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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심식사를 준비하는 급식 도우미들(자료사진)
점심식사를 준비하는 급식 도우미들(자료사진) ⓒ 이재홍

"다섯개! 일곱개!"

12개의 국그릇이 얹혀진 쟁반을 들고 테이블을 향해 잰 걸음을 옮긴다. 국그릇에서 일제히 피어오르는 뜨거운 김에 얼굴이 발갛게 익는다. 금세 땀이 줄줄 흘러 눈 속으로 파고든다. 눈이 따갑다.

그러나 땀을 닦을 시간도 따가운 눈을 비빌 시간도 없다. 쉴 사이 없이 꾸역꾸역 밀려드는 아저씨들의 허기를 1분1초라도 빨리 채워주려면 잰 걸음도 모자라 달려야 할 판이다.

서너 번 쟁반을 날랐을까. 얼굴로 등으로 땀방울이 쉴 새 없이 흘러내린다. 앞치마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는 사이 두 팀이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비웠다. 재빨리 상을 치우고 다시 국과 반찬을 가져가 새 상을 차리는 사이 다시 두팀, 세팀…. 식사를 마치고 일어서기가 무섭게 다시 다른 팀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는다.

상을 치우고 다시 상을 차리기를 수십 번. 국과 반찬이 얹어진 가마솥 뚜껑만한 쟁반을 들고 테이블 사이사이를 얼마나 달음박질쳤을까. 아저씨들의 사람 좋은 웃음과 마지막 인사. 마침내 60분간의 내 달음박질에 마침표를 찍는다.

"경상도 줌마. 오늘도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6년 전, 딱 이맘 때쯤이다. 6개월여 공장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그 곳에서 일하던 지인이 허리를 다쳐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대신 일을 좀 해달라는 부탁 때문이었다. 올망졸망한 작은 공장들 사이에  위치해 있던 그 공장 식당은 인근 공장 사람들의 점심과 저녁을 해주는 곳으로 나는 점심식사를 담당,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2시 30분까지 하루 6시간씩 아르바이트를 했다.

1시간 동안 밥상을 50번 차려라?

"오는 손님을 받는 일반식당과 달리 공장식당은 제한된 시간에 제한된 인원을 소화해내야 합니다. 각자 정해진 시간에 제 몫의 일을 소화해 내지 못하면 일의 흐름이 끊기게 되고 급기야 300여명이 제때 점심식사를 못하게 되는 크나큰 불상사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아줌마가 할 일은 식당으로 점심식사를 하러 오는 손님들을 책임져야 합니다. 인원은 200명, 시간은 1시간. 자신 있습니까?"

'1시간에 200명의 점심을 책임지라고? 20명도 아니고 200명의 밥을? 사장님의 설교를 들으며 곁눈질로 대충 가늠해보니 4인용 테이블이 10개 정도. 그렇다면 한꺼번에 40명이 먹을 수 있고 그 40명이 5차례 밥을 먹으려면 50번의 밥상을 차려야 한다는 이야기인데….뭐? 하루 50번의 밥상을 차리라고? 차라리 못한다고 말을 할까. 아니야. 그래도 나를 믿고 부탁한건데. 하는 데까지 해봐야지 어떻게….'

1~2분 동안 참 많은 것을 그것도 아주 깊게 생각하고 내린 결론은 어쨌거나 한 번 해보자는 것이었다. 무엇이건 피하는 것보단 일단 부딪혀보는 게 또한 내 인생철학인지라 지레 겁먹고 포기하는 건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날 출근하겠노라 약속하는 그 순간부터 밀물처럼 밀려드는 두려움이라니. 그러나 이미 깨진 그릇이고 흥건하게 엎질러진 물이었다. 

여분의 밥까지 합쳐 평균 400그릇의 밥을 푸는 일로 내 하루 일과는 시작된다. 8시 30분 식당으로 출근을 하면 기다렸다는 듯 어김없이 울려대는 대형압력솥의 '삐 삐 삐' 신호음. 뚜껑을 열면 뜨거운 김이 일순간에 뿜어져 나온다. 얼굴 마사지로 스팀 마사지만한 것이 또 있으랴. 조상대대로 전해지는 우리 여인네들의 전통 스팀마사지로 내 하루 일과가 시작된다.   

바구니에 산처럼 엎어놓은 밥그릇에 윤기가 잘잘 흐르는 하얀 밥들을 퍼 담는다. 300여 아저씨들의 얼굴을 기억해내며 아저씨들이 맛있게 그 밥을 먹을 걸 상상해가며 1시간여 밥을 푼다.  

다음은, 반찬 준비다. 반찬은 늘 다섯 가지이며 삼복 더위도 아랑곳없이 뜨끈뜨끈한 국은 필수다. 다듬기에서부터 무치고 볶고 굽고 끓이는 일련의 과정들이 철저한 분업 아래 이루어진다. 내가 밥을 푸는 사이 다른 아주머니들이 여러 가지 반찬거리들을 손질해 놓는다. 이어 누구는 국만 끓이고, 누구는 나물만 무치고, 누구는 찌개만 만들고, 누구는 생선만 굽는 등 철저한 분업이 이루어진다. 나는 주로 생선을 굽거나 튀기는 일을 맡아 했다.

다음으로 반찬 만들기가 끝나면 도시락 준비다. 거리가 멀어 식당으로 오지 못하는 100여명 공장 식구들에겐 따로 도시락을 준비, 배달을 해주어야 한다. 플라스틱 뚜껑에 붙은 공장이름을 보며 사람 수대로 밥을 담고 반찬을 담고 또 물까지. 완성된 도시락 통들을 일렬로 쭉 세워놓으면 사장님이 배달에 나선다.

다음으로 상차리기다. 식탁마다에는 국을 뺀 다섯 가지 반찬을 미리 차린다. 또, 금방금방 자리를 바꿔 앉는 공장 식당의 특성상 미리 내어갈 반찬들을 담아 주방 앞에 나란히 줄을 세운다. 이로써 점심준비 끝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준비 과정은 내게 있어 일도 아니다. 정작 내 일은 그 이후부터다.

정각 12시, 내게 필요한 건 '스피드'

정각 12시. 나의 민첩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순간이다. 아저씨들이 자리를 잡기 무섭게 밥과 국을 내간다. 사이사이 다 먹은 상을 잽싸게 치우고 다시 새 상을 차린다. 그렇게 1시간 내내 가마솥뚜껑 만큼이나 큰 쟁반을 들고 달리고 또 달린다.  

"사장님. 체력의 한계인 것 같아서요…."
"사장님. 남편이 그만두라는데요…."
"사장님. 지방에 좀 가 있어야 할 것 같아서요…."

중노동도 그런 중노동이 없었다. 40평생 아이 낳는 것 빼고 그만큼 힘든 일은 처음이었다. 밤이 무서웠다. 피곤하면 자리에 눕자마자 곯아 떨어져야 하는데 도대체 잠에 빠져들 수가 없을 만큼 통증이 극심했다. 1시간 동안 그 큰 쟁반에 국과 밥 그리고 반찬들, 이어 빈 그릇까지 수북이 얹어 죽어라 달리고 또 달리다보니 저녁이면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는 듯 밤새 끙끙 앓아야 했다. 

평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의를 나는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했다. 지인을 알게 된 건 불과 1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신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 마음이 서로 통해 마음 속 아픔까지도 털어놓을 만큼 정이 깊어 십년지기 부럽지 않았다. 그런 연유로 지인은 틀림없이 내가 자신의 부탁을 들어 줄 거라 생각했단다.

그러다보니 새로 사람을 구해야겠다는 식당 사장님께 지인은 자신 있게 내 이야기를 했던 것이다. 집과 거리도 가깝고 보수도 넉넉하여 지인에겐 그 식당이 딱 안성맞춤. 그런 일자리를 누가 잃고 싶겠는가. 병원치료기간 동안 자신을 대신해 누군가 일을 해준다면 사람을 새로 구할 필요가 없다는 사장님 말에 지인은 "걱정말라"며 호언장담했다는 것이다.

지인도 늘 하는 일인데 난들 못할까 싶어 앞뒤 재보지 않고 단박에 승낙을 해버린 내 경솔함이 화근이건만 그렇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도 없는 일. 일주일 내내 무슨 이유를 들어 그만둘까를 궁리하다가도 뒤집어 생각해보면 내가 그만둠으로 해서 지인은 일자리를 잃게 되는 것. 정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피하고 싶어도 도저히 피해갈수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태어나 그리 깊은 고뇌 속에 빠져들기는 또 처음이던 어느 깊은 밤. 그만 두자는 나와 계속 일을 해야 한다는 또 다른 내가 비몽사몽간에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네가 자초한 일이야. 죽었다 생각하고 견뎌보는 게 어때?'
'죽었다 생각하고? 정말 죽을지도 모르는데.'
'엄살 부리지마. 하루 온종일 식당에서 일하는 아줌마들도 있어.'
'그 사람들은 그 사람들이고….'

'6년도 아니고 달랑 6개월이야. 그러지 말고 힘든 일 겪을 때마다 네가 써먹던 거 그거 한번 해봐.'
'뭐? 최면?'
'그래, 최면.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세상사 마음먹기 나름이다, 그걸로 최면을 걸면 세상에 못 견딜 일이 없다며.'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세상사 마음먹기 나름이다….'

그 밤. 실성한 사람 마냥 혼자 주저리주저리 중얼거리다 어느새 스스르 잠에 빠져 들었다. 그것도 꿀맛 같은 숙면 속으로. 

지옥을 벗어나 천국으로 입성하다

"개업 8년 만에 아줌마처럼 재빠른 사람은 처음 봅니다. 공장 사람들도 아줌마 칭찬이 자자해요. 어찌나 빠르고 날쌘지 점심 먹고 30분씩 낮잠까지 잔다나 뭐라나. 아줌마 고맙습니다."

지옥 같던 일주일이 보름을 넘기고 또 한 달을 넘길 즈음. 나는 비로소 사장님으로부터 민첩함과 날렵함을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바야흐로 지옥을 벗어나 천국에 입성한 것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 했지만 그 중노동은 도저히 즐길 만한 일은 못됐다. 다만 마음을 한번 바꿔 먹어 보자는 생각이었다. 단지 지인의 일을 대신해 준다는 생각에서 '이 일을 하지 않으면 내일 당장 내가 밥을 굶을지도 모른다'는 즉, 나의 생계수단이라고 생각해봤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 내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나를 천국으로 입성하게 만들었다.  

20년 넘게 공장에서 일을 하셨던 어머니는 월급날만 되면 누런 봉투를 열어 돈을 세고 또 세셨다. 그리곤 '이건 방세, 이건 쌀값, 이건 연탄값' 하시며 몇 푼 안 되는 돈을 조목조목 갈라놓았다. 어머니의 월급봉투는 순식간에 비어버렸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훅' 하고 입으로 불어 누런 봉투 안을 거듭거듭 확인하시곤 빈 봉투를 고이 접어 보관하셨다. 어린 마음에도 그런 어머니가 어찌나 짠하던지 마음과 달리 볼멘소리로 투정을 하곤 했다.   

"월급 타믄 뭐하노. 금방 다 없어질 낀데."
"없어지기는 와 없어지노. 방세주고 쌀사고 연탄사고, 한 달 동안 다 우리가 묵고 쓰는 긴데."
"내 같으믄 정말로 공장 다니기 싫겠다. 무슨 재미가 있어야제."
"재미가 와 없어. 한나절 힘들게 일하고 도시락 묵어봐라. 꿀맛도 그런 꿀맛이 없다. 그라고 밥 묵고 나서 잠깐 눈 붙이는 거, 그기 또한 꿀맛인기라.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에 또 제일 맛있는 낮잠에. 옛말에 밥이 보약이고 잠이 보약이라 안 카더나. 그래서 공장 사람들한테 점심시간이 산삼뿌리 보다 더 훌륭한 보약인기라."

내 어머니는 20년 고된 공장생활의 고달픔을 점심시간으로 달랬다. 힘든 오전 한나절을 점심시간을 기다리는 재미로 견디셨고, 오후 한나절을 그 점심의 힘으로 견디셨다. 세월이 아무리 흘렀어도 힘든 노동 끝에 먹는 점심, 그리고 잠깐의 오수는 내 어머니나 공장사람들에게나 말 그대로 보약인 것을.

생각을 바꾸니 적응은 의외로 쉬웠다. 식당을 들어서는 그 순간부터 1분1초의 기다림도 용납하지 않았다. 처음엔 공장마다 식사하러 오는 사람의 숫자가 달라 일일이 물어 보아야 했다. 그러나 물어보고 밥을 가져다주는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공장 공장마다의 밥 그릇 수를, 아저씨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연상법을 적용시켜가며 열심히 익혔다. 그렇게 아낀 1~2분이 공장사람들에겐 10분·20분의 달콤한 휴식으로 돌아갔다.

"경상도아줌마. 이거 먹어 봐요. 우리 공장 뒷산에서 주워온 거예요."
"경상도 아줌마. 이거 한번 사용해 보세요."
"붓기 빠지는 데는 호박만한 것이 없어요."

더러 공장 뒷산에서 주워왔다며 토실토실 알차게 영근 알밤을 두 손 가득 내미는 사람, 자기네 공장에서 만들었다며 플라스틱 바가지며 반찬통을 한 박스나 가져다주는 사람, 몸살기에 얼굴이 퉁퉁 부은 것을 보고는 누런 늙은호박을 들고 와선 푹 고아 먹으라던 사람…. 더러는 오빠처럼 더러는 삼촌처럼 그들도 나를 피붙이로 생각하는 듯 그렇게 정을 나누어 주었다.   

생각만 조금 바꿨을 뿐인데...

참 이상했다. 마지못해 쟁반을 날라야 했던 처음 얼마간의 1시간은 시계가 멈춰버린 듯 그렇게 더디더니 이후의 1시간은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사이. 1시간이 그렇듯 빠르니 6개월이야 말해 무엇 할까. 일을 마치던 날 식당 식구들과 몇몇 공장사람들이 조촐한 송별파티를 열어주었다.

"식당사장 10년 만에 수십명 아줌마들이 오고 갔지만 송별잔치는 처음입니다. 부디 몸 건강하세요. 그리고 내가 식당을 그만두지 않는 한 아줌마 점심은 평생 공짜로 먹여드릴 테니 언제든 놀러 오세요."
"아줌마 덕분에 매일매일 점심밥 너무 맛있게 잘 먹었어요. 자주 놀러 오세요."
"아줌마 경상도사투리가 얼마나 재미있었는데…. 늘 그렇게 웃으면서 사세요."

세상을 살다보면 더러 벽에 부딪힐 때가 있다. 내게 있어 식당 아르바이트가 그런 경우였다. 그러나 '세상사 마음먹기 나름'이라고 하지 않던가. 어떻게 마음먹는가에 따라 웃을 수도, 울 수도 있는 게 우리네 세상살이 아니던가. 이왕이면 우는 인생보다는 웃는 인생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웃으면 복도 온다는데.

덧붙이는 글 | '아르바이트, 그 달콤 쌉싸래한 기억' 응모



#아르바이트#식당알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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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자회원이 되고 싶은가? ..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뱅뱅거리는 나의 집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날개를 꺼집어 내어 나의 겨드랑이에 다시금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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