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경기 관람 도중' 연행된 언론인과 시민들
대한민국 경찰은, 7일 밤부터 8일 낮에 걸쳐 KBS 본관 앞에서 역사에 길이 남을 장면을 두 장면 연출했다. 하나는, 공영방송국의 본관을 셀 수 없이 많은 전경버스와 사복과 정복을 가리지 않은 경찰 병력을 동원해 빈틈없이 에워싼 장면이다.
다른 하나가 더 중요하다. KBS 본관 앞에서 열린 촛불문화제를 마치고 언론인과 정치인, 그리고 시민들이 올림픽 축구경기를 시청하고 있는 상황에서, 밤 10시 무렵에 갑작스레 경찰 병력이 밀고 들어와 26명의 시민들을 연행한 것이다.
그 면면은 화려하다. 최상재 전국언론노조 위원장, 성유보 방송장악·네티즌탄압저지범국민행동 상임위원장, 최용수·현상윤 KBS PD, 박성제 전국언론노조 MBC본부장, 정청래 전 의원 등, 다수의 언론인과 전직 의원이 연행된 것이다. 그중에서도 최용수·현상윤 PD는 본인의 직장에서 축구경기를 관람하다가 연행된 것이었다.
정치인과 시민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밤을 지새웠다. 그속에서 나는, 주요 정치인 두 명의 이야기를 들었다.
[민주당 최문순 의원 인터뷰]
민주당 최문순 의원은, KBS 이사회가 열린 8일 오전에는 집회의 사회를 맡기도 했다. 그와의 인터뷰는, 경찰의 연행 상황이 종료된 직후에 이루어졌다.
-공영방송사에 공권력이 투입돼 사방을 에워싸면서, '축구 경기 관람 도중에' 언론인과 시민들이 연행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공영방송사에 공권력이 투입되는 일은, 1994년의 KBS 파업 이후 처음이다. 언론사는 '고도의 정신행위'를 수행하고 실천하는 기관이다. 물리력이 개입되지 않는 것이 세계적인 통용 기준이다.
지금 이명박 정부는, 검찰·감사원·방통위 등의 국가기관을 총동원하고, 소환·출국금지·강제구인·협박 등의 위협수단을 모두 활용하고 있다. 언론의 수준을 떨어뜨리는 저열하고 저급한 탄압이다."
-일부 시민들은 이명박 정부의 '촛불 진압'이나 '방송장악 기도'에 대한 민주당의 대응 방식이 너무 약하지 않느냐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민주당의 의석수 한계는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게다가 복잡한 정치역학이 얽혀있는 데다가, 대선·총선 뿐만 아니라 '교육감 선거'도 사실상 보수세력이 승리하는 등, 민주당이 크게 위축된 상황이다.
현재의 대의정치와 민의가 서로 크게 어긋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여기에는 앞서 언급한 민주당의 한계도 맞물려 있는 것 같다. 그 점이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시민들이 연행되고 있고 정국이 지속적으로 얼어붙고 있다. 민주당 차원의 대책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의 정치적 역할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짚고 넘어갈 수밖에 없는 점, 다시 한번 아쉽다. 지금으로서는 시민들의 편에 서서 지속적으로 같이 싸워나가는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남기겠다."
[진보신당 노회찬 공동대표 인터뷰]
-그동안 '촛불집회'에 자주 모습을 보이셨다. 시민과 경찰이 대치하는 현장 맨 앞에 심상정 공동대표와 나란히 서 있는 모습도 지켜봤다. 그속에서 '무엇'을 보셨는지 궁금하다.
"걱정이 많다. 이명박 정부의 무능과 그 위험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시대를 역행하고 있다. 5년 내내 국민과 싸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국민의 신뢰를 얻기는커녕, 신뢰를 얻는 것에 대해 자포자기한 것으로 보인다. 이제 이명박 정부에 남은 것은 공권력과 그를 동원한 억압 뿐이다.
그런데, 국민은 그렇다고 무너지지 않는다. 두달이 넘게 이어진 저항을 예상할 수 있던 사람은 없었다. 이제 미국산 쇠고기도 수입되고 있지 않나. 저항이 더욱 일파만파로 퍼질 것이다."
-KBS라는 공영방송사 앞에 공권력이 투입되는 상황, '축구 경기 관람 도중 연행'이라는 상황도 지켜보셨다.
"경찰은, 인적이 드문 길가에서 축구를 관람하면 안된다는 것을 보여줬다. 인류 역사에 처음 있는 일이다. 차라리 축구를 금지시키던지, 축구 관람을 금지시키던지 해라. 밤 10시가 되니 경찰이 '귀가 경고방송'을 하던데, 우리나라에 언제 다시 '통금'이 부활했는지 궁금하다.
그러면서 KBS 이사회를 강행해 정연주 사장을 몰아낼 준비를 강행하고 있다. 경제가 어렵다면서 권력기관까지 총동원해서 말이다. KBS 사장을 바꾸는 일에 완전히 매달려 있다. KBS 사장을 바꾸면 경제가 살아나나?"
-이명박 정부에 대한 진보신당 차원의 투쟁 다짐이 궁금하다. '원외정당'이기 때문에 특히 더 질문해본다.
"어차피 이명박 정부는 국회를 무시하고 있다. 한나라당조차도 거수기 정당일 뿐이다. 원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어차피 없다. 원외정당으로서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할 일을 유감없이 보여주겠다."
-지금(7일 밤 10시 40분경)도 성공회대 정태인 겸임교수와 이명선씨가 진행하는 '칼라TV'가 KBS 앞 상황을 생중계하고 있다. 진보신당 공동대표로서 지켜보는 소감은 어떤가?
"칼라TV는 당원의 자발적인 참여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아까 이야기했듯이, 우리는 원외정당의 한계를 안고 있다. 하지만 그 한계를 무색케 하는 활발한 움직임에 자부심을 느낀다.
선도적인 참여와 취재로써 새로운 진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기존의 흑백정당이 아닌 칼라정당의 모습을 보여주겠다."
-경찰의 진압이 있었음에도 시민들은 KBS 본관 앞을 떠나지 않고 밤을 지새우고 있다. 두 달 간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에게 한마디해달라.
"민주주의의 위기가 오고 있다. 날이 어두울수록 불은 더 많이 켜진다. 오늘의 촛불이 내일의 횃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민주당 송영길 최고위원과 진보신당 노회찬 공동대표를 비롯한 일부 정치인들, 그리고 경찰의 진압에 의해 KBS 본관 앞 도로 건너편 공원으로 밀려난 시민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밤을 지새웠다. 이들에 대한 인터뷰를 마치고 나니, 영등포경찰서장의 경고방송이 귓전을 때렸다.
"체포와 검거에도 불구하고 여러분들은 불법집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는 경고방송 없이 여러분들을 검거·체포할 수 있음을 강력히 경고하겠습니다."
'해임건의안' 가결까지 전운의 먹구름 속 KBS
아침해가 뜨면서, 다시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잠에서 깨어난 경찰 병력은 다시 빈틈없이 KBS 본관 주변을 에워쌌으며, 통행을 가로막은 전경버스를 기준으로 '정연주 사장 즉각 퇴출'을 외치는 노인 중심의 보수단체 집회와, 밤을 지새운 시민들과 정치인·언론인의 촛불집회가 이어지고 있었다.
기자들의 출입은 완전히 차단됐다. 기존 KBS 출입기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알고 보니, 정연주 사장은 "기자들의 출입을 막지 말라"고 지시했지만, KBS 안전관리팀 직원들, 그리고 경찰까지 이를 막아서고 있었다. 심지어는 PD협회·기자협회·경영협회 소속의 KBS 직원들의 출입까지 막아선 상황이었다.
하지만, '잠깐의 틈'이 생겨 기자들은 KBS 본관 내부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사회가 열리고 있는 본관 3층 회의실 앞에서는 KBS 노조와 경찰 병력의 대치와 몸싸움이 지속적으로 벌어지고 있었다. 출입구는 봉쇄됐으며, 그 봉쇄를 경찰이 굳게 지키고 있는 상황이다.
아이러니했다. KBS 노조의 입장이 말이다. 그들은 '정연주 퇴진 후 정치독립적 사장 선출제도 구축'을 주장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정연주 해임'을 시도하는 이사회를 막기 위해 몸싸움을 불사하는 상황이었다. 물론 KBS 노조는 다소 소극적이었다. 격렬히 저항하며 경찰과 대치한 이들은 기자들과 PD들이었다.
KBS 노조는 지금 혼란에 빠져 있다. 특히나 구성원 중에서 기자들과 PD들은 노조를 격렬히 성토한다. 즉, "노조는 지금 뭘 하고 있으며 누구를 위한 노조냐"는 것이다. 아래의 이미지에서 확인할 수 있는, KBS 박승규 노조위원장을 제명한 언론노조를 성토하는 피켓을 통해 알 수 있는 일이다.
기어이 가결된 '정연주 해임제청안', 스코어는 6:0
KBS 이사는 모두 11명이다. 이중 친한나라당 성향 이사는 7명이다. 그중에서 '해외출장' 중인 이춘발 이사가 빠졌다. 6명이다. 하지만, 그들만으로도 과반을 구성해 이사회를 진행하고 안건을 가결시킬 수 있다.
결국, 이기욱·남인순·이지영·박동영 등 친여 성향이 아닌 이사들은 중간에 빠져 나왔다. 그들은 안건 상정 자체를 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은 소수다. 결국, 스코어는 6:0이었다. '정연주 해임건의안'은 가결됐다.
기자들과 PD들을 비롯한 KBS 일부 구성원들은 긴급 집회를 한 후, 시민들과 힘을 합쳐 경찰과 대치에 나섰다. 봉쇄됐던 본관 앞 계단은 '탈환'됐다. KBS는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했다. 베이징 올림픽이 개막했지만, 불씨는 더욱 활활 타오를 기세다.
향후의 예상 일정은...
청와대는 곧장 반응을 내놓았다. 박형준 홍보기획관은 "경영상의 부실이라든지 비리라든지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이유 있다고 판단이 될 때는 (이명박 대통령이 KBS 정연주 사장에 대한) 해임요구를 제청을 받아들일 것"이라는 반응을 미리 내놓았다. '정연주 해임건의안'은 이제 일사천리의 과정을 거칠 것이다.
물론, 그 이전에 따져봐야 할 것이 많다. 물론, KBS 이사회는 곧바로 후임 사장 인선을 시작할 것이다. 사장 추천 공모 절차가 있다. 사장추천위원회가 구성될 가능성을 주목해봐야 한다. KBS 노조는 이미 이사회 추천 8명, 노조 추천 7명의 사장추천위원회를 구성해 사장 후보를 추천해야 한다는 방안을 제시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정연주 사장도 만만히 물러나진 않을 것이다. 그는 이미 지난 6일에 있던 기자회견에서 '법적 절차'를 예고했다. 그 다음날, 서울행정법원에 감사원의 해임처분에 대한 무효소송 및 효력 집행정지 신청을 낸 것이다. 이 와중에서 다시금 '임명권'을 '임면권'으로 해석한 이명박 정부 관계자들의 주장이 세간의 화제로 떠오를 것이다.
당장 시급한 것은, 정연주 사장의 강제구인 가능성일 것이다. 검찰은 이미 '체포영장 발부'를 검토하고 있다. 5번에 걸친 출석요구에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다. 이미, 정연주 사장은 출국이 금지돼 베이징으로도 향하지 못한 상황이다. 대검찰청 회계분석팀의 '배임 분석'이 끝나는 다음주쯤 확정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명박 정부의 '일사천리'와 각 언론사 노조를 비롯한 언론노조와 시민사회단체 그리고 야당의 대충돌이 여전히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검찰은 과연, 정연주 사장이 구체적인 개인비리를 저질렀다는 '확증' 없이 그의 배임 혐의를 입증할 수 있을까?
국세청과의 '법인세 소송' 논란으로 배임 혐의를 유추한다는 것이 감사원의 주장이며 검찰의 계획이겠지만, 모호한 부분이 많아 만만치 않은 여파가 불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와 언론인의 '집단난투극'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다음 순서는 분명히 MBC일 것이다. 그들에게는 '민영화'라는 칼이 드리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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