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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일요일 저녁 7시. 서울 시청광장 옆 인권위원회 건물 7층. 가만히 서있어도 등에 땀이 맺히는 더운 날씨. 지난 4일부터 이곳에서 단식 농성을 하고 있는 안명훈(30)씨의 얼굴에도 구슬땀이 맺혀 흐른다. 그러나 안씨는 땀을 닦을 수 없다. 그는 손과 발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1급 장애인이다.

그는 손발을 쓸 수 없는 자신이 인간다운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국가에서 지원해 주는 유일한 수단인 활동보조인 서비스의 확대를 위해 7일째 단식중이다.

한끼 식사하는 데 2시간 걸려

 1급 장애인 안명훈씨. 2004 장애인 올림픽금메달리스트 이기도 하다.
1급 장애인 안명훈씨. 2004 장애인 올림픽금메달리스트 이기도 하다. ⓒ 김동환
"하루에 두 끼 이상 먹고 그나마 좀 인간답게 살아보자는 겁니다."

보건복지부가 정한 기준에 따르면 안씨가 한달에 사용할 수 있는 활동보조시간은 180시간. 하루에 6시간 정도 쓸 수 있는 분량이다. 도와주는 사람 없이 혼자서는 식사를 할 수 없는 안씨가 한끼 식사를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시간 반에서 2시간 가량. 결국 하루 세끼 식사를 할 경우 6시간의 활동보조시간은 식사하는 데만 쓰기도 빠듯하다.

밥먹는 것 이외에 운동을 하거나 외출을 하거나 옷을 갈아 입거나 화장실에 가거나 샤워를 할 수가 없는 셈. 반사적으로 "그럼 밥만 먹냐"고 물으니 "밥을 못 먹죠"라고 대답하는 안씨.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안씨가 2끼 이상을 먹는 날은 매우 드물다.

그렇다고 운동이나 외출을 자주하는 것도 아니다. 2005년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1년에 10번도 외출을 못한다는 장애인이 10만 명. 1주일에 1번 외출한다는 장애인은 전체 등록 장애인 200만 중 30만 명이었다. 이 30만 명 중에 안씨가 끼어있다.

활동보조인 서비스는 중증장애인들이 일상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지원하는 제도다. 지난 2007년부터 1급 장애인만을 대상으로 전국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아무리 형편이 좋지 않은 1급 장애인이라고 해도 보건복지가족부에서 최대로 보장받을 수 있는 시간은 90시간. 여기에 그 장애인이 혼자 살고 있을 경우 30시간이 추가된다.

안명훈씨의 경우 거주지인 인천광역시에서 60시간을 추가 지원해 준다. 이렇게 해서 대한민국에서 장애인이 최대로 얻어낼 수 있는 활동보조인 서비스 시간은 180시간. 하루에 한끼씩 먹으며 산다는 안명훈씨가 가장 형편이 좋은 장애인인 셈이다.

현재 한국에서 활동보조인 서비스를 받는 장애인은 약 2만여 명, 월 평균 서비스 시간은 56시간이다. 애초에 보건복지부가 2009년 활동보조인 서비스로 올린 예산은 2만 7000여 명이 월 평균 56시간을 사용할 수 있는 분량.

그러나 전국장애인철폐연대 등의 장애인 단체들이 반발하자 기존 예산에 508억 원을 추가해 2만 7000여 명에게 월 평균 70시간을 서비스할 수 있는 1246억원을 기획재정부에 신청했다. 그런데 기획재정부는 보건복지가족부가 추가 요구한 508억이 지나치게 많다며 제동을 걸었다. 추가 예산이 확보되지 않으면 활동보조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인원과 시간 또한 동결될 수밖에 없다. 안씨가 단식 농성을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장애인들에게 활동보조인 서비스가 간절한 이유는 그것을 대신할 만한 현실적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 부모님과 떨어져 장애인 친구와 함께 살고 있는 안씨의 한달 수입은 93만 원. 장애인 수당 13만 원에 2004년 아테네 장애인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했기 때문에 연금 80만 원을 정부에서 지급받는다. 보통 장애인들보다는 월등히 많은 수입이지만 "감히 1시간에 8000원짜리 사설 활동보조 서비스를 받을 엄두는 못낸다"는 것이 안씨의 말이다.

보통 독거 장애인의 경우 한달 50만 원 가량의 기초생활수급자 정부 지원금이 전부인 경우가 많다. 이 중 방값으로 30만 원 가량을 내면 남는 돈은 고작 10만~20만 원. 이 돈으로 한달 동안 살아가야 한다. 중증장애를 갖고 있어도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니면 정부 지원금을 거의 받지 못하기 때문에 사실상 살아가기가 어렵다. 먹고 살기도 힘든데 사설 활동보조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리 만무하다.

이런 사정 때문에 장애인의 삶은 국가에서 쥐어주는 활동보조인 서비스시간에 맞춰질 수밖에 없다. "중증 장애인인데 활동보조인 서비스를 받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안씨의 말은 엄살이 아니다.

비장애아동은 120시간, 장애아동은 50시간 지원받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최강민 조직1국장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최강민 조직1국장 ⓒ 김동환
"이렇게 활동보조인 서비스를 받는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부모님 집에 동물처럼 갇혀 지내는 장애인들이 흔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안씨와 함께 단식에 참여하고 있는 1급 장애인인 최강민씨(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조직 1국장)가 한달에 사용하는 생활비는 50만 원. 이번 달에 받은 활동보조시간은 120시간. 최씨가 뭔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은 하루에 4시간뿐이다. 최씨는 "기획재정부가 입장을 철회할 때까지 단식을 계속할 생각"이라고 말한다.

인권위원회 7층 창가에서는 장애아동의 부모들이 단식에 동참하고 있다. 왜 단식을 하냐고 묻자 한 남성이 분통을 터트린다. 안명훈씨와 함께 7일째 단식중인 경남장애인부모회장 윤종술씨다.

"2가지가 문젭니다. 하나는 활동보조 서비스, 다른 하나는 장애 아동 재활치료서비스. 우리나라의 장애 정책은 성인과 신체 장애인 위주로 편향되어 있습니다. 도저히 단식을 안 할 수가 없어요"

7세에서 64세까지 1급 장애인에게 지원되는 활동보조 서비스. 7세부터 18세 이하에 해당하는 1급 장애 아동이 최대로 받을 수 있는 서비스 시간은 한달에 50시간이다. 지적장애인들은 거의 1급판정을 받기가 어렵기 때문에 이마저도 지원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 윤씨는 말을 이었다.

"보건복지가족부에서 '아이돌보미'사업이라는 걸 합니다. 한부모가정이나 맞벌이 등으로 아이를 돌볼 시간이 없는 부모들을 위해 보건복지부에서 실행하고 있는 사업이지요. 근데 이게 한달에 120시간을 지원해 줘요. 게다가 거기서 더 지원받고 싶으면 시간당 1000원만 더 내면 됩니다. 장애인아동들을 돌봐주라고 주는 시간은 기껏해야 한달에 최대 50시간이라구요. 비장애아동은 120시간을 사용할 수 있는데 장애아동은 1급만, 그것도 최대 50시간만 지원하고 있습니다."

장애인 사이의 형평성 문제도 있지만 윤씨가 정작 화가 나는 것은 비장애 아동과 장애 아동사이의 정부 지원 형평성 문제다. 장애 아동을 키우기 위해서는 없는 살림이더라도 집과 차는 꼭 갖춰야 하는데 집과 차가 있으면 저소득층으로 분류되지 않아 정부 지원을 받기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국가라면 옆에 도와주는 사람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장애 아동을 더 챙겨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라고 말하는 윤씨. 실제로 작년 청소년위원회가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장애 청소년이 비장애 청소년보다 자살시도나 자해행위를 한 경험이 1.5배 많은 것으로 나타나 장애 아동에게 보다 큰 관심이 필요한 상황이다.

밀려있는 예약 때문에 신청 후 2년 지나야 치료 한번 받아

 충남장애부모회장 박성기씨
충남장애부모회장 박성기씨 ⓒ 김동환
장애 아동 재활치료서비스도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다. 현재 전국에 있는 18세 미만 지적장애, 자폐성 장애를 가지고 있는 장애아동의 수는 10만여 명. 이 중 당장 치료를 필요로 하는 숫자는 최소 6만 명에 달한다.

그러나 현재 각 지자체별로 시행하고 있는 장애 아동 재활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인원은 전국에 총 5600여 명뿐. 지역에 따라 저렴하게 재활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복지관이 있지만 밀려있는 예약 때문에 신청하고 2년 후에나 치료를 한번 받을 수 있다.

사정이 이러니 치료를 받기 위해 장애 아동의 부모들은 사설 치료실을 찾을 수밖에 없고, 한달에 적게는 30만 원, 많게는 100만 원 이상을 고스란히 부담하게 되는 것이다. 지적장애, 자폐성 장애 아동을 치료하는 데 드는 치료비는 시간당 3만 원에서 7만 원 사이. 국립특수교육원의 자료에 의하면 대도시의 치료비가 지방에 비해 2배 가량 비싸며 장애 아동이 있는 가구는 월 평균 55만 원의 치료비를 지출하고 있다.

서울의 경우 지적장애, 자폐성 장애 치료비가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으로 30분 치료에 3만원에서 5만원 사이다. 그러나 정작 서울시는 이에 대해 전혀 보조를 하지 않고 있다. 발달장애 2급인 중학교 1학년 자녀를 두고 있는 김혜미(44)씨는 "한달에 120~150만 원 가량을 치료비로 쓰지만 서울시에 살고 있기 때문에 국가의 지원보조를 받아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장애 아동의 재활치료의 경우, 이처럼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국가보조의 필요성은 절실한 수준이다. 저소득층 가정의 경우, 가정 형편 때문에 장애 재활치료를 한번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국립특수교육원의 설문조사에 의하면 국가지원에 의해 장애 아동 재활치료서비스를 받은 1080명 중 40%가 "태어나서 한번도 장애 치료를 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기획재정부는 장애아동·가족 지원 명목으로 요구한 241억 중 11억 원만 을 책정한 상태입니다. 우리가 보건복지가족부를 통해 다시 326억 원을 추가 요구했어요. 보건복지가족부 예산에 대한 확답을 받을 때까지 우리는 단식을 계속할 거예요."

 인권위원회 7층에서 단식 농성중인 장애인 부모들
인권위원회 7층에서 단식 농성중인 장애인 부모들 ⓒ 김동환

충남장애인부모회장 박성희씨는 "현재 5600가구에 20만 원씩 바우처 형식으로 장애 치료비가 지원되지만 우리가 요구한 요구안이 받아들여지면 1만8000여 가구가 매달 20만 원씩 장애 치료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현재는 지자체 위주로 장애 치료비를 지원하기 때문에 지역에 따라 받을 수 있는 혜택의 차가 심하다. 경남과 경기도에는 시군별로 공립치료센터가 있지만 강원도는 전체적으로 공립치료센터가 아예 없는 상황. 이는 현재 보건복지가족부에 관련 예산이 별도항목으로 고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측은 장애 아동 재활치료서비스가 고정 항목을 가진 예산으로 처리되게 되면 장애 치료비 지원이 전국적으로 비교적 고르게 확대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걸 하면서 느끼는 거는 우리가 꼭 한 만큼만 주더라고요. 정책이 어쩌고 아무리 떠들어봐도 소용없어요. 꼭 우리가 한 만큼만 줍디다. 그 사람들에게는 돈 몇푼 늘어나고 줄어드는 건지 모르겠지만 우리에겐 그 돈이 곧 삶이에요."

[취재후기] 10일 만에 단식 풀었지만...
인권위원회 7층을 점거한 장애인 5명(김수미, 길희진, 안명훈, 최강민, 박길연)과 장애 아동 부모 2명(윤종술, 박성희). 물과 효소, 소금만으로 버티던 그들은 인터뷰 3일 후인 13일 오후 광화문에서 전국의 장애인, 장애인 부모 500명과 함께 점거 농성을 하고 10일 만에 단식을 풀었다.

이들의 10일 단식은 얼마 정도의 정부 지원 예산으로 바뀌어서 이들에게 되돌아오게 될까. 그들이 단식하는 10일 동안, 그들의 이야기를 대중에게 전해 준 언론 매체의 수는 한손에 꼽힐 정도다. 장애인은 말하지만 우리 사회는 듣지 않는다.

13일 광화문에서 진행하던 농성을 풀고 인권위원회 건물 앞에서 그동안 했던 단식 농성을 정리하는 집회를 하는 과정에서 경남에서 올라온 1급 장애인 최진기씨와 활동보조인 한수빈(33)씨가 전경 방패에 맞아 병원으로 후송됐다. 여성과 장애인. 특히 최진기씨는 한쪽 광대뼈가 골절, 함몰되어 정밀 수술을 요하는 중상이다. 단식이 끝났지만 장애인을 향한 우리 사회의 배려는 여전히 야박하다. 사회의 무관심을 향한 그들의 싸움은 이제 시작이다.

"동반 자살이요? 진짜 지금 내가 하고 싶다니까"
[인터뷰] 인권위원회 7층에서 단식중인 장애인 부모 최준기씨
장애 아동을 둔 가정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가족 동반자살이다. 지난 5년간 15가족, 작년부터 지금까지 6가족이 동반 자살했다. 장애 아동을 가진 가정은 왜 동반자살을 할까. 지난 10일 1일 동조 단식에 참여한 경남사천장애인부모회장 최준기(44)씨를 만났다.

-  장애인이나 장애인 부모들이 자살을 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모든 장애인 자살에는 경제적인 요소가 반드시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비장애 아동이 6학년. 장애 아동이 중학교 2학년이에요. 제가 개인사업을 하다가 중간에 갑자기 사업을 못하게 되었어요. 못하게 되면서 설상가상으로 우리 애기 엄마가 암에 걸렸어요. 집에 장애 아동이 하나 있는데 나 혼자 감당하기 힘이 들죠."

-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어떻게 하긴 내가 뭘 어떻게 하겠습니까. 어떻게 살겠어요. 돈이 있어야 비장애 아동이든 장애 아동이든 어떻게 할 텐데. 돈을 벌 수가 없잖아요, 돈을. 왜냐면 한 사람은 장애 아동을 돌봐야 하니까. 문제는 부부 중에 한사람만 아파서 누우면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거예요. 이게 국가에서 좀 책임을 져 줘야 하는데 모든 책임이 다 나한테 왔잖아요."

- 그럼 경제활동은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면 50만원 나오니까 밀가루라도 먹으면서 살겠는데. 기초생활 수급도 안되요. 집이 있고 차가 있잖아요. 근데 집이 밥 먹여줍니까. 차가 밥 먹여줍니까. 아니잖아요. 미안하지만 기초생활 수급자가 아니면 단돈 10원도 안나오거든요. 장애 1급 중증장애 수당이 13만 원인가 나와요. 지체장애인은 1급도 잘 안 줘요.

어디서 무엇을 가지고 살라는 거예요? 장애 아동을 만날 골방에 개처럼 넣어 놓고 문 잠그고 내가 돈벌러 다닐까요? 현실적으로 그게 안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현재 내 상황이 그래요. 그래서 내가 지금 경남에서 국가보고 책임 좀 져 달라고 올라와 있거든요. 그런 상황입니다."

- 그럼 국가에서 장애가족 지원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현실적으로 책상 앞에서 장애복지 하는 거는 현실이랑 하나도 안 맞아요 지금. 장애 유형별로 지체장애냐, 자폐성 장애냐 하는 분류를 가지고 가정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해줘야지요. 조금 더 열 받으면 제가 지금 창 밖으로 뛰어 내리겠어요.

아내가 암에 걸려서 못 일어나는데 장애 있는 애는 그걸 모르니까 지 엄마 안 일어난다고 혼자 자해행위를 해서 눈두덩 깨지고 온몸에 멍이 시퍼렇게 들어요. 그애가 덩치는 우리 기자님만 해요. 도대체 내가 뭘 어떻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내가 진짜 하고싶다니까 동반자살. 내가 지금 뛰어 내려서 이게 제도가 생기면 내가 뛰어내린다니까 진짜."

덧붙이는 글 | 김동환 기자는 <오마이뉴스> 8기 대학생 인턴기자 입니다.



#장애인 부모 #장애가족지원#단식#장애인#활동보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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