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명의 장애인들과 그들과 함께 할 40여명의 교사와 자원봉사자들이 강화도 오마이스쿨로 2박3일의 캠프를 떠나는 7월 24일. 밤새 내린 비는 출발시간이 되어도 그치기는커녕 한층 더 거세어져 선생님들의 마음을 졸이게 합니다.
"선생님, 캠프가요."
"엄마, 안녕!! 우리 캠프가요."
"버스, 버스, 버스타고 가요."
우산이 소용없을 만큼 세찬 바람과 굵은 빗줄기였지만 여행을 간다는 설렘과 기대로 가득한 우리 친구들에게는 아무런 걱정거리도 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선생님들과 친구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즐거운 여행을 간다는 것이니까요.
아홉 살 소예부터 마흔살의 민정씨, 발달장애 우빈이부터 근위축증 철진이까지 저마다 나이도 장애도 다르지만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경험에 대한 기대 때문일까요. 버스 안은 전에 없이 소란스럽습니다.
준민이는 계속해서 '일박 이일'을 외치고, 예린이는 '소녀시대'의 노래를 입 안에서 조그맣게 오물거립니다. 소심쟁이 준하도 부끄럼쟁이 수민이도 입을 커다랗게 벌리고 소리를 내어 웃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여행이라는 것을 경험할 수 없는 친구들이기에 일년에 한번씩 있는 우리의 여름캠프가 더욱 신나는 것입니다.
"강화도에 도착하면 갯벌체험을 할거에요. 갯벌에는 조개도 있고 게도 있고… 갯벌이 뭔지 아는 친구있어요?"
"갯벌은 바다에요. 조개는 바다에서 살아요."
"바다에서 수영해요."
"바다에 물고기가 있어요."
갯벌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해도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저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볼거리를 만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고 행복하니 말입니다. 갯벌에는 세찬 빗줄기가 쏟아지고 있었지만 용감한 지훈이는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착한 나라 선생님만 곁에 있어주면 비바람 따윈 겁낼 것이 없거든요.
첫날 갯벌체험을 어렵게 했던 비는 다음날도 여전히 그치지 않습니다. 하지만 비에 옷이 젖는 것이 두려워 실내에서 시간을 보낸다면 집을 떠나 멀리 강화도 까지 여행을 온 보람이 없겠지요.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용감하게 빗줄기가 쏟아지는 운동장에 섰습니다.
수도꼭지에 호스를 연결하고 쏟아지는 빗줄기보다 더 굵은 물줄기를 뿌려주기로 합니다. 빗속이지만 준비해 온 튜브와 공을 가지고 신나는 놀이를 합니다. 물은 좋아하는 소예는 물론 물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한 진우까지 순식간에 물과 친구가 되는 순간입니다.
"앗 차거. 물이다. 하하하. 호호호."
"선생님. 차거워요."
"선생님 비와요."
공을 굴리고, 물을 튕기고, 달리기에 술래잡기까지
어쩌면 우리 아이들은 생전 처음 옷을 입은 채로 비를 맞아 보았을지 모릅니다. 어쩌면 생전 처음 비에 옷을 흠뻑 적셔도 야단을 맞지 않았을 것이고, 어쩌면 생전 처음 옷을 입고 빗속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녀 보았는지도 모릅니다.
문득 우산 없이 비를 맞은 것이 언제쯤이었던가 생각해 봅니다.
40년도 더 지난 이야기. 초등학교 시절 장마철의 어느 날이었을 겁니다. 빗줄기를 바라보며 함께 서 있었던 친구들이 우산을 가져온 엄마들의 손을 잡고 하나둘씩 교실을 떠나고 난 후 어금니를 꽉 깨물고 집까지 달려가기로 합니다.
숨이 턱에 찰만큼 빨리 달려도 어느새 온몸은 비에 젖고, 더 이상 달릴 필요를 느끼지 않을 때쯤 알 수 없는 자유로움이 밀려옵니다. 포기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지요.
이때부터는 오히려 작은 물도랑을 찾아다니며 물을 철벅거리고 처마에서 한줄기로 떨어지는 물만 찾아다니며 물장난에 정신을 빼앗깁니다. 옷을 적시지 말아야 한다는 구속에서 벗어나니 그만큼 자유롭고 그만큼 행복했었던 것이지요.
그런 자유를 40년 만에 시골학교 운동장에서 다시 느낍니다. 살갗을 간질이는 빗줄기에 온몸을 내 맡긴 아이들과 함께 빗소리에 노래하고, 빗줄기처럼 춤추며 입을 크게 벌려 내리는 빗방울로 목을 축이다보니 어느새 우리는 하나가 되었습니다.
비 맞은 생쥐가 된 서로의 모습을 보면서 유쾌하게 웃는 우리들. 거기엔 선생님과 학생의 구분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차이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하나 되어 즐기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을 뿐이지요.
빗줄기 속에 물놀이를 끝내고 아이들의 젖은 옷을 벗기고 샤워를 시켜 보송한 새 옷으로 갈아입혀 놓으니 곤했던지 간식으로 나온 삶은 옥수수를 다 먹기도 전에 하나, 둘 달콤한 낮잠에 빠져 듭니다.
운동장에 끝까지 남아 들어오지 않겠다고 떼를 쓰던 선웅이도 운동장을 망아지 뛰듯 뛰어 다니던 진우도 빗물을 한 컵은 받아먹었을 소예도 잠이 들고 아이들 뒤를 따라 함께 뛰던 선생님들도 하나 둘 아이들과 머리를 마주하고 눈을 붙입니다.
빗소리와 낮은 숨소리가 가득한 방안, 시간이 멈추어 버린 듯한 그날의 행복한 오후를 아주 오래도록 잊을 수 없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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