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관 기동대 창설일인 지난 30일 오전 서울 신당동 기동본부 운동장. 방패와 곤봉 등으로 무장한 240여 명의 '전술 시범단'이 가상 시위대를 상대로 진압 시범을 보이고 있었다. 기동대원들은 수십 분동안 낚고, 꺾고, 들고, 찔렀다. 경찰관 기동대는 지난 2월부터 반년 동안 집중 진압훈련을 받은 1000여 명으로 구성됐으며 8월부터 본격적으로 현장에 투입될 예정이다.
같은 시간 기동본부 정문 앞에서는 광우병 국민대책회의가 기자회견을 열어 "백골단의 부활"이라며 경찰관 기동대 창설을 강하게 규탄하고 있었다. 백골단! 백골단 얘기만 나와도 치를 떠는 사람들이 있다. 어두웠던 시대, 그들에 의해 자식을 잃고 그 자식의 삶을 대신 살고 있는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 부모님들이다.
고 이한열 열사 어머니 배은심 유가협 회장도 30일 기동본부 운동장에 갔다. 하지만 배 여사는 경찰의 제지로 기자회견에조차 참여하지 못하고 전경들 너머로 기동대원들의 시위대 진압 시범을 지켜봐야 했다.
지난 31일 오후 탑골공원 배은심 여사를 인터뷰했다. 현장에 도착할 무렵 배 여사는 고난을 상징하는 보라색 수건을 머리에 쓴 채 민가협 목요집회에 참여해 "백골단 창설에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어떤 상황 올지 눈에 훤히 보여"
민가협 집회가 끝난 뒤 탑골공원 안에서 배 여사와 마주했다.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듯 많이 늙으신 모습이다.
배 여사는 전날 기자회견 참석조차 제지당한 일을 언급하며 "한 번씩 그렇게 경찰들에게 둘러싸일 때마다 답답해서 가슴이 터질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내가 하는 일이 모두 아들이 남기고 간 일"이라며 "다시 나 같은 어미가 생기지 않으려면 꼭 백골단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 촛불 집회에서도 간간히 얼굴을 뵈었습니다만,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그냥 그렇게 저렇게 살았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탄생했을 때만 해도 (유가협) 해체해도 되겠다 생각했었어. 그런데 그것도 아니더라구.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우리 어미들의 역할이 더 중요해진 것 같아."
- 경찰 앞에서 어머님도 두려움을 느끼실 때가 있으실 것 같은데요."내가 그렇게 살아가는 건 두려울 게 없어. 너무 익숙하고 당연한 일이야. 다만 나 같은 사람이 또 나오는 게 두렵지. 내 인생은 개인적으로 참 불행한 삶이라고 생각해. 유가협 부모들도 마찬가지고. 우리 같은 사람이 또 다시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두려움이 있지."
- 지난 30일 경찰관 기동대 창설이 있었죠.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습니다. 백골단의 부활이라는 지적도 있고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정말 큰일났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지. 저러면 안 되는데. 저런 식으로 하면 안 되는데.국민을 저렇게 폭력적으로 대해서는 안 되는데 하는 생각밖엔 안 들었어."
- 경찰관은 엄격한 법 집행을 하기 위해서 경찰관 기동대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펴고 있습니다."국민을 기만하고 속이는 거지. 그 사람들(예전 백골단) 진짜 무서운 사람들이야. 생각만 해도 손이 떨려. 성난 사자 같았어. 힘이 얼마나 센 지 손만 닿아도 멍들 정도야. 어제(30일) 그 기동대는 2월부터 준비하고 연습했다던데. 국민 진압하는 게 뭐 자랑거리라고 연습하고 시범까지 보이면서 출범하는지 모르겠어. 이미 전경만으로도 물대포, 방패, 소화기 등 강경진압에 나올 건 다 나왔잖아? 그리고 '엄격하다'는 용어가 무서운 거야. 어떤 상황이 올지 눈에 훤히 보여."
- 이한열 열사 돌아가신 게 꼭 제 나이 때였습니다. 솔직히 백골단이나 사복경찰이라는 것이 저희 세대에게는 감이 잘 오지 않아요. 촛불집회에서 진압하는 전경만 봐도 두려울 때가 많은데요. "백골단은 훨씬 세지. 이런 세상을 다시 겪게 될 줄은 나도 몰랐어. 흰 헬멧에 청바지를 입고 다니던 사람들을 백골단이라고 불렀는데, 멀리서 보여도 무서워서 벌벌 떨며 도망가고 그랬어. 그런 사람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끔찍하지. 끔찍해.다른 말로 표현을 못하겠어."
"국민 소리 안 들으려 하면 그게 바로 독재"
- '20년 전의 시대 상황이 반복되는 것 같다', '독재의 부활이다'는 비난이 많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어머님 생각은 어떠세요? 이러다가 수십 년 전으로도 돌아갈 수 있다고 보시는지, 아니면 우리 민주주의가 발전해왔기 때문에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시는지? "독재라는 게 따로 있는 게 아니야. 입과 귀를 막고 국민의 소리를 들으려고 하지 않으면 그게 독재야. 그리고 민주주의가 별건가. 별거 아니야. 내 생각, 하고 싶은 말 할 수 있는 거 나는 그게 민주주의라고 생각해.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은 그걸 억제하려고 애쓰는 거지."
- 2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일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힘들진 않으신가요? "어쩌다 내가 여기까지 왔는지..한탄도 많이 해. 그렇지만 이건 내 아들이 나에게 주고 간 일이라고 생각하지. 아들의 동기, 선배, 친구들이 성장해서 살고 있는 게 부러워. 자식을 키울 때는 어느 부모나 기대, 욕심을 가지게 마련이거든? 근데 그게 순간에 무너졌으니.우리 광주 집은 1년 365일 비워져있어. 요즘도 집에 있을 겨를이 없어."
- 세상이 민주화 운동을 하시다 고인이 되신 분들에 대해 많이 잊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아쉬움은 없으신가요? "크게 아쉬운 것도 없고 섭섭한 것도 없어. 한국 사람들 무슨 일이든 사흘이면 잊는다고 하잖아(웃음). 소수일지라도 한열이 6.9제(이한열 열사가 최루탄 맞은 날이 6월 9일)를 기억해주고 같이 해주는 게 그저 고마워. 특히 올해는 예상도 안했는데 촛불정국이랑 맞물려서 광화문까지 행진해서 좋았지. 원래 다리가 아파서 안 가려고 했는데, 혹시 가다가 (행진이)전경에 의해서 무산 당할까봐 내가 직접 나섰어."
- 새 정부 들어서 과거사 관련 각종 위원회도 축소되고 또 경찰관 기동대까지 창설되어 일이 더 많아지신 것 같아요. 이명박 대통령에게 한 말씀 하신다면요. "'백골단' 당장 해체하라는 게 지금 가장 큰 부탁이야. 그렇게 못할 거면 방법은 하나지. ' 퇴진'. 근데 이런 것도 기사에 실어줄꺼야?(웃음)"
배 여사와 겨우 1시간 남짓 인터뷰를 통해 그 내면에서 흐르고 흘러 강을 이루고 있는 한과 분노를 백분의 일이라도 느낄 수 있었을까. 아들을 죽인 사람들이 20년 만에 다시 살아 돌아오는 듯한 장면을 목격해야 하는 일은 고통스러울 것이다. 배 여사를 비롯한 모든 유가족들이 그럴 것이다. '백골단 부활'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는 유가협 부모님들의 착잡한 심경은 30일 발표한 보도자료에 잘 드러나 있다.
"백주대낮에 대학생을 쇠파이프로 내리쳐 죽이고 집회와 시위현장을 휘저으며 곤봉과 방패로 국민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백골단이 부활했다. 군부 독재자들과 폭력경찰에 의해 살해당한 자식들을 가슴에 묻고 살아온 우리 민주화운동 유가족들은 분노와 통분을 금할 길이 없다...결국 이명박 대통령은 스스로 민주사회 대통령이길 포기하고 폭력으로 정권을 유지해 나가는 독재자의 길을 택했다...자식을 묻고 지난 20여 년을 피와 눈물로 보내면서 독재정권들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았다...이제는 70~80세의 노인이 된 우리 유가족들이지만 자식들이 목숨을 바치면서 개척해 온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수호하며 싸워나갈 것임을 천명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백골단을 앞세워 국민들을 탄압하는 현장마다 이명박 대통령의 실정과 학정이 있는 곳마다 유가협의 깃발을 세우고 싸워 나갈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장일호 기자는 <오마이뉴스> 8기 대학생 인턴기자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