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바닥이 뜨거웠다. 뜨겁게 달궈진 대지를 걸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청년시절 동상을 심하게 앓은 후부터 발바닥은 조금만 무리해서 걸으면 뜨거워졌고 통증이 심했다. 통증의 정점에 선 이후에는 그냥저냥 견딜 수 있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홍천 팔봉산 아래로 흐르는 홍천강, 장마로 풍성해진 강물을 보니 발을 담그고 싶다는 욕구가 뜨거워지고, 운동화에 옥조여 한껏 뜨거워진 발바닥이 어서 시원한 강물에 자기를 넣어달라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잠시 쉬었다 가는 걸음이 더 탄력을 받을 것 같아 홍천강 물가에 앉아 발을 감싸고 있던 신발과 양말을 벗어버리고 강물에 발을 담갔다. 발끝에서부터 시작된 시원함은 마치 나무뿌리가 물을 빨아들여 온 몸에 퍼지게 하는 것처럼, 내 몸 곳곳에 숨어 헐떡거리던 더위를 쫓아낸다.
잠시 뒤에 뭔가 톡톡거리며 발을 간지럽히는 존재가 있음이 감지된다. 송사리들이 못생긴 발에 키스를 하고 있다. 닥터 피쉬가 유행이라더니만 이놈들이 물에 불어버린 각질이라도 뜯어먹겠다는 것인가 싶어 가만히 바라보았다. 가만히 바라보니 송사리보다는 못생긴 발이 눈에 들어온다. 순간 '굳은 살 가득한 못생긴 발이여! 너에게 나는 얼마나 무심했는가!'
하는 외침이 뇌리에서 번뜩 지나치며 소리를 지른다.
발바닥이 아닌 내 몸 어디에 굳은 살이 있는가? 그나마 농촌에서 생활할 때에는 손바닥에도 굳은 살이 있었는데, 지금의 손바닥은 굳은 살 없는 가녀린 여인네의 손바닥이다. 부끄러웠다. 노동으로 단련된 사람들의 손과 발, 육체노동을 통해 만들어진 근육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런데 지금 내 몸은 가진 굳은살이 박힌 발바닥 하나 뿐이다.
못생긴 발, 그것이 내 삶의 여행길을 풍성하게 해주었다. 내 몸 가장 낮은 곳에서 온 몸의 무게를 버텨내며 흙과 호흡하며 대지의 생명을 빨아들여 내 육체와 영혼의 양식을 대지로부터 공급해 준 것이다. 발에 대한 고마움을 잊고 살았던 것이 부끄럽고, 자유로이 두 발로 대지를 걸어다닐 수 있음에 대해 감사하지 못한 날들까지도 부끄러웠다.
못생긴 것들, 누구도 봐주지 않는 것들, 관심의 대상이 아닌 것들, 그러나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되는 것들. 이 땅의 민초들이요, 소외되고 헐벗은 사람들이 오버랩된다. 이 시대는 얼마나 그들을 멸시하고, 그들의 인내심을 시험하고 있는가?
민초들의 손과 발은 거칠다. 굳은 살 투성이에다 주름살 투성이다. 쩍쩍 갈라져 풀물이 들고, 기름때가 갈라진 틈바구니에 문신처럼 남아있다. 그들 덕분에 곱상한 손과 발을 가진 우리들이 살아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이 시대는 그들에게 더 많이 인내할 것을 요구하고, 그들의 처절한 외침을 몇 마디 이념적인 단어들-반미, 친북, 좌파 등등-로 치부함으로 그들에게 더 큰 짐을 질 것을 요구한다.
덩굴식물은 덩굴손이 있어 비바람에도 넉넉하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그들이 없었다면 바닥만 기다가 비가 오면 빗물에 잠겨 애써 피운 꽃을 잃고, 애써 열매를 맺은들 곯아버릴 것이다. 모두가 꽃과 열매만 바라볼 때에도 덩굴손은 묵묵히 뭔가를 잡는 일에 골몰한다.
부드럽던 덩굴손은 한 번 잡으면 절대로 놓지 않고, 제대로 잡았다 싶으면 부드럽던 덩굴손을 포기하고 굳어간다. 제 철이 지나 모든 삶의 여정을 마친 후에도 덩굴손은 바짝 굳어 자기가 붙잡은 것을 놓지 않는다. 굳어 단단해진 덩굴손, 마치 굳은 살로 감각이 둔해진 못생긴 발바닥의 한 부분처럼 느껴진다.
강물은 쉼없이 흐르고 있었다.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발에 입맞춤을 하듯 못생긴 발에 키스를 퍼붓던 송사리들이 물에서 발을 들자 사방으로 흩어진다. 뜨거웠던 발바닥이 시원하다 못해 얼얼할 정도로 차갑다.
'발아! 미안하다. 그리고 발 같은 이 땅의 존재들이여, 죄송합니다! 내 발을 애정있게 바라보고, 아루만지듯 당신들의 삶도 에정있게 바라보고, 어루만져야 하는데 나 혼자 살기에도 퍽퍽하다고 한숨쉬며 나약하게 살아갑니다. 이 모두가 내 삶의 굳은 살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미안합니다.'
내 삶의 여행을 풍성하게 했던 것, 그것은 바로 못생긴 발바닥이었다. 아침 저녁 손과 얼굴에 스킨을 바르듯하지는 못할지라도 너에 대한 감사를 표시하는 일을 잊어서는 안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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