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것에 대한 대화를 나누기 위해, 초야에 묻혀 사는 삶의 고수 한분을 찾았다. 그 분은 우리에게 손수 제작한 차를 대접하면서 자기는 곡우(穀雨) 일주일 전후에 단 한번 딴 차 잎을 사용하여 사제차(私製茶)를 생산하고 고유번호를 붙인단다. 우리가 마시고 있는 차는 76봉지 중 47번째 봉지에 든 차라면서 녹차에 관한 흥미로운 설명을 해줬다. 차나무도 자르고 또 자르면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그 기운이 결국 잎에 남게 된다는 것이 이 분의 지론이다.
보기 좋고 맛이 부드러우며 향기로운 고급 녹차 상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농약과 비료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모양이다. 5월, 7월, 8월 3차례에 걸쳐 차 잎을 따기 위해서는 비료를 많이 사용하지 않을 수 없고, 큰 농장을 병충해로부터 지키기 위해 예방과 치료를 위한 다량의 농약을 살포해야 한다.
우매한 나의 관리소홀 탓에 나의 영혼을 담고 있는 그릇인 육체는 작년에 병들어 깨져버렸다. 지금은 겨우 얼기설기 동여매어 쏟아지지 않게 응급처치 한 상태다. 나에게서 담배와 술이 떠나고 그 자리에 녹차가 자리 잡았다. 녹차는 나와 집사람의 삶에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 될 수만 있다면 내가 손수 기르고 전통적인 방식으로 생산한 차를 마시고 싶다.
시랑헌(주말을 이용하여 지리산에 만들고 있는 나와 집사람의 농장)에 조그만 차밭을 만들려고 지난 3월 인터넷 종묘회사를 통해 녹차 100그루를 구입하였다. 인터넷 회사는 마른 약초뿌리 같은 묘목을 한 움큼 보내왔다. 나는 '이게 어찌 싹이 날꼬?' 싶었다. 어찌됐던 구입한 것이기에 집터 뒤 산비탈에 심었지만 결국 지금까지 단 한 그루도 싹이 돋지 않았다.
집사람은 화개장터에 가서 분에 담아 기른 녹차 묘목을 구입했다. 묘목으로는 차밭을 채우기엔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녹차씨도 한 자루 사왔다. 4월 초순경, 나와 집사람은 녹차 묘목은 시랑헌 앞 자투리땅에 심고, 씨는 집터 뒤 석축 위쪽과 시랑헌 심한 경사면에 심었다. 파종한 지역이 악조건 땅인지라 비에 떠내려가지 않도록 깊이 파고 심었다. 녹차 씨 한 자루는 분량이 상당히 많았다. 파종한 량의 1/10이라도 발아하여 집 뒤 언덕이 녹차 밭으로 변하길 바랐다.
차나무 새싹이 나에게 말을 걸다
6월이 다 지나가고 7월이 되어도 녹차씨는 깨어날 줄 모른다. 기다리고 기다렸으나 7월이 되자 다른 급한 일들에 쫓겨 녹차밭일은 포기하고 잊어버렸다. 7월이 되면 잡초들이 극성을 부린다. 농작물을 심으면, 1/3은 잡초가 1/3은 야생동물이 거둬가고 나머지 1/3은 내가 수확하겠다는 생각에 잡초가 우거진 콩밭과 참깨 밭을 방치했다. 농작물이 주 수입원인 동네 주민들은 길가에 잡초가 우거진 콩밭을 그냥 방치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 생각하고 우리를 성토하는 분위기다.
품을 얻어 콩밭과 참깨 밭을 매고 나니, 고구마, 산마, 들깨, 도라지 밭도 서운하다. 결국은 야생화 화단과 잔디밭 그리고 과일나무 터의 잡초를 제거하고 마지막으로 집터 석축 위 차나무 씨를 심은 곳까지 풀을 매게 되었다. 차나무 씨를 뿌린 곳의 잡초를 뽑던 집사람이 목 멘 소리로 급히 나를 부른다. 잡초에 가려 보이지 않던 차나무 새싹이 풀을 매주고 나니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씨를 뿌리는 농부와 새싹을 틔운 모종 사이에는 무언의 약속이 성립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풀섶을 헤치자 차나무 새싹이 나에게 말을 건네 온다.
"아~빠 저 좀 살려주세요! 죽을 고생하며 땅위로 고개를 내밀었는데 바랭이(잡초이름) 형님들 등쌀에 못 살겠어요."
차나무 새싹은 자기가 해야 할 일은 성실히 수행한 셈이다. 이제 싹을 틔우면 잘 가꿔주겠다고 했던 내가 약속을 이행할 차례이다. 작업대를 만들고 침대 머리맡에 둘 조명등을 만드는 일을 중단하고 차나무와 한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서둘렀다.
차나무들을 위해 잡초를 매는 일은 경사가 심한 비탈길 작업이라 힘들고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우리는 가능한 고른 간격으로 차씨를 심었으므로 덤불 속 차 묘목을 비교적 쉽게 찾아낼 수 있었다. 있어야할 자리 부근을 지성스럽게 정리하다보면 고개를 내미는 어린 새싹 때문에 3일간의 고된 일을 그나마 재미있게 마칠 수 있었다.
일요일 저녁, 녹초가 된 나와 집사람은 밥맛마저 잃었다. 소주를 약간 섞은 맥주를 한잔씩하고 시랑헌에 누웠다. 집사람은 벌레에 물려 얼굴과 팔이 부어올라 알아볼 수도 없게 됐고 나는 허리가 아파 몸을 움직일 수도 없다. 해야 할 일이 지천에 널린 시랑헌을 놔두고 내일 새벽 4시면 일어나 대전으로 가야한다. 다음 주말에는 토요일 아침에 일찍부터 일을 하도록 금요일 저녁에 시랑헌으로 향할 것이다.
이게 잘 사는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