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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이 3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유권자들에게는 정책만큼이나 후보자들의 됨됨이와 스타일 같은 감성적인 부분도 중요한 기준이다. 미국인들의 감성적 기준에는 정직성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부도덕한 행위나 심각한 거짓말이 밝혀지면 한순간에 정치 생명이 끝나버렸던 냉혹한 현실 속에서 후보들의 거짓말은 매스컴과 상대 진영의 치열한 추적 대상이자 아킬레스건이다. 대선 후보의 인간적 면모에 관한 미국 언론들의 조사를 토대로 그들의 거짓과 진실을 정리해본다. 오바마에 이어 이번엔 매케인이다. [편집자말]
명예와 정직.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매케인이 늘 강조하는 말이다.

그는 강직한 군인의 이미지를 갖고있다. 게다가 정치인들의 선거자금 모금과 관련해 더욱 엄격한 기준을 세운 매케인 페인골드 법안(선거관리위원회의 규제를 받지 않는 기업이나 노조의 선거 기부금을 금지하는 내용이다) 입안자로 유명하다.

매케인은 얼마나 정직한 인생을 살았을까?

불굴의 전쟁 영웅은 왜 조강지처를 버렸나

 매케인 후보.
매케인 후보. ⓒ 연합뉴스
매케인은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해군 제독을 지낸 군인 명가 출신이다. 그 자신도 20여 년 동안 해군으로 복무했을 뿐만 아니라 아들 셋도 해군에 몸담고 있으며, 그 아들 중 하나는 걸프전에 참전했다.

매케인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태평양함대를 이끈 할아버지 못지않게 군인으로서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베트남전에서 그가 보여준 명예 존중과 불굴의 정신 때문이다.

항공모함에 배속돼 북베트남 폭격 임무를 수행하던 젊은 해군 조종사 매케인은 어느 날 하노이시의 공장 지대를 폭격하라는 명령을 받고 출동했다가 미사일에 격추된다. 두 팔이 부러지고 다리에 총상을 입은 채 천신만고 끝에 낙하산 탈출을 시도했으나 낙하산은 호수로 떨어져 버린다.

익사하기 직전의 그를 끌어낸 것은 베트콩. 목숨을 건진 대신 그는 치료를 받지 못한 채 감옥에서 고문과 구타에 시달린다. 그의 머리칼이 하얗게 쇤 것도 바로 이 때다. 동료 수감자들이 일주일도 못 살 것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만신창이가 된 상태에서 매케인은 기적적으로 살아났고, 그 후 독방에 수감된다.

몇 년 후 매케인의 아버지가 태평양함대를 이끄는 사령관으로 부임한 것을 알게 된 북베트남군은 그를 선전 목적으로 석방하려 하나 그는 '먼저 들어온 사람이 먼저 나간다'는 군인 수칙대로 자기보다 먼저 들어온 포로가 모두 석방된 후 나가겠다며 거절한다. 그 후 더욱 심해진 고문과 구타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으나 간수에게 발견돼 실패한다. 결국 지옥 같은 포로 생활을 5년 반이나 한 후에야 그는 석방됐다.

이중혼, 스캔들, 로맨스

집으로 돌아온 그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은 교통사고를 당해 다리를 쓸 수 없게 된 아내. 다시는 비행을 할 수 없으리라는 사람들의 생각을 깨고 매케인은 재활 치료를 받은 후 비행시험에 합격, 그 후 8년이나 더 해군으로 복무한다.

하지만 해군에서 미래가 별로 밝지 않다고 생각하고 슬슬 정치 쪽을 넘보던 그는 우연히 만난 17살이나 어린 한 여성에게 반한다. 장애인이 된 아내와 이혼하고 애리조나 주의 맥주배급회사 사장의 딸인 그녀와 결혼함으로써 그는 애리조나 주에서 정치인으로서 첫발을 내딛는다.

이 때부터 그의 명예와 정직함은 끝나고 거짓말이 시작된다. 그는 회고록인 <싸울 가치가 있는 것들 Worth the Fighting For(2002)>에서 "헨슬리(현재의 부인)와 데이트하기 이전부터 전 부인 캐롤과는 별거 상태였으며 첫번째 결혼은 1980년 2월에 마침내 끝났다"고 썼다.

 오랜 포로 생활을 끝낸 후 집으로 돌아온 매케인(1973).
오랜 포로 생활을 끝낸 후 집으로 돌아온 매케인(1973). ⓒ 위키피디아 공공자료실

하지만 매케인이 이혼 법정에 제출한 문서에 담긴 내용은 이와 달랐다. 그가 이혼 소송을 제기한 것이 1980년 2월이며, 그 전인 1월 7일까지는 전 부인과 동거 상태였다. 즉 헨슬리와 만난 기간 중 처음 9개월 동안은 여전히 전 부인과 부부 관계를 유지하던 기간이었다는 것이다.

2월에 신청한 이혼은 법원에 의해 4월 2일 허락됐고, 매케인과 헨슬리는 5주 후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애리조나 주의 결혼 허가증에 적힌 날짜는 3월 6일이었다. 즉 한 달이 조금 안 되는 기간(3.6~4.2)은 이중혼 상태였던 것이다.

친구를 친구라 부르지 못한 매케인

아픈 아내를 버리고 정치가가 되기 위해 재력가의 딸과 서둘러 결혼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일으킨 그의 불명예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1987년 상원의원으로서 첫 임기를 시작하기 직전 매케인은 링컨 저축 및 대출 조합의 사장인 찰스 키팅이 마련한 자리에 은행 규제 위원들 및 또 다른 4명의 상원의원과 함께 참석했다. 두 번의 회동 후, 정부의 압류를 받을 위기에 처해 있던 키팅의 회사에는 정부의 특혜성 구제 조치가 취해진다. 하지만 이 회사는 결국 망했고 투자자들과 정부의 막대한 돈은 허공으로 사라져버렸다.

이 사건은 국회 윤리위원회의 조사를 받았고, 그 모임에 참석했던 다섯 명의 상원의원들은 이 때부터 '잭슨 파이브'도 '틴틴 파이브'도 아닌 '키팅 파이브'라고 평생 동안 불리게 된다.

이 스캔들에 관해 매케인은 키팅이 "유권자의 한 사람이었고, 링컨 저축 및 대출 조합은 애리조나의 유력한 고용주라서 만난 것"이라고 해명했으나 사실 키팅은 단순한 유권자의 한 사람이 아니라 그의 오랜 친구이자 동업자, 그리고 자금줄이었다.

키팅 파이브 스캔들로 결국 세 상원의원은 의원 자격을 박탈당했다. 하지만 매케인과 다른 한 명은 모임에 참석하긴 했으나 은행 규제 위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않았다는 이유로 처벌받지 않았다. 매케인의 잘못이라면 그런 자리에 생각 없이 참석한 '판단력 부족'이었을 뿐이라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뉴욕타임스>의 정면 도전

 매케인과 로비스트의 염문설을 처음으로 보도한 <뉴욕타임스> 기사.
매케인과 로비스트의 염문설을 처음으로 보도한 <뉴욕타임스> 기사. ⓒ <뉴욕타임스>
올해 2월 21일, <뉴욕타임스>는 대통령 후보인 매케인의 도덕성을 집중 점검하는 기사 '매케인, 도덕성에 대한 그의 자만심이 더 위험하다(For McCain, Self-Confidence on Ethics Poses Its Own Risk)'를 게재했다.

이 기사는 '키팅 파이브 스캔들 조사 과정에서 매케인이 너무 쉽게 혐의에서 벗어난 것은 아닌가'라는 문제제기를 하면서 도덕적 태도와 모순되는 매케인의 행동들, 그리고 예전에 여성 로비스트 사이에 부적절한 로맨스가 진행됐다는 주장을 상세히 다뤘다.

<뉴욕타임스>는 "매케인의 환상에서 벗어난", 전직 매케인 측 선거 스태프 두 명의 증언에 기초해, 8년 전 대선에 도전했을 때 매케인이 로비스트인 비키 아이스만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들 익명의 제보자에 의하면 두 사람은 선거자금 모금을 위한 저녁 파티에 함께 참석하고 그녀의 고객이 제공하는 제트기를 타고 선거 운동을 하러 워싱턴으로 함께 날아가는가 하면, 매케인이 그녀의 일에 도움이 되는 편지를 써주기도 하는 등 매우 로맨틱한 관계였다는 것이다.

둘의 관계가 캠페인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것을 걱정한 스태프들은 급기야 둘 사이에 개입했고 매케인은 "부적절한 행동"이 있었음을 인정하면서 자신에게 그녀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해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에 의하면 두 제보자의 말은 따로 입수됐음에도 세부적인 내용까지 일치했다.

하지만 매케인 측은 이와 관련한 어떤 인터뷰도 거절하며 "매케인은 대중의 신뢰를 배반한 적이 없다, 누구에게도 특혜를 준 적이 없다, 24년 동안 명예와 정직함으로 나라를 위해 헌신해왔다"고 응수했다. 그리고 <뉴욕타임스>가 익명의 증언에 의존해 치고 빠지기 식의 조직적인 중상모략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익명의 제보자의 증언에 의존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며, 익명이 아니고서는 진실을 말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고 반박했다.

도덕성 부족이 문제인가, 카리스마 부족이 문제인가

 2004년, 환호하는 청중을 향해 화답하는 상원의원 존 매케인(자료 사진).
2004년, 환호하는 청중을 향해 화답하는 상원의원 존 매케인(자료 사진). ⓒ 공화당
선거를 앞둔 시점에 과거의 일을 도마에 올려 도덕성을 문제삼은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유력 언론사의 무리수로 보인다.

최소 8년이나 지난 과거사들인데다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을 꼬치꼬치 파고드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다. 게다가 정가를 흔들었던 다른 정치인들의 스캔들에 비하면 손에 잡히는 뚜렷한 증거가 부족하다는 점, 스캔들 당사자의 제보가 아니라 익명의 제3자들의 제보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의 스캔들이 대중의 이목을 끌지 못하는 것은 개인사적 부분을 자신의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 이용하지도 않고, 그와 관련해 언론이 제기하는 의혹에 대응하지도 않으며 모르쇠로 일관하는 매케인 측의 미디어 전략에도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이유는 매케인이라는 노인의 로맨스가 대중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만큼 그렇게 센세이셔널하지 않아서인 것 같다. 이는 매케인의 카리스마 부족과도 연결된다. 그에게는 여심(女心)을 흔드는 클린턴식의 부드러운 카리스마나 시건방져 보이지만 강력한 힘이 느껴지는 오바마식 카리스마는 물론, 심지어 '똘끼' 충만한 부시식 카리스마도 없다.

친근하며 끈덕지고 믿음직한 사람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지도자가 되기에는 뭔가 부족해 보이는 분위기다. 대중매체가 발달하면서, 도덕성에서 서로 큰 차이가 없을 경우 후보의 카리스마가 표심의 향방을 결정하는 추세다. 매케인의 스캔들이 '아직 이메일을 할 줄 모른다'는 그의 말보다 덜 충격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이러한 시대 변화를 반영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머니인 로버타, 아들 잭, 딸 미간, 부인 신디와 함께한 매케인(1992).
어머니인 로버타, 아들 잭, 딸 미간, 부인 신디와 함께한 매케인(1992). ⓒ 위키피디아 공공자료실


#매케인#미국 대선#거짓말#키팅 파이브#비키 아이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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