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은 부지런함에서 오는 걸까? 이른 새벽을 알리는 새들의 노래 소리에 밤잠은 빛을 향해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여느 사람들은 아직도 새벽이 추운지 한 여름이 성큼 다가왔음에도 겨울 웃을 입고 시장에 앉아 손님을 기다린다.
연길에서의 둘째 날. 어제의 여정이 머리를 스친다. 새벽 6시 기상. 오전 7시 50분에 순천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광주에 9시 10분 도착. 9시 20분에 고속버스를 타고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오후 1시 50분. 2시 40분 중국 연길 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선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연길공항에 도착하니 시계는 3시 45분을 가리키다. 한국과 1시간의 시차가 있으니 한국 시간으론 4시 45분이다.
피곤함에 일찍 잠이 들어서인지 새벽녘의 참새 소리가 밤잠을 밀어낸다. 밝아오는 미명이 들어온 연길의 모습은 지난 겨울의 모습과는 사뭇 달라보였다. 겨울 동안 연탄난방으로 인해 굴뚝에서 솟아오르던 시커먼 매연은 사라지고 지금은 아름다은 연변의 자태를 뽐내기에 한치의 부족함도 없었다.
창가 너머로 연변의 자연에 흠뻑 빠져들 즈음 지인의 기척이 들리더니 새벽시장에 가보자고한다. 그래서 옷을 입고 나선 시간이 새벽 4시 20분. 4시부터 장이 선다는 말이 쉽게 믿기지 않았지만, 도보로 5분 정도 걸어 나가자 아파트와 상가 사이에 커다란 시장이 벌써부터 인파로 북적인다.
이곳은 특별히 장 이름도 없단다. 하지만 이곳에 모인 많은 사람들만큼이나 시장에는 없는 것이 없다. 생필품을 비롯하여 인근 시골지방에서 재배한 각종 야채와 과일뿐만 아니라 생닭들도 한 모퉁이를 차지하고 사람들을 기다린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한근에 얼마씩이라는 큰 소리로 외치면서도 적극적으로 팔려는 모습은 아닌 듯. 값을 흥정하면 어느 정도 깍아주지만 에누리는 없다. 근이 넘으면 정확히 계산하여 그만큼 더 돈을 내거나 물건을 빼내야 한다. 다시말해 값이 정해지면 정확하게 근으로 계산하여 돈을 받는 정찰제다.
시장에 들어서자 길게 늘어선 야외 정육점이 눈을 의심케한다. 냉동시키지 않는 생고기들이 자판대 위에서 손님을 기다린다. 쇠고기와 돼지고기, 그리고 개고기를 비롯한 다양한 고기들이 속살을 드러내며 도열한다.
지인의 말에 의하면 이곳 고기 맛은 일품이라고 자랑이다. 냉동을 시키지 않아 생고기의 참맛을 즐길 수 있고 기름기도 거의 없다고 한다. 또 이곳 사람들은 개고기를 무척 즐긴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한 마리를 통째로 사가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쇠고기 값은 우리나라와 비교해서 무척 저렴한 편. 한 근(500g)에 17위안(약 3000원)이니 10kg을 사도 우리나라 돈으로 약 6만원 정도. 농산품 가격도 미찬가지다. 수박 한 통이면 대략 15위안 내외. 복숭아를 13위안을 주고 사니 한쪽 어깨가 처진다.
이런 시장은 4월에 시작하여 10월 말까지 열린단다. 추운 겨울을 제외하고 연중 열리는 시장이기에 이곳 사람들은 한사코 신선한 야채 등을 보관하기 위해 냉장고가 클 필요도 없단다. 매일 아침 시장에 가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기에 그날그날 먹꺼리를 조금씩 사갈뿐이다.
이곳에서 농축산물의 판매 단위는 저울이 근간이다. 다시 말해 근(한근 500g)으로 계산하기 때문에 저울의 눈금을 속이는 지 잘 보아야 하는 것은 한국인의 기본. 드물긴 하지만 한국 사람들이 오면 시장 상인들은 종종 저울을 속인다.
또 한 가지. 과일을 살 때는 반드시 잘 살펴야 한다. 대부분의 과일이 매끄럽고 윤기가나면 트리오로 세척한 것들. 봉숭아를 커다란 통에 넣고 트리오로 세척하여 판매대에 놓은 것을 보고 할 말이 없었다. 그러니 과일을 고를 때는 반드시 세척 여부를 잘 판단해서 사야 한다. 그러나 이곳 사람들에겐 그것이 별 상관없어 보였다. 아마도 익숙한 생활환경이라 여겨지긴 했지만 이방인에겐 조금은 낮선 광경.
시장을 돌아서 나올 즈음 당나귀가 끄는 수레 위에서 참외를 팔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가 하면 아직은 수줍은 모습을 담고 있는 아가씨가 여러 가지 나물류를 팔고 있어서 바디랭귀지로 물어본 나이는 23세. 어머니를 돕기 위해 나온 듯. 그녀의 옆자리엔 힘들고 지친 모습에 어머니가 앉아 별 사람이 다 있다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세상의 새벽시장이 다 이럴까? 지인의 말에 의하면 새벽시장에서 물건을 팔기 위해 멀리 사는 사람들은 새벽 2시 정도에 집을 나선다고 한다. 여름이라곤 하지만 이곳의 날씨는 새벽이면 여전히 쌀쌀하다. 그래서인지 시장 주변에는 사계절 옷을 입은 사람들을 다 볼 수가 있다. 심지어 두터운 겨울 외투를 입고 있는 상인 옆에서 겨울 이불을 덮고 자고 있는 아이의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이렇게 연길에서의 또 다른 둘째 날의 시작은 새벽부터 설레임으로 가득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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