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웬걸 이렇게 많이 해가지고 왔어?" "많긴, 멀리 이사 왔으니깐 몇번은 먹을 수 있어야지." "멀긴 뭐가 멀어." "오늘 저녁 사먹지 말고 밥만 해서 이거 하고 먹어라." "알았어 엄마."
며칠전 고구마순을 볶던 중 딸아이가 생각났다.
고구마순 볶은 것을 참 좋아하고 이거 한가지만 가지고도 밥 한 그릇 뚝딱 먹던 아이인데. 고구마순을 볶다가 조금 남겨 놓은 것을 모두 볶아냈다. 딸아이 생각이 난 김에 딸아이가 좋아하는 반찬들을 해다 주기로 마음먹었다. 같은 아파트에 살다가 손자녀석 학교 들어 가기 전에 다시 이사한 딸아이 집은 우리집에서 15~20분 거리. 가까이 살 때는 반찬할 때마다 조금씩 갖다 주기도 했는데 조금 멀리가니 그것도 요원하다. 나물도 금세 볶아서 먹어야 더 맛이 있는데.
호박쌈도 찜통에 찌고, 가지도 쪄서 무쳤다. 냉장고를 열어 보니 사다놓은 애느타리 버섯도 보인다. 살짝 데쳐서 볶아냈다. 호박, 깻잎도 반찬으로 만들었다. 호박쌈은 큰 손자 임신중 입덧 때문에 밥을 못먹을 때 그나마 그것으로 입맛을 되찾기도 했던 반찬이기도 하다.
큰손자가 내년이면 초등학교 입학을 한다. 그러기 전에 배워야 할 것이 많다면서 영어유치원으로 옮기고 피아노도 배우러 다닌다. 거기에 몸이 건강해야 한다면서 태권도도 다니니깐 딸아이도 시간에 늘 쫓기곤 한다. 또 작은 손자도 돌봐야 하니 아무래도 외식을 자주 하게 된다.
맞벌이를 하면서 아이가 조금 자라면 괜찮아지겠지 하는 생각을 했지만 그렇지가 않다. 아예 중고등학교를 다닐 나이라면 자기 일은 지들이 알아서 하겠지만 지금은 갓난아기 때보다 오히려 엄마 손이 더많이 가는 시기인 것이다. 갓난아기 때는 먹여주고, 기저귀 갈아주고, 재워주고, 가끔 놀아주면 되었다.
하지만 조금 자라 초등학교에 들어갈 시기가 되니깐 글을 익혀야 하고, 사회적응 훈련도 시켜야 하고, 유치원이나 학원에서 열리는 행사에 참석도 해야 한다. 또 그 또래 친구엄마들을 만나 친목을 나누고 교육에 대한 정보도 교환해야 한다. 큰손자 나이에 맞게 영화나 연극도 가야 하고 놀이동산, 수영장에도 데리고 다녀야 하니 딸아이가 살림에 신경쓸 시간도 없고, 집에서 이것 저것 반찬을 만들어서 밥을 해먹는다는 것은 큰 마음을 먹어야 할 지경인 것이다.
그나마 일찍 퇴근하지 않았다면 그 정도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만약 조기퇴근제를 하지 않았다면 직장을 그만 두든지, 아이의 교육, 둘 중에 한 가지는 포기해야 할 형편에 놓인 것다. 이러니 요즘 사람들이 결혼생각이 아예 없거나, 결혼을 해도 애를 낳지 않으려고 하는가 보다. 그런 마음을 딸아이가 사는 모습을 통해서 더욱 이해하게 되었다.
아무튼 딸아이 자신의 사생활은 거의 없으면서도 너무나 바쁜 딸아이가 정말 안쓰러웠다. 이렇게 하루 종일 동분서주 바쁘게 보내다 저녁 무렵이 되면 몸이 천근만근 피곤할 것이다. 언젠가 내가 "그것이 네 자식 일이니깐 누가 시키지 않아도 힘든 줄 모르고 하지. 다른일 같으면 그렇게 못했을 거야" 하니 딸아이도 "아마 그럴 거야" 했었다. 그러다 딸아이가 몸살이라도 나지 않을까 내심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날 저녁 딸아이한테서 전화가 왔다. "엄마 뭐처럼 집밥을 맛있게 먹었네. 금세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것 같아. 호박에 새우젖 넣고 볶은 것은 아이들이 어찌나 잘 먹던지. 우진 아빠는 나물들 넣고 비빔밥 해서 먹었어. 엄마 고마워! 잘 먹었어." "고맙기는 네가 잘 먹었다니 엄마 마음도 좋다."
"딸, 병나지 말고 네 건강도 잘 챙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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