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 마주치지 말았어야 할 눈빛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았다. 마주치지 말았어야 할 눈빛과 마주쳤다. 고개를 얼른 돌려 버렸다. 아, 부자들의 동네 한 복판 강남대로에서 반쯤 먹다 버린 콘 아스크림을 얼른 주어 입 속에 넣는 초로의 노인과 눈이 마주쳤다. 지난 토요일(9일) 아이들과 무역센터 아쿠아룸에 갔다 나오면서 마주한 광경이다.
그걸 본 눈이 어두우신 어머니가 묻는다.
"야야, 저 양반 뭘 주 먹고 있노?" "할머니, 아스크림요. 그런데 다 녹은 걸 왜 주어 먹어요?" 큰 딸 아이의 대답이었다. 어머니가 혀를 끌끌 찬다. "생긴 것, 차린 것 멀쩡한 것 봐서 정신 놓은 사람 같지는 않구만,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우리 말을 듣기라도 한 걸까? 번듯하지는 않지만 그리 남루하지도 않는 초로의 노인은 쫓기듯 멀어져 간다.
왜 하필 눈을 마주쳤을까. 내가 조금이라도 일찍 고개를 돌렸으면 이 낭패감을 맛보지는 않았을 것을. 몇 번이나 이런 일이 있었다. 먹다 길가에 내어 놓은 자장면을 주저 앉아 먹고 있는 걸인, 반찬만 남겨진 도시락을 뒤지던 머리에 산발을 한 아줌마.
그런 이들과 어김없이 눈이 마주쳤고, 그런 날이면 꼭 소주를 한잔 했다. 그 초로의 노인과 마주치기 직전에도 나는 둘째 아이가 먹고 있는 아이스크림을 옷 버린다는 이유로 빼앗아 휴지통에 던지곤 신호등을 건너던 길이었다.
둘 - 할일 없으니 트럭 끌고 나오고... 사는 사람도 없고...
자전거에 아이를 태우고 밤 산책에 나섰다. 시장 모퉁이 돌아 오늘 길, 유난히 시끄럽다. 1톤 트럭에 수박을 실어 놓고 파는 행상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였다. 그런데 한대가 아니라 두 대가 마주보고 마이크로 고함을 지르고 있다. 거의 싸움에 가깝다. 사정을 들어 보니 차를 대고 먼저 팔고 있던 주변에 다른 차가 와서 수박을 팔아 '싸움'이 붙은 것이다. 처음에는 서로 자기 수박이 맛있다고 마이크로 소리를 높인다. 한 쪽에서는 빨리 차 빼라고 하고, 또 다른 한 쪽에서는 자리 전세 냈냐고 대응한다. 육두문자가 오가고 분위기가 험악해 진다.
갑자기 한쪽에서 5000원하던 수박값을 3000원으로 내려 버린다. 구경하던 사람들이 그 쪽으로 몰려간다. 반대쪽에서 2000원 받겠다고 소리를 질러 댄다. 사람들이 또 그 쪽으로 몰려간다. 결국 멱살잡이가 되고, 주변사람들이 그들을 말려 차 하나가 욕을 하며 떠나 버렸다.
2000원을 부르던 사람이 남아서 사람들에게 하소연을 한다.
"저 사람이나 나나 오죽하면 이러겠어요. 2000~3000원에 팔면 본전도 못 건져요. 보세요. 5m. 10m에 수박 차 하나씩 서 있잖아요. 할일 없으니 전부 트럭 끌고 나오고, 사는 사람은 없고…."
2000원짜리 수박을 고르려는 사람들 옆에서 그는 담배를 빼어 문다. 조금 전 핏대를 올려 싸우던 기세는 간데 없고 흥정도 흥도 없이 담배를 문 채 손님이 건너는 1000원짜리 두장을 기계처럼 받아 챙긴다. 나는 그 수박 사는 걸 포기했다.
셋 - 쇠똥구리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
언제부터인가 부쩍 많아진 것 같다. 청소를 하고 폐지를 따로 묶어 내놓기가 무섭게 대문 밖에서 그것을 챙겨가는 소리가 들린다. 어떤 분들은 리어커를 끌고 다니고 또 어떤 분들은 못쓰는 유모차를 끌고 다닌다. 이른 아침 한강을 나갔다 돌아오는 길, 비 오는 텅 빈 거리. 어김없이 유모차에 폐지를 실은 할머니가 고물상으로 간다.
새벽 거센 빗줄기는 그쳤지만 여전히 비가 내린다. 우산도 없이 우의만 입고 폐지 실은 유모차를 힘겹게 미는 할머니. 빈 박스, 폐지 위로 빈 캔이나 쇠붙이를 담은 비닐 봉투는 반도 덜 찬 것 같다. 고물상 앞에서 허리를 편다.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곧 돌아 나온다. 빈 유모차. 허리를 폈던 그 자리에서 폐지 값으로 받았을 돈을 쌈지에 넣고 또 폐지를 주으려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사라진다.
폐지는 kg당 170원 꼴. 하루 종일 모아도 몇 천원을 만지기가 힘들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러나 이것이라도 해야 생계를 꾸려갈 수 있는 사람들. 자본에서 소외 받은 사람들이 자본의 쓰레기를 뒤져 살아가는 세상이다. 그 할머니들을 볼 때마다 쇠똥을 굴려 알집을 만드는 쇠똥구리의 삶이 생각나는 것은 내 상상력의 문제일까?
경제가 살면 서민도 사나요?
하루가 멀다하고 오르는 물가. 곳곳에서 불황이라는 이유로 일자리를 잃는 사람들. 서민 경제의 몰락은 구태여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문 앞에 폐지를 줍기 위해 서성이는 사람들. 출근길 전철 칸에서 무가지 신문을 전쟁하듯이 챙겨가는 할아버지들. 퇴근길 몇 걸음 에 하나씩 늘어선 과일장수들. 그리고 그 뒤로 보이는 '전포 세줌'이라고 써놓은 빈 가계들. 잔디밭에 엉성한 텐트를 치고 무료 급식 밥 때를 기다리는 노숙자라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대부분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생각했던 우리 서민들 아니었던가?
모든 게 경제 살리기다. 노무현 정권이 못 살린 경제를 이명박 정권이 살린단다. 그래서 비리 경제인들도 대폭사면 한단다. 그런데 경제가 살면 서민도 사는 걸까? 수출이 늘면 일자리도 늘고 비정규직도 정규직으로 바뀔 수 있을까? 대기업의 위주의 경제 살리기가 서민 경제를 살릴 수 있을까? 어디를 찾아봐도 이 질문에 명쾌한 대답이 없다.
경제 살리기에 나선 이명박 정부, 경제가 살고 수출이 잘 되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될 것이라고 이야기하지 말라. 어쭙잖게 경제를 살려야 하니까 허리띠를 졸라 매자고 이야기하지 말라. 지금 서민들에게 이런 말은 허리띠를 조르자는 당부가 아닌 목을 조르려는 협박일 수 있다.
이해를 구하고 당부가 필요하다면 누구를 위한 경제 살리기인가를 분명히 하라.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인원 감축이 경쟁력 강화의 지름길인 것처럼 호도하는 경제 살리기는 기업 살리기이지 서민 살리기는 아니다. 지금 서민이라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절대적 빈곤에 처해있고 상대적 빈곤에 깊이 절망하고 있다. 서민 살리기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