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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  1610년(광해2년) 소현세자가 쓰러지기 30년 전에 완간된 허준의 역서 동의보감.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동의보감. 1610년(광해2년) 소현세자가 쓰러지기 30년 전에 완간된 허준의 역서 동의보감.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이정근

안정을 취하며 가입사물탕(加入四物湯)을 들었으나 효과가 없었다. 목이 마르고 신열이 나는 증세는 호전되었으나 오른쪽 다리의 마비 증세는 가시지 않았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강빈이 의관 박군을 불렀다.

"저하의 증세가 무엇이냐?"
"확실히는 모르오나 칠정울결(七情鬱結)인듯 하옵니다."
"칠정이라 하면 무엇을 뜻하느냐?"
"분노(努), 공포(恐), 놀람(驚), 우울(憂), 슬픔(悲)  과도한 생각과(思) 기쁨(喜)을 말하며 정신에서 옵니다."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는 세자를 바라보는 강빈은 억장이 무너졌다. 세자의 기쁨은 자신의 기쁨이고 지아비의 슬픔은 자신의 슬픔이건만 돌이켜 보면 기쁨보다도 슬픈 일이 더 많았던 같았다. 세자가 경기를 일으키는 공포. 그것은 곧 자신의 아픔이었다.

세자에 이어 세자빈마저 쓰러지다

세자의 병환을 지켜보던 강빈마저 눕고 말았다. 원손을 떠나보낸 후, 식욕을 잃고 시름시름 앓더니만 잠결에 깜짝깜짝 놀라는 증상이 나타난 것이다. 아들을 떠난 보낸 슬픔에 지아비의 고통이 병이 되어 강빈마저 무너지게 한 것이다.

의관 박군과 정훤이 가입청심보혈탕(加入淸心補血湯) 10첩을 올렸으나 효험이 없었다. 환자의 차도만을 생각하면 가입가미온담탕(加入加味溫膽湯)을 쓰고 싶었으나 임산부에게는 자신이 없었다. 강빈은 회임중이다. 결과가 좋지 않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 심양에 파견된 의관은 함부로 처방할 수 없다. 급주마를 보내 내의원에 처방을 의뢰했다.

말 타고 질풍처럼 내달리는 청나라 군대의 전술상 말(馬)이 없고 말을 다루지 못하는 조선 수군은 식량만 축내는 애물단지였다. 장수에게 명하면 면전에서는 굽실거린다. 영(令)이 살아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명이 하부에 내려가 군졸들에게 닿으면 흐물거렸다. 이러한 군대로 명나라와 붙어 사상자가 많이 발생하면 전투력에 장애가 될 뿐만 아니라 적군의 사기를 높여준다고 판단한 홍타이지가 긴급 참모회의를 소집했다.

"조선군을 어찌하면 좋겠는가?"
"명령에 죽고 사는 것이 군졸입니다. 조선군이 아무리 오합지졸 이라하더라도 물러서는 자는 베면서 독전하면 그래도 쓸 만한 병사들입니다."

전투에 투입하여 물러서는 자는 즉결처분으로 전시효과를 노려 효율을 높이자고 용골대가 주장했다.

"군졸을 베면서 전과를 올린다 하더라도 잃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첫째는 인명손실이고 둘째는 황제께서 백성을 어여삐 여기지 않는 포악한 황제라는 인상입니다. 우리는 전쟁에도 이겨야 하지만 백성들의 마음을 얻어야 할 때입니다. 전쟁에 이기고 백성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천하를 놓칠 수가 있습니다. 천하를 얻으려면 백성의 마음을 얻어야 합니다. 전의를 상실한 군졸들은 돌려보내고 왕과 제후들을 다그쳐야 합니다. 이것이 인심을 얻고 천하를 얻는 지름길입니다."

역시 범문정은 천하의 장자방이었다.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홍타이지가 결단을 내렸다.

"개주에 집결해있는 조선군 중 1500명의 군사를 임경업이 이끌고 해주위로 이동하게 하라. 나머지 3151명의 군사는 부장 이완으로 하여금 인솔케 하여 귀국하도록 하라."
잉여 병력을 귀국 조치하라는 것이다. 애물단지를 처분하고 인심을 얻겠다는 포석이다.

조선군의 행태는 조직적인 항명이다

행주대첩비.  행주산성에 있는 행주대첩비.
행주대첩비. 행주산성에 있는 행주대첩비. ⓒ 이정근
"해주위로 불러들인 임경업 군대도 문제가 많다. 전장에 나간 병사는 죽기 살기로 싸워야 하는데 조선군은 그런 것 같지 않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조선군의 행태는 태전(怠戰)이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조선군에게는 목숨을 걸고 싸워야하는 동기부여가 없습니다. 이러한 병사는 최 일선에 배치하는 것보다 후방에서 보급부대 역할을 하게 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피파박시가 조선군의 입장을 옹호하며 실용론을 폈다.

"조선군이 오합지졸이라면 정신교육과 강도 높은 훈련으로 극복할 수 있지만 전의(戰意)마저 없습니다. 조선군은 원래 말 타고 활을 다루는 용맹한 군대입니다. 이러한 군대를 약화시키는 배후세력이 조선에 있습니다. 이들을 발본색원 하지 않는 한 조선군에서 전투력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 생각합니다."

용골대가 배후론을 내놓았다.

"조선군은 신식무기로 무장한 왜군을 맞아 끈질기게 항전하여 격퇴한 군대입니다. 식량이 떨어지면 초근목피로 연명했고 무기가 떨어지면 돌을 행주치마에 운반하여 항전했습니다. 이렇게 강인한 군대를 무력화시키는 세력이 조선 조정에 있습니다. 우리에게 적개심을 품은 이들을 쓸어내지 않는 한 조선군은 무용지물입니다."

범문정이 배후세력 척결론을 주장했다.

"조선 조정을 손봐주도록 하라."

홍타이지의 명이 떨어졌다. 군대는 명령이다. 항명은 죽음이다. 눈에 보이는 항명이라면 현장 즉결처분으로 전시효과를 노릴 수 있지만 조선군은 눈에 보이지 않은 집단 저항이다. 태전은 조선군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인 차원의 조직적인 항명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능력 밖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절박했다

소현의 건강이 완전회복되지 않았다. 신열은 가셨지만 오른쪽 다리의 마비 증세는 여전했다. 소현이 건강을 추스르지도 못했는데 피파박시가 찾아왔다.

"조선군이 먹고 입을 식량과 옷을 보내라는 황제의 명이 있었는데 아직까지 이행하지 않은 것은 무슨 연유이오?"
"황제의 명을 거역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우리나라 병사들이 굶주리고 얼어 죽는 것을 뉘라서 원하겠소? 본국에서 싣고 들어오던 의복은 개성부에서 임지로 떠나는 수군 부장 이흔에게 넘겨주어 더 이상 들어오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세자께서 의복을 실은 말이 들어오면 군마로 쓸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말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으니 세자께서는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오?"
"의복을 실은 말이 들어오면 보충해서 쓸려고 했는데 일이 이렇게 되었소. 본국에서도 아무런 말이 없으니 저 역시 답답하오."

소현은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고 싶었다. 청나라에서는 불 같이 독촉하고 본국에서는 아무런 기미가 없으니 막막했다. 능력 밖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절박했다. 그러나 소현이 이렇게 곤경에 처할수록 쾌재를 부르는 세력이 있다는 것을 소현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황제께서는 세자가 여기 계시니 무슨 일이든 정성을 다할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세자께서는 황제의 명에 번번이 본국에 장계를 올렸다고 면피하고 있으니 이것은 끝내 시간을 끌어 명을 어기려는 것이 조선의 의도라고 황제께서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오해이십니다."

"자승자박이오. 황제의 엄한 문책이 있을 것이오."

피파박시가 싸늘한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피파박시가 돌아간 후, 정명수가 찾아와 빈객과의 대화를 청했다.

세자관의 말까지 징발해 가다

"관중에 있는 말 몇 필을 골라 임경업에게 보내 수하의 장수들이 타게 하면 성의를 보이는 것이 될 것입니다. 이는 작은 일 같지만 생색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에 있는 말은 세자가 타시는 좌마(坐馬)를 제외하곤 쓸 만한 말이 없소."

"관중의 말 먹이는 우리가 대주고 있소, 빈객은 우리를 속일 수 없소이다."

정명수는 빈객의 만류를 뿌리치고 세자관 사복시에 들어가 말을 점검했다.

"세자의 좌마를 뺀 나머지 말을 가져가겠소."

5필의 말과 강빈의 내의원 처방을 가지고 위산보가 타고 온 역마 1필을 찍었다. 내놓으라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 내줄 수밖에 없었다. 세자관의 말까지 징발한 것이다. 마부를 인솔한 선전관 김번을 앞세워 세자관을 떠나던 정명수가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황제의 명을 받은 용장군과 피파박시가 곧 떠날 것이오. 조선의 사정을 감안하여 용장군은 중강에 머무르고 피파박시만 한성에 들어갈 것이라 했소. 이 일은 아주 비밀리에 행하는 것이라 '누설되면 너와 내가 죽는다'고 용장군이 말했지만 내가 조선 사람이기 때문에 귀띔해주는 것이오."


#소현세자#동의보감#칠정울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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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 <병자호란>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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