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대북특사, 원 구성 협상 및 국무총리의 상임위 불출석 문제 등을 통해 불거진 당청 간 엇박자 행보가 '청와대의 독주'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12일 이명박 대통령과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 간 정례회동은 여당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청와대에 휘둘리고 있다는 지적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여당 부재론'이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박희태 "기본에 충실한 국정운영...경제 지상주의 천명해야"
박희태 대표는 취임 후 처음으로 열린 이날 이 대통령과의 정례회동에서 "기본에 충실한 국정운영을 해줄 것을 주문했다"고 차명진 대변인이 전했다. 박 대표가 "요새 사회 지도층은 물론 국민들 사이에 사회질서가 무너지고 법과 질서가 안 지켜진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며 "법과 원칙을 잘 지키는 사회를 만들어 달라"고 했고, 이 대통령도 이에 적극 공감했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또 "이 대통령이 경제 살리기에 몰두하는 경제 지상주의를 천명해야 한다"고 말해 이날 단행된 경제인들에 대한 '무더기 사면조치'에 힘을 실어줬다.
이에 이 대통령은 "중국 13억 인구가 하나가 돼 올림픽을 치르는데 대한민국에는 분열과 대립만 있어 안타깝다"며 "한나라당이 국론을 통합하고 민생을 챙기는 데 앞장서 달라"고 주문했다.
잇따라 터지고 있는 여권 내 비리 사건에 대해서도 이 대통령은 "과거처럼 언론이나 야당이 먼저 문제를 제기하고 여권은 숙의하다가 드러난 것이 아니라 여권이나 청와대가 먼저 인지해 수사를 의뢰한 것"이라며 과거 비리 사건과 다르다는 인식을 보였다. 이 대통령은 "이런 비리 사건에 대해서 앞으로 관련자의 지위고하와 소속 여부를 막론하고 사정기관에서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고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8·15 특사의 배경과 관련 "국민 정서를 고려하면 기업인은 이번 사면에서 제외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기도 했으나, 경제 살리기와 일자리 만들기를 위해 기업인 사면을 결심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당 사무총장이 청와대와 소통 역할?
박 대표는 이날 여야 합의사항이 청와대의 말 한마디로 뒤집히는 상황이나 정부의 인사 난맥상, 공기업 개혁 후퇴 등 국민적 우려가 커지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박 대표가 이 대통령과 오찬이 끝난 뒤 30여분간 독대를 하면서 유일하게 한 '요구'는 KBS 후임 사장 인선에 대한 것이었다. 박 대표는 "정연주 사장 후임 KBS 사장 인선은 국민들로부터 그 사람이 KBS를 진정한 국민의 방송으로 거듭나게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인물로 인선해달라"고 말했다. 독대까지 하면서 한 얘기치고는 지극히 원론적인 얘기였다. 차명진 대변인의 브리핑을 듣고 있던 기자들 사이에서 키득키득 웃음 소리가 새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차명진 대변인은 "당청 간 엇박자 행보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했느냐"는 질문에 "향후 청와대 정무수석과 당 사무총장이 당청 간에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창구 역할을 하기 위해 정례적인 모임을 갖고 구체적인 의제를 협의하기로 했다"고 답했다.
차명진 대변인은 "이것이 오늘 회동의 최고 성과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당 내부에서는 청와대의 말 한 마디에 여야 원내대표 간 합의 사항이 일거에 뒤집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집권여당의 역할을 기대하기 힘든 것 아니냐는 자조 섞인 탄식이 터져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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