임되지 않는다. 저들은 길게 시간을 끌기 전에 빨리 해결해 버린 것이다. 창의적인데, 그런 분들이 무섭다. 그런 사람들이 어떤 짓을 할지 모른다."
신태섭 교수는 KBS 이사회 때 정연주 사장 퇴진 결의안을 채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저들은 어쨌든 이사회를 장악했고, 정 사장을 날릴 것"이라며 "감사원과 국세청, 검찰을 다 동원해서 정 사장의 비리를 찾으려고 했지만 나오지 않으니까 마지막 수단으로 이사회를 통해서 사퇴시키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KBS 이사회는 사장 해임 건의를 내고 대통령이 받아들이는 형식이 될 것인데, 그것도 불법"이라며 "현행 규정상 대통령이 그렇게 할 권한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연주 사장이 이끌고 있는 지금 KBS는 공정성과 신뢰성, 영향력에서 모두 1위다"면서 "KBS가 적자라며 방만경영을 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그랬다면 벌써 쫓겨났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민주주의의 핵심은 분배다"면서 "지금은 더 좋은 법과 제도를 만들기는 안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있는 좋은 제도를 지키도록 하자"고 호소하며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시민들이 세계사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을 하고 있다. 관심과 참여, 목소리를 내야 한다. 촛불이 KBS를 두 겹 세 겹으로 에워싸야 한다. 전투에는 질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건전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다시 일할 수 있는 씨앗을 키워 놓아야 한다. 건전한 세력들이 대동단결해야 한다."
"항상 바른 글을 쓰면 사람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이날 모임에는 배다지 부산민언련 고문과 이진로·장길만 공동대표, 김병국 언론노조 부산울산경남협의회 회장 등이 참석했다. 또 인터넷을 통해 행사를 알고 온 누리꾼도 있었다.
이진로 공동대표는 인사말을 통해 "새 정부 들어서 언론과 관련해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생겨나고 있다"며 "언론은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데 필요불가결한 요소이며 민주화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해왔다"고 밝혔다.
이어 이 공동대표는 "새 정부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면서 "KBS에서 이뤄지는 압박은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가는지 예측하기 어려운 어두운 상황이다"고 말했다.
또 이 공동대표는 "KBS 이사장이 외부의 압력에 의해 사퇴하고, 이사들이 외부의 부당한 처사에 의해 물러나고, 앞으로 사장 등 다른 구조로 이어지면 앞으로 KBS가 어떻게 될지 걱정이며, 그것은 우리 사회 민주주의를 흔드는 큰 사태가 될 것"이라며 "우리가 앞으로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 언론의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고 강조했다.
배다지 고문은 "신 교수가 해임을 당했는데, 항상 바른 글을 쓰면 사람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는 말이 있다, 신 교수가 그 꼴이다"며 "죽음이 두려워 곡필하게 되면 하늘이 가만두지 않는다, 결코 곡필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동의대 제자라고 한 사람은 "동문들도 관심이 높다"면서 "이 문제가 긴 호흡보다는 짧게 끝냈으면 한다"고 말했다.
'다음 아고라' 회원이라고 한 사람은 "이명박 정부는 전혀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지 않을 것이고, 자기들만의 사귐을 위한 정치를 할 것"이라며 "법을 내세우면서 법을 위반해 온갖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지금은 누리꾼과 촛불과 연대해서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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