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장기요양보험’이 실시된 지 한 달도 안 되었는데 벌써부터 시끄럽다. 특히 일선 노인복지시설의 시설장은 물론이고 시설에서 일하는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물리치료사나 작업치료사, 사회복지사, 생활지도원 그리고 조리원에 이르기까지 현장에서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보건복지가족부(이하 복지부)에서 사회복지시설을 관리하며 예산을 지원하던 것이, 건강보험공단으로 이관되면서 예산삭감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시설 근무자들은 30~40%의 연봉삭감을 감수해야 하는 형편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다 어떤 시설에서는 지금까지의 호봉을 인정하지 않고 요양보호사 제도가 적용되는 것을 시작으로 연봉을 다시 책정하여 계약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비정규직으로 1년만 계약하는 경우도 생기다 보니 반발이 이만저만 아니다.
먼저 시행된 일본과의 비교
독일이나 일본은 오랜 시간 연구하고 노인수발보험제도 시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특히 일본의 경우 8년 전부터 시행했음에도 문제가 많다. 일본은 지난 2000년 4월부터 '개호(介護)보험'이란 제도를 시행 중이다. 2년 이상 준비를 해 시작한 지 8년이 지났다.
일본의 경우 개호에 대한 수요를 공급이 따라주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일본보다 훨씬 낮은 기준으로 이 제도를 실시하기에 더 심각한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를 초래할 것이 뻔하다. 국가나 지자체가 책임져야 할 부분을 민간시설의 시설장들이 책임지도록 하는 제도여서 우리나라의 열악한 시설의 형편을 볼 때 일본 보다 더 심각해 질 것이 뻔하다.
일본의 개호노동자는 우리나라의 요양보호사인데 임금수준이 대단히 낮은 편이다. 맞벌이 부부나 다른 직업으로의 진출이 어려운 조건이라면 몰라도 다른 분야의 초봉보다는 현격히 낮은 수준이라서 ‘효’라는 개념만으로 이들의 우수한 질적 보살핌이 적용될지 의문이다.
한 노인요양시설의 시설장은 일본의 상황을 이렇게 말했다.
“일본에선 두 시설이 합치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운영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기업의 M&A와 같은 것이죠. 우리도 작은 시설들은 살아날 수 없습니다. 완전히 시장논리로 가는 거죠.” 이 말에서 우리의 노인장기요양보험의 험로를 읽을 수 있다.
일본 ‘개호보험’의 현재는 고스란히 우리나라의 노인장기요양보험의 미래 모습이다. 2년이란 오랜 연구 끝에 시행되었음에도 8년이 지난 지금까지 문제점을 보완해 나가고 있다. 경제력도 일본에 못 미치고 연구기간도 짧은 우리나라에선 더 많은 시행착오가 생길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후발주자란 점이 장점이 될 수도 있다. 이미 실시하는 국가들을 보고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그리고 재원문제
복지부에 따르면 요양등급을 받기 위해 지난 3일 현재 22만 6천 여명이 신청했다고 한다. 지난달 26일을 기준으로 등급 판정을 위한 1차 방문조사는 89%(약 18만5천 건)가 이뤄졌으며, 요양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1~3등급 판정은 68%에 이르렀다.
요양시설에는 1~2등급이, 재가 서비스는 3등급이 받을 수 있다. 복지부에 따르면 7월말 14만 명, 올해 말 17만 명가량이 요양서비스 혜택을 받을 것이라고 한다. 이는 우리나라 노인인구 500만 명의 3.1% 수준이다. 이렇게 제한적이다 보니 요양서비스를 신청해도 1-3등급을 받기가 쉽지 않다.
한 치매노인의 보호자는 희망에 부풀어 요양보험 등급판정을 신청했으나 등외 판정을 받았다며 볼멘소리를 한다.
“치매의 특성도 모르는 사람들이 판정을 한다고 하니 참 답답해요. 저희 아버지 같은 경우 평소에 멀쩡하시다가도 가끔 인사불성이신데 한두 번 접촉해 보고 괜찮다고 하니 말도 안 됩니다. 희망을 가졌었는데 또 전쟁터로 가야 하다니. 이런 제도라면 있을 필요가 없어요.”
요양서비스를 받고자 하는 수요자는 많은데 3.1%선에 묶여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공급자는 적다는 말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노인성 치매 질환자가 2002년 4만8000명에서 2007년 13만5000명으로 2.83배 증가했다 한다. 노인성 질환자는 2002년 49만9000명에서 2007년 84만7000명으로 69.7% 늘었다. 노인성 질환은 치매, 파킨슨병, 뇌혈관질환, 퇴행성 질환을 말하며 65세 이하라도 노인장기요양보험의 대상자다.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요양시설들이 전국에 퍼져 있는데 수급자는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수도권은 50%가 부족한 상태다. 그렇다보니 수도권의 요양시설은 골라 받고 지방의 요양시설은 아직도 빈자리가 많다. 복지부는 수도권에 많게는 2400병상 가량이 부족하다고 보고 재가서비스 이용이나 인근 다른 지역 시설 입소를 유도할 계획이라고 하지만 지방의 시설은 정원을 채우기도 만만치 않다.
재원도 따져봐야 한다. 지금은 일률적으로 건강보험 가입자에게 건강보험료의 4.05%를 걷는 방식이다. 소득의 1.95%를 내는 독일이나 소득의 0.9%를 내는 일본과는 비교가 안 되게 높은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추세로 노인인구가 늘어나고 노인성 질환이 늘어나다 보면 재원이 고갈될 수도 있다.
기존시설 근무자들의 반발
시설장들은 운영이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가슴이 아프지만 인건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 보니 이미 재계약에 착수했다. 어떤 시설에서는 인원감축을 생각하기도 한다. 이런 와중에 호봉을 인정하지 않고 재계약을 하는 시설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것도 1년 비정규직으로 말이다. 시설장은 시설장대로, 근무자는 근무자대로 불만이 많다.
한 사회복지사는 기자에게 보내온 메일에서 “장기요양보험은 요양시설이 비영리법인이란 것을 인정하는 것이냐, 아니면 영리법인으로 가라고 하는 것이냐”며 “요양시설들이 손익계산을 꼼꼼히 했을 것인데 복지사들의 임금만 삭감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고 물었다.
이런 기존 근무자들의 불만을 알고 있어서인지, 한 시설장은 “지금이 실시 초기여서 힘들기 때문에 임금을 낮추고 같이 허리띠를 졸라매자는 것이지 운영자의 배를 채우겠다는 것은 아니다, 정착될 때까지 힘을 합치면 다시 원래대로 될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미 우리 시설에서도 1/3이 사직서를 냈다”면서 “기존의 숙련된 종사자를 보내고 거의 문외한일 요양보호사를 맞아 제대로 서비스를 베풀 수 있을지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사회복지사의 경우 적어도 2년 이상은 전문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요양보호사교육원에서 교육을 받은 요양보호사는 그렇지가 않다. 급히 급조된 요양서비스요원이라고 보는 게 기존 종사자들의 견해다. 그러기에 평생직장인 줄 알았던 자신들의 일자리가 위협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기존 종사자들도 모두 2년 내에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야 한다. 그러나 새로 요양보호사가 되려는 이들은 아무 조건 없이 요양보호사교육원에서 교육을 받으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야하는 길
선진국으로 가는 길은 여러 면에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선진복지가 있느냐 물으면 된다. 선진복지국가가 되어야 선진국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는 선진국으로 가는 한 걸음을 떼놓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를 그대로 가지고 가면 안 된다.
첫째, 기존 근무자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과거 없이 오늘이 없으며, 오늘 없이 내일이 없다. 모두가 요양보호사로 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기존의 근무자들의 반대의 이유를 알아야 한다. 당국은 당장 감면되는 임금에 대한 보존대책을 세워야 한다. 시설장들의 재량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
둘째, 시설에 대한 돌봄이 필요하다. 시설이 자립할 때까지 근무자의 임금을 보존해 주는 대책을 한시적으로 시행하여야 한다. 정부는 충분한 검토를 거쳐(실제로 시범실시를 거쳤음) 실시한다고 하지만 시설장들의 의견은 많이 다르다. 그렇지 않고서야 실제로 직원들의 임금을 삭감하는 조치를 취할 이유가 없다. 시장논리가 아닌 복지논리가 지배해야 한다.
셋째, 요양보호사교육의 부실화 우려다. 우후죽순처럼 들어서는 요양보호사교육원에 대한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 교육을 철저히 실시하는지, 요양보호사 자격증이 제대로된 교육이 필요하지 않은 자에게 발행되고 있지는 않은지, 위조되고 있지 않은지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넷째, 수급자를 확대해야 한다. 수급을 원하는 사람이 등급판정에서 밀리고 만다면 복지정책이 아니라 입시정책이 되고 말 것이다. 원래 정부는 3.4%의 노령인구에게 초점을 맞춰 이 제도를 실시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노인인구의 증가는 실로 엄청난 수준이어서 조속한 시일 안에 10%수준 이상으로 끌어 올려야 한다.
다섯째, 기존의 시설은 물론 민간시설에까지 제도를 확장할 필요가 있다. 수가가 적당하다고 하지만 실제로 시설에서 만난 시설장들의 의견은 다르다. 한 시설장은 “정부의 시책에 따를 수밖에 없는 인가된 시설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노인장기요양보호기관’을 신청할 수밖에 없었다”고 심정을 토로한다. 적정한 의료수가에 대한 다각도의 연구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높아질 이용자들의 권리의식에 대해 능동적으로 대처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대전대 윤경아 교수는 “지금까지는 시설을 이용하는 노인들이 대부분 기초생활 수급자였다. 하지만 이제는 등급에 따라 돈을 내고 이용하게 되기 때문에 권리의식이 높아진다”(충남도정 정책토론회, 충남여성개발원, 세미나자료집, P. 12. 요약)고 지적한다. 무의탁 노인 돌보는 시설이 고작이었던 우리나라 시설들이 이제 질적으로 어떻게 이들의 요구에 부응해야 할지는 앞으로의 숙제가 아닐 수 없다.
이제 첫 발을 내디딘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잘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미 실시하고 있는 나라들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복지부에 따르면,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에 맞추어 약 10만명의 전문인력이 양성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질적인 관리는 부족하다. 노인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며 복지국가로 가길 바란다면, 당장 닥친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내일만 말하는 것은 무책임한 소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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