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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월 20일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대통령실장과 수석 인선내용을 발표한 후 인사하고 있는 박재완 국정기획수석비서관.
지난 6월 20일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대통령실장과 수석 인선내용을 발표한 후 인사하고 있는 박재완 국정기획수석비서관. ⓒ 청와대

"최근 우리나라는 이념 이기주의가 극심해지고 있으며, 극심한 이념 이기주의는 우리나라가 선진화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박재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비서관이 25일 제주도에서 열린 대한상공회의소 '제주포럼'에 참석해 한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최측근 참모인 박재완 수석이 최근 잇따라 편협한 인식에 기초한 부적절한 발언을 쏟아내 구설수에 올르고 있다.

 

박 수석은 이날 '새 정부 국정철학과 주요 국정 과제'라는 주제의 강연에서 "설익은 민주화의 적폐가 대한민국 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데 특히 이념을 둘러싼 집단 이기주의가 무시하지 못할 수준에 이르렀다"며 이같이 말했다.

 

앞서 박 수석은 "KBS 사장은 정부 산하기관장으로서 새 정부의 국정철학과 기조를 적극적으로 구현해야 한다"고 말했다가 "국영방송과 공영방송도 구분하지 못하는 망언"이라는 빈축을 들은 바 있다.

 

박재완 "자동차 노조가 쇠고기 문제로 파업? 이념 아니면 뭐냐?"

 

박재완 수석은 이날 특강에서 "이념에 얽매어 너무나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면서 "상대편의 의견을 존중해야 하며, 권리만 주장하지 말고 책임도 지는 상생의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수석은 이어 수도권 외곽순환도로 건설과정에서 나타난 사패산 터널 공사와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터널 공사 지연 과정을 예로 들며 "환경이 모든 것에 앞서야 한다든지, 반미가 모든 가치에 우월하다든지 등에는 문제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천성산 터널을 뚫는 과정에서 도롱뇽을 보호하기 위해 2조5161억 원이나 소요됐다"며 "차라리 말이 통해서 도롱뇽을 집단 이주시켜서 공사 후에 돌아오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기초 질서와 법치가 무시되는 것도 우려된다"면서 "경찰이나 군인을 우습게 보고, 공무원의 말을 듣지 않으며, 정부에 대해 '배째라'고 한다. 이 때문에 행정명령을 무시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박 수석은 특히 "철 지난 이념화의 부작용도 걸림돌"이라고 지적하면서 교육·노동시장의 이념 과잉, 감상적 반미·친북정서, 배타적 우월주의, 획일적 평등주의 반기업·반부자 정서 등을 근거로 제시했다. "어떤 자동차 노조가 미국산 쇠고기 문제 때문에 파업을 하는 일은 이념이 아니면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또 "한미자유무역협정(FTA)에는 그렇게 관심도 많고, 반대도 많이 하면서 한·EUFTA에는 관심이 없다"며 "이들(한·EU FTA 협상단)이 입국할 때 환영해 주는 반대 데모가 없다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FTA에 대한 반대라기보다는 반미 감정으로밖에는 설명이 안된다"는 게 박 수석의 주장이다.

 

그는 이어 "만연해 있는 외국인 노동자를 무시하는 생각 등 배타적 우월주의, 자기의 소득이 아주 창의력이 뛰어나고 능력있는 사람들보다 낮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획일적 평등주의, 반기업·반부자 정서 등도 우리의 걸림돌"이라고 강조했다.

 

박 수석은 "우리나라처럼 운전하면서 차선을 자주 바꾸는 경우도 없다"며 "정부가 출범한 지 5개월이 됐지만 벌써 싫증을 느낀다"고 말했다. 또한 "장관이 바뀌면 당연히 정책이 바뀌는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투표 패턴도 왔다갔다 해서 지지도도 한 달만에 반토막 나는 게 대한민국"이라고 설명했다.

 

자동차노조 '쇠고기 파업'은 반미?... 최장 근로시간은 '잠재력'?

 

 박재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비서관
박재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비서관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그러나 박재완 수석의 이같은 발언은 환경·노동·인권 등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이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수립하고 기획·집행해야 할 핵심 참모로서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우선 천성산 터널 공사 지연의 경우 '도롱뇽 보호'로 상징되는 전형적인 환경 문제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온실가스 감축 등 환경 문제 때문에 전 세계를 누비며 호소하고 있고, 최근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 <타임>지로부터 환경영웅으로 선정됐는데, 박재완 수석만 미래가치로서의 환경을 현재의 금전으로 환산하고 있다는 것.

 

박 수석은 오히려 이 대통령에게 '환경영웅상'을 안겨 준 청계천 복원과 유지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경찰과 공무원이 국민을 보호하고 국민에게 봉사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법 질서 원리는 무시한 채 "국민이 공무원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식의 권위주의적 발상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특히 미국산 쇠고기 문제와 관련한 현대자동차 노조의 파업을 '이념 문제'로만 인식하는 것은 그가 '광우병 파동의 책임을 지고 경질됐어야 했다'는 지적을 역설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노조의 파업은 상급단체인 금속노조의 산별파업 방침에 따른 것이었다.

 

당시 금속노조는 "촛불집회 참여는 단체급식의 대상인 노동자의 건강권과 관련된 부분으로써 중앙교섭요구안에 있는 건강권에 해당한다"고 반박했다.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도 근로조건과 관계없는 '정치파업'이라는 지적에 대해 "광우병 쇠고기로 노동자가 노동력을 상실하고 급식을 먹은 아이들이 잘못되면 임금에 막대한 손실이 발생하는데 어찌 근로조건과 무관한 것이냐"고 항변했다.

 

박재완 수석이 한미FTA 반대 여론을 '반미 감정'으로 치부한 것 역시, 한미FTA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과 체결한 졸속 협상 내용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박 수석은 '걸림돌'에 이어 '대한민국의 잠재력'으로 "높은 교육열과 남다른 근로·저축·성취의욕"을 제시하면서 "OECD 최고의 근로시간 연간 2261시간"을 근거로 들었다. 독일의 연간 근로시간이 1353시간이라는 소개도 첨부했다. OECD 국가 중 최장 근로시간을 부끄러워 하는 게 아니라 '잠재력'이라며 자랑스럽게 생각한 것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박재완 수석의 최근 언행과 관련 "박 수석이 지난 번 박미석 사회문화 수석의 사표 수리가 늦어진 것에 대해 '언론이 반성할 시간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며 "쇠고기 파동을 거쳤지만, 여전히 국민을 무섭게 생각하지도 않는 오만함에서 비롯된 것 아니겠냐"고 꼬집었다.


#박재완 국정기획수석비서관#이념 이기주의#정연주 KBS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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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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