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화려하고도 아름다운 포옹을 하고 있는전복 영계 든 전복삼계탕 앞에 앉으면 그 가시나와 나 그 쓸쓸하고도 차거운 포옹이 떠오른다파도맛 나는 쫀득쫀득 부드러운 전복 씹고 있으면 그 가시나 따스한 입술에 모질도록 차거운 키스를 남긴 내 입술 어느새 보들보들 그 가시나 입술 된다입천장 간지럼 먹이는 쫄깃한 닭살 살포시 깨물면 내 가시 돋친 입 속 부드럽고 달콤하게 헤엄치던 그 가시나 미끌미끌한 혀가 내 혀 된다 나와 그 가시나, 전생에 전복 영계였을까 - 이소리, '전복삼계탕을 먹으며' 모두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줄기차게 쏟아지던 화살비가 그치고 나자 또다시 날씨가 푹푹 찐다. 참매미가 귀 쟁쟁하도록 울어대는 느티나무 그늘 아래 삼복 불볕을 피하고 있는 사람들 모습도 느티나무 잎사귀처럼 축 늘어져 있다. 저만치 양산을 받쳐 들고 길을 걷는 아리따운 처녀가 계속해서 손수건을 이마에 갖다 댄다.
기운이 하나도 없다. 입맛도 없다. 만사가 귀찮다. 어디 시원한 산들바람이 불어오는 곳에서 늘어지게 낮잠이라도 자고 싶다. 이럴 때 사람들이 즐겨 찾는 음식이 삼계탕이다. 삼계탕은 무더운 여름철 보양음식을 대표하는 먹을거리다. 특히 요즘에는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들 사이에서도 불고기, 김치와 함께 손꼽는 한국음식 중 하나기도 하다.
삼복더위를 맞아 삼계탕이 제철을 만났다. 인삼이 들어 있다 하여 계삼탕(鷄蔘湯)이라고도 불리는 삼계탕. 삼계탕은 어린 닭(연계, 軟鷄, 영계)에 인삼, 마늘, 대추, 찹쌀 등 여러 가지 한약재 등을 넣고 물을 부어 푹 고아 만든 음식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삼계탕의 종류가 꽤 많아졌다. 전복삼계탕, 한방삼계탕, 녹각삼계탕, 해물삼계탕, 숯삼계탕 등이 그것.
그중 상어지느러미, 해삼과 함께 바다의 삼보(三寶)라 불리는 전복과 함께 푹 고아낸 전복삼계탕은 황제삼계탕이라 할 만큼 여름철 건강에도 좋고 맛도 뛰어나다. 전복은 특히 맑고 짙푸른 바다에서만 자라는 미역과 다시마를 먹고 사는 무공해 해산물이다. 게다가 피부미용과 허약체질 등에 좋은 음식 또한 전복 아닌가.
백번 듣는 것보다 한번 먹어 보는 것이 낫다조선 중기 명의 허준(1539~1615)이 쓴 <동의보감>에는 "닭은 토(土)에 속하지만 화(火)의 성질을 보해 준다. 삼계탕에 들어가는 인삼은 신진대사를 촉진하고 피로회복을 앞당긴다"고 되어 있다. 이와 함께 마늘은 강장제 구실을, 밤과 대추는 위장을 보호하면서 빈혈을 예방하는 효과까지 있다.
<동의보감>은 전복에 대해서도 "감칠맛과 달콤한 맛이 나며 고혈압, 현기증, 귀 울림 등에 좋고 간 기능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눈을 맑게 하고 몸을 가볍게 하며 정기를 북돋워준다. 체네 흡수율이 높아 성장기 어린이나 임산부, 노약자의 건강식으로 좋으며, 간 기능 회복과 폐결핵에 효과가 있다"고 쓰고 있다.
이렇게 건강에 좋은 삼계탕과 전복이 만났으니, 전복삼계탕에 대한 다른 설명이 무슨 소용이랴. '백번 듣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것이 낫다'는 옛말이 있듯이 전복삼계탕은 '백번 듣는 것보다 한번 먹어 보는 것이 낫다'란 말 그 자체이다. 여기에 고소한 감칠맛과 시원하고 깔끔한 국물 맛에 향기까지 나니 무얼 망설이겠는가.
전복삼계탕을 만드는 방법도 그리 어렵지 않다. 굳이 전복삼계탕을 전문으로 조리하는 식당을 찾지 않더라도 누구나 집에서 쉬이 만들 수 있다. 어떻게? 삼계탕을 끓일 때 영계의 뱃속에 전복만 집어넣으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복 값이 워낙 비싸니까 한 마리만 넣자 그렇게 해도 그 맛은 일반 삼계탕과는 한 차원 다른 맛으로 태어나니까.
골프선수 최경주 힘은 완도산 전복에서 나온다"요즈음 양식으로 전복이 과잉 생산되고 있어요. 하지만 아무리 전복이 싸다 하더라도 그 값이 만만치 않아요. 전복삼계탕 한 그릇 가격인 만 원을 지켜야 하는데, 물가가 자꾸 올라 걱정입니다. 오는 10월쯤에는 전복해물조개구이와 전복곰탕을 선보이려고 해요. 근데 전복곰탕이 문젭니다. 아무리 국산 소뼈를 써도 소비자들이 믿으려 들지 않으니…." 서대문경찰서를 지나 오른쪽 골목을 바라보면 저만치 활어타운 간판 앞에 '최경주의 완도 전복 먹고 삼복더위를 이기자, 전복삼계탕'이란 현수막이 하나 나부끼고 있다. 그 활어타운이 바로 서울에서 이름 높은 전복삼계탕 전문점이다. 근데, 여러 가지 생선조리를 전문으로 팔아야 하는 활어타운에서 웬 삼계탕?
10여 년째 이곳에서 식당을 하고 있다는 주인 황국연(55)씨는 "다들 그렇게 말하곤 하죠. 하지만 저희 집 전복삼계탕을 한번 드셔보면 왜 활어타운에서 삼계탕을 파는지 금세 알 수 있지요"라며 빙그시 웃는다. 완도가 고향이라는 황씨는 "전복삼계탕이라고 해서 다 같은 전복삼계탕이 아닙니다. 향긋한 맛의 포인트는 맛국물에 있지요"라고 귀띔한다.
나그네가 맛국물을 우려낼 때 무슨 재료를 쓰느냐고 묻자 황씨는 "해물과 여러 가지 한약재로 우려낸다"며 말을 아낀다. 나그네가 다시 "하필이면 왜 최경주의 완도 전복"이냐고 묻자 황씨는 "완도 출신인 최경주가 고향인 완도에만 오면 다른 음식은 입에 대지도 않고 완도산 전복만 찾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손님에게 보시한다는 생각으로 음식을 조리해요 "전복은 전남 완도에서 2년생 된 것을 직송해오고 영계는 생후 45일 정도 된 전북 익산 하림 닭을 씁니다. 근데 요즈음 완도에서 전복이 과잉 생산되고 있어 전복을 재료로 한 다양한 조리를 할 필요가 있어요. 제가 전복을 재료로 새로운 조리를 자꾸 개발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어민과 도시민이 공생해야지요."손님에게 보시한다는 생각으로 모든 음식을 직접 조리한다고 말하는 황씨의 독특한 음식철학. 이 음식철학이야말로 곧 자기중심을 세우는 것이라는 황씨는 은근슬쩍 우스개 이야기 하나 들려준다. 식당 주인이 얄미웠던 주방장이 어서 망하라고 손님들에게 음식을 푸짐하게 내주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오히려 그 식당 주인이 벼락부자가 되었다는 이야기.
7월29일(화) 중복 날 저녁 7시. 바보새 출판사를 꾸리고 있는 김규철(51) 대표와 함께 찾은 전복삼계탕 전문점. 50여 평 남짓한 실내에 들어서자 삼삼오오 몰려 앉아 전복삼계탕을 즐기는 사람들로 빼곡하다. 겨우 방 안쪽 한 귀퉁 자리 하나 차지하고 앉아 전복삼계탕(1만 원)과 소주 한 병을 시킨다.
대체 얼마나 맛이 있기에 저리도 많은 사람들이 왁자지껄 소주 한 잔 처억척 곁들여가며 전복삼계탕을 볼 터지게 먹고 있는 것일까. 통통하게 살이 부풀어 오른 닭다리 하나 들고 입으로 주욱 찢어 맛나게 씹고 있는 손님을 바라보자 나그네도 모르게 입에 침이 꼴깍 하고 넘어간다.
전복삼계탕 국물에서 은은한 향내가 난다그렇게 침을 꼴깍꼴깍 삼키고 있을 때 50대 초반쯤으로 되어 보이는 아낙네가 식탁 위에 소주 한 병과 밑반찬을 주섬주섬 놓는다. 배추김치, 깍두기, 고추장조림, 송송 썬 마늘과 풋고추 그리고 참기름을 푼 된장. 참기름을 푼 된장 위에도 다진 마늘과 다진 풋고추가 된장 위에 핀 꽃처럼 예쁘게 올려져 있다.
잠시 뒤 오매불망 애타게 기다리던 전복삼계탕이 나온다. '에이~ 이게 전복 삼계탕이야?' 소리가 절로 나온다. 왜? 그저 평소에 보던 그 삼계탕 위에 아기 주먹만 한 전복만 하나 달랑 올려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속단은 금물이다. 소주 한 잔 입에 툭 털어 넣고 전복삼계탕 국물 한 수저 떠서 입에 넣는다.
'히야~' 소리가 절로 나온다. 시원하고도 깔끔한 뒷맛이 나는 국물에 배인 은은한 향이 혀를 몇 번이나 희롱한다. '백번 듣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게 낫다'라는 옛말은 이런 맛에 빗댄 것은 아닐까. 이 집 삼계탕의 맛국물은 바지락, 반쯤 말린 명태, 홍합 등 여러 조개류와 음나무, 당귀, 황기 등으로 우려낸다.
식당 주인 황씨는 "전복삼계탕은 조개류와 한약재 등으로 맛국물을 내야 국물 맛이 개운해지면서 고기도 부드러워진다"고 말한다. 황씨는 이어 "저희 집 전복삼계탕은 맛국물에 소금을 넣지 않아도 간이 맞다. 국물의 간이 맞는 것은 해산물인 전복과 조개류로 국물을 냈기 때문"이라며 한쪽 눈을 찡긋했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삼계탕이 있다니은은한 향이 배인 전복삼계탕 국물에 자꾸만 숟가락이 간다. 국물을 한번 떠먹을 때마다 몸 속에 켜켜이 쌓인 피로와 시름 겨운 세상살이가 싸악 사라지는 것만 같다. 그렇다고 이 집이 자랑하는 전복과 영계의 황홀한 맛을 보지 않을 수 있으랴. 영계 위에 올려진 전복을 접시에 담아 속살을 살짝 밀자 전복 껍데기에 무지개가 뜬다.
전복 껍데기에 뜬 황홀한 무지개를 바라보며 전복 속살을 가위로 잘라 입에 넣는다. 순간 쫀득쫀득 부드럽고도 향긋 달착지근하게 살살 녹는 바다맛이 입 속을 가득 채운다. 전복속살 한 귀퉁이에 붙은 노르스럼한 개웃(전복 내장), 정력에 특히 좋다는 게웃(전복내장)의 약간 쌉쓰럼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소주 한 잔 다시 톡 털어 넣고 영계 다리 하나 주욱 찢어내자 그 자리에 찹쌀과 밤, 대추, 수삼이 들어 있다. 영계 다리 하나 들고 아까 그 손님처럼 입으로 주욱 찢어 입에 넣자 쫄깃하고 부드럽게 씹히는 영계의 맛이 사람 뿅~ 가게 만든다. 영계를 먹으며 가끔 국물과 함께 떠먹는 고소한 찹쌀죽, 쌉쓰럼한 수삼 맛도 으뜸이다.
자리를 함께 한 김규철씨는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삼계탕은 처음 먹어 본다. 쓰린 속이 순식간에 편안해지는 게 온몸에서 힘이 펄펄 솟는 것만 같다"며, 전복삼계탕 칭찬에 입에 침이 마를 정도다. 김씨는 "살아 있는 활전복을 넣어서 그런지 쫄깃한 전복 맛이 끝내준다. 특히 향기가 나는 닭고기와 국물 맛은 앞으로도 잊지 못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전복과 영계 그 화려한 포옹. 영계가 전복을 콕콕콕 쪼아 먹고 낳은 것이 전복삼계탕일까. 전복이 영계를 한입에 꾸울꺽 삼킨 뒤 낳은 것이 전복삼계탕일까. 아무려면 어떠랴. 전복삼계탕 한 그릇 앞에 앉으면 삼복더위도 그대로 쇼크사 하는 것만 같은 것을. 그래. 올 여름 에는 전복삼계탕 먹으며 고물가에 시달리는 이 세상 시름까지 싸악 날려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