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1 -

땡볕이 뜨거운 여름 한낮, 아스팔트에서는 뜨거운 김이 훅훅 올라오고, 옆으로 지나가는 자동차마다 후끈후끈함이 느껴지지만, 자전거를 타고 달립니다. 인천 동구 창영동에서 금곡동으로, 숭의동으로, 도화동으로, 주안동으로, 그리고 간석동으로. 국철 간석역께 다다른 다음, 철길을 따라서 아주 천천히 자전거를 달리다가 자전거에서 내립니다.

간석역 철길 둘레 이곳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들어가 볼 일이 없을, 간석역 철길 둘레 동네. 이곳은 발길이 뜸하다 보니, 고즈넉하면서 살가운 온갖 모습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간석역 철길 둘레이곳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들어가 볼 일이 없을, 간석역 철길 둘레 동네. 이곳은 발길이 뜸하다 보니, 고즈넉하면서 살가운 온갖 모습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 최종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냅니다. 울타리에 자전거를 세워 놓고, 나즈막한 옛날 아파트 앞마당에 가지런히 피고 자라는 옥수수며 푸성귀며 꽃이며 들여다봅니다. 전철이 지나갈 때마다 동네가 들썩들썩하지만, 전철이 지나가지 않는 동안은 고요합니다. 예부터 인천이라는 곳은, 모든 물건을 서울로 올려보내는 공장도시였으며 물자수송 나들목이었습니다. 지금도 인천은 ‘공장터’가 ‘사람 사는 터’ 못지않게 넓습니다. 어쩌면 공장터가 더 넓은지 모릅니다.

공장은 틀림없이 이곳 인천에 어렵게 뿌리를 내리려는 가난한 사람들한테 일자리를 줍니다. 똥물을 먹었던 동일방직 노동자들한테도 일자리를 주었고, 일본에서는 공해산업이라고 해서 한국에 내다 판 유리공장도 서민들한테 일자리가 되었습니다. 동화와 동시를 쓰는 어린이문학가도 밥벌이를 하자면 대한제분에 나가서 일을 해야 했습니다. 헌책방 아주머니도 한때는 대성목재에 몸담기도 했습니다. 또르르 선율이 아름다운 영창피아노도 인천에서 만들고, 우리 밥상을 푸짐하게 해 준다는 제일제당(CJ) 공장도 인천에 또아리를 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저런 공장들, 대우자동차니 두산중공업이니 하는 공장이 인천에만 있겠습니까. 포항에는 포항제철이, 인천에는 인천제철이, 또 현대제철이 있습니다만, 현대자동차와 삼성자동차는 이 나라 구석구석에 공장을 지어 돌립니다.

한편으로는 일자리이지만, 이 일자리를 얻는 사람들은, 공장에서 내뿜는 매연과 폐수를 고스란히 받아먹습니다. 기계가 돌아가며 나오는 먼지와 쇳가루를 옴팡 뒤집어쓴 다음, 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삼겹살과 소주로 몸을 씻습니다.

자전거마실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주안공단을 가로질러 보았는데, 그냥 공장 사잇길을 자전거로 달릴 뿐이었으나, 코가 뚫리는 듯했고 마시는 숨마다 목에 걸려서 재채기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문득, 공장에 나가 돈 몇 푼을 번다고 해도, 이 돈은 고스란히 병원에 가서 몸에 깃든 병을 털어내는 데에 바쳐야 하지 않을까 싶은, 그러면서 늘 나쁜 공기와 깨끗하지 못한 물을 마셔야 하니, 얄궂은 삶터가 비록 집삯은 낮다고 해도, 조금도 적은 값으로 방을 얻어서 살아가는 셈은 아니겠구나 싶은 생각이 물씬물씬 들었습니다. 노동자는 일을 하지만, 주머니로 들어온 돈은 병원으로 나가거나 집임자한테 나가고, 그러면서 공장과 병원과 집부자는 언제나 끝없이 돈을 벌고, 노동자는 가난한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면서도 살기 나쁜 터전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이 노동자들 아이들도 부모와 마찬가지인 굴레에서 헤어나기 어렵게 되고.

간석4동 골목길 새마을주택이 많아 밋밋한 골목이었으나, 그래도 곳곳에서, 사람 사는 냄새와 맛을 찾아봅니다.
간석4동 골목길새마을주택이 많아 밋밋한 골목이었으나, 그래도 곳곳에서, 사람 사는 냄새와 맛을 찾아봅니다. ⓒ 최종규

 - 2 -

빨래 몇 점 옆으로 노란 꽃이 소담스럽습니다. 시멘트 울타리 안쪽에 심은 꽃이 무럭무럭 자라서 울타리를 넘봅니다. 울타리 바깥을 구경하고 싶었을까요. 날마다 끝없이 큰소리 지르며 지나가는 쇠지네를 구경해 보고 싶었을까요.

자전거를 어깨에 짊어지고 구름다리로 올라섭니다. 전철 흐름을 막지 않고자, 사람들은 구름다리를 힘겨이 오르내려야 합니다.

자동차가 지나가는 길이 뚫리면, 이때에도 사람들은 구름다리로 오르내리거나, 땅밑길로 드나들어야 하거나, 한참을 건널목 신호를 기다려서 건너야 합니다. 자동차며 기차며 전철이며 버스며…… 거침이 없이 내달리기만 하고, 사람과 자전거는 늘 가던 길을 멈추고 하염없이 불볕을 받으면서 서 있어야 합니다. 골목길을 거닐다가도 앞뒤로 오는 차가 빵빵거리면 사람이 비켜야 합니다. 사람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차는 볼 수 없을 뿐더러, 사람 옆으로 슥 돌아가는 차를 보기도 어렵습니다.

간석4동을 설렁설렁 달립니다. 골목 하나하나 빠지지 않고 달립니다. 그렇지만, 간석4동 골목길은 자전거로 달리는 맛이 하나도 없습니다. 판박이로 지은 똑같은 ‘새마을주택’은, 사람 사는 냄새를 느끼게 하기 어렵고, 집 앞으로 두 줄씩 이어진 자가용, 배달오토바이는 이 동네가 ‘사람은 살아도 사람 냄새 맡기 어려운’ 곳이라고 온몸으로 보여줍니다.

십정2동 십정2동 골목길에서.
빈집. 시멘트 계단에서 자라는 꽃과 나무...
십정2동십정2동 골목길에서. 빈집. 시멘트 계단에서 자라는 꽃과 나무... ⓒ 최종규

인천남고와 석정여중고 울타리를 끼고 달립니다. 꽃 모양 울타리를 세운 앞으로 진짜 꽃 해바라기가 드문드문 심겨 있습니다.

지루한 골목을 빠져나와 십정2동으로 접어듭니다. ‘넘은산길’. 간석4동도 그렇고 십정2동도 그렇고, 골목마다 전지 크기 종이가 벽에 붙어 있습니다. “주민 총회 개최 안내”를 하는 벽종이로, 머잖아 이 동네 재개발을 할 터이니, 주민들은 모여서 들으라는 알림쪽입니다.

집이 비고 곧 헐릴 듯, 무너져 가는 집 하나를 봅니다. 사람이 비니 사람과 함께 살던 꽃과 나무도 시들고 꺾이고 부러지고.

비탈진 데에 자리한 십정초등학교를 따라 비탈을 깎고 들어선 빌라를 옆으로 끼고 오르막을 오릅니다. 옛날 빌라라 조그맣기는 해도 꽃밭을 조금 마련해 두고 있으나, 꽃밭에 꽃은 없고 메마른 모래만 가득합니다. 빌라로 들어서는 자리마다 빨래줄이 걸쳐 있고, 빨래가 촘촘히 걸려 있습니다. 해가 잘 들지 못하는 자리에 지어진 탓에, 빨래를 널자면 저 자리밖에 없을 듯합니다. 이곳 빌라에 깃들어 지내는 분들은 낮에도 집에서 불을 켜고 살아야 하는구나 싶습니다.

골목길에서 예순 계단과 십정1동, 십정2동 골목길.
골목길에서예순 계단과 십정1동, 십정2동 골목길. ⓒ 최종규

 - 3 -

오늘 골목마실은 어쩐지 너무 힘빠지고 힘들고 지루한 모습만 눈에 들어옵니다. ‘곧 허물고 아파트 새로 지을 동네’로 못이 박히다 보니, 깨진 유리창을 갈지 않고, 비어 버린 집이 동네 한복판에 휑뎅그렁하게 있으며, 길가를 오가는 아이며 어른이며 쓰레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버리기도 합니다. 앞으로는 더 살 수 없는 곳이 되니, 아쉬움도 버리고 이웃사랑도 버리고 착한 마음도 버려야 하는가요.

괜히 더위만 먹고 다닐 바에야 집으로 돌아가야지, 생각하며 자전거머리를 돌립니다. 그렇지만 못내 아쉽습니다. 가야 할 길을 제대로 못 가고, 보아야 할 곳을 찬찬히 못 보고, 부대껴야 할 동네를 못 부대끼고 겉핥기만 하고 지나쳐 버린다는 느낌입니다.

이 느낌은 뭘까, 하고 속으로 되뇌이면서 찻길을 달립니다. 그러다가 오른편, 얼핏 보아도 계단 숫자가 쉰은 넘을 듯한(하나하나 세어 보니 예순 계단이 넘습니다) 가파른 언덕받이가 보입니다.

어쩜, 계단을 놓아도 이렇게 놓을까 싶은데, 이 계단이 없었을 더 먼 예전에는 먼길을 에둘러 다녀야 했을 테지요.

자전거를 오른어깨에 걸치고 영차영차 올라갑니다. 계단짬에 대문을 놓은 골목집 안쪽에서 사람들 말소리가 흘러나옵니다. 이윽고, 어린이 셋이 까만봉지를 들고 밖으로 나옵니다. 땀 뻘뻘 흘리며 자전거 들고 올라가는 저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자전거를 내려놓고 히유 한숨을 돌린 다음, 사진기를 집어 멀리보기로 한 장 찍으려니, 뒤에서 아이들이 “남자인가 여자인가, 한국사람인가 외국인인가” 하고 중얼중얼거립니다. 얼굴 가득 땀으로 범벅인 채로 “수염 난 여자가 어디 있냐?” 하면서 아이 얼굴에 사진기를 들이밉니다. 사내아이가 “와!” 하면서 내뺍니다.

골목에서 골목길 아이들, 골목길 풀꽃, 그리고 자전거.
골목에서골목길 아이들, 골목길 풀꽃, 그리고 자전거. ⓒ 최종규

멀어져 가는 아이들 뒷모습을 보다가 왼쪽으로 고개를 돌립니다. 자동차가 들어설 수 없을 만한 길이 나 있고, 자동차가 들어설 수 없을 만한 길이기에, 골목집 앞에는 꽃그릇이 잔뜩 놓여 있습니다. 자전거를 전봇대에 기대어 놓습니다. 박하풀 냄새를 살며시 맡습니다. 문패에 붙은 번지수를 읽습니다. 십정1동 216번지.

저 멀리 아파트 무리가 보입니다. 오른편으로는 비탈을 따라 촘촘하게 붙어 있는 골목집이 보입니다. 나즈막한 지붕 집들. 그렇구나. 여기가 십정동 ‘철거민촌’이구나.

처음부터 이리로 올 생각이었는데, 엉뚱한 데만 한참 돌면서 힘을 빼 버렸구나.

오늘은 몸이 고단하여 오른편 철거민촌은 다음에 다시 찾아가기로 하고, 왼편, 꽃울타리가 이루어진 곳으로 접어듭니다. 흙 한 줌 없는 시멘트바닥임에도 뿌리를 내리고 튼튼히 줄기를 올린 들꽃 한 송이를 봅니다. 꾸벅 인사를 합니다.

십정동 216번지 꽃울타리 골목에 접어들며 꽃 구경
십정동 216번지꽃울타리 골목에 접어들며 꽃 구경 ⓒ 최종규

꽃울타리를 지나니 싱싱하게 익어가는 풋감 주렁주렁 달린 감나무. 땅바닥이 아닌 크고 깊은 플라스틱통에 심은 감나무. 감나무 건너편에는 배나무. 배나무 심긴 자리는 조금 넓게 마련한 꽃밭이 있어, 흙바닥에 뿌리를 내리고.

공기맛이 다르구나 느끼면서 사진을 찍으니, 런닝 차림 할아버지가 나와서, “거, 뭐하쇼?” 하고 묻습니다. “네, 여기 꽃들이 어여뻐서 사진으로 담아 보려고요.” “그래? 사진? 찍어서 뭐해, 이 동네 곧 다 없어질 건데.” “여기만이 아니라 인천이 죄다 재개발로 없어지잖아요.”

할아버지는 더 말씀이 없습니다. 한동안 제 사진 찍는 양을 바라보다가 집으로 들어가십니다. 다리쉼을 하고 사진을 몇 장 더 찍습니다.

감나무와 배나무 골목길 감나무, 골목길 배나무. 서로 마주보고 있습니다.
감나무와 배나무골목길 감나무, 골목길 배나무. 서로 마주보고 있습니다. ⓒ 최종규

나비 두어 마리 팔랑거립니다. 모처럼 만나는 나비로구나. 응, 너희 나비들은 이곳이 재개발 되면 갈 곳을 잃겠구나. 아파트만 남는 동네에는 길고양이도 길개도 나비도 살 수가 없으니 말야. 그래도, 이 집 할아버지는 나무며 푸성귀며 꽃이며 가득가득 기르고 있어서 너희들이 날갯짓을 쉬고 밥도 얻어먹을 수 있을 테지. 너희들은 너희 어버이와 어버이에 또 어버이와 어버이까지 해서, 이 골목꽃밭에서 몇 해나 밥을 먹고 고치를 만들고 새로 태어나고 하면서 살았니?

꽃과 나비 꽃에 따라 부지런히 옮겨다니는 나비.
꽃과 나비꽃에 따라 부지런히 옮겨다니는 나비. ⓒ 최종규

 - 4 -

다시 찻길로 나오기 앞서, 쓰러져 있는 빨랫대 하나 보여서 일으켜세웁니다. 이 앞을 지나가는 젊은이가 있었으나, 쓰러진 빨랫대는 쳐다보지도 않고, 굴러다니는 깡통만 걷어차고 지나갑니다. 이영차 하고 세운 다음, 바닥에 흩어진 빨래를 주섬주섬 모아서 다시 널어 놓습니다. 빨래는 모두 잘 말라서, 흙은 안 묻었습니다.

골목길 쓰러진 빨랫대. 멀리 보이는 철거민촌.
골목길쓰러진 빨랫대. 멀리 보이는 철거민촌. ⓒ 최종규

슬슬 배가 고프고 목이 마릅니다. 이제는 얼른 집으로 돌아갈 때입니다. 햇살은 그지없이 뜨겁고, 자전거 옆으로 스쳐 지나가는 자동차마다 후끈후끈한 바람을 한 아름씩 선사해 줍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골목길#골목#골목마실#자전거여행#인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이 기사는 연재 최종규의 '책과 헌책방과 삶'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작은책집으로 걸어간 서른해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