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리 알려진 명성만큼 백범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백범일지>의 일지가 일기처럼 날마다 적은 기록을 의미하는 일지(日誌)가 아니라, 숨겨진 기록이란 의미의 일지(逸志)라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처럼.
지금까지 전해지는 <백범일지>는 크게 네 가지 종류다. 김구 선생이 1929년, 1942년에 탈고한 친필본 상, 하권과 그것을 옮겨 적은 필사본 2 종류, 그리고 1947년에 공식적으로 발표된 국사원본이 그것이다. 이들을 바탕으로 번역본도 여러 군데서 출간되었다. 그러나 돌베개에서 출간된 것을 제외하고 대부분 단순 번역본에 머물렀다.
돌베개본이 출간된 지 10년이 넘었고 백범에 대한 새로운 연구 성과가 축적되면서 기존의 돌베개본에서 나타나는 잘못 해석된 부분, 설명이 미흡한 부분이 적지 않다는 문제의식 속에서 배경식은 <백범일지>를 새롭게 적극적으로 해석해 <올바르게 풀어쓴 백범일지>를 세상에 내놓았다.
성찰과 도전으로 탄생시킨 '백범학 시리즈'의 첫 번째 성과
<올바르게 풀어쓴 백범일지>를 준비하면서 필자가 내세운 원칙은 두 가지다. 첫째, 백범의 좋은 점이나 긍정적인 면만을 부각시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백범의 모습을 올바르게 풀어쓰고자 노력하자는 것, 둘째, 자신의 허물을 숨기지 않고 세상의 비판을 달게 받겠다는 백범의 비판정신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실패로 점철된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자식들에게 들려주면서, 자신의 실패를 교훈삼아 동일한 과오를 범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백범일지>를 쓴 백범의 정신이듯이, 균형 잡힌 백범 연구의 출발점이 되기 위해 이 책을 출간한다고 밝힌다.
이 책을 출간하면서 필자는 10년 전의 기억을 떠올린다. 능내의 다산묘 근처에서 동료들과 함께 했던 아름다운 여름밤에서 "역사를 위한 전투"라는 명제를 제시했던 기억. 그 기억으로부터 1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필자는 그 전투의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았다.
'성찰과 도전'을 바탕으로 "역사를 위한 전투"의 첫 결과물을 내보내면서 필자는 새로운 선언도 잊지 않는다. '백범학 시리즈'의 완성을 위해 또 다른 전투를 시작할 때가 되었다는 선언이다.
원문에 충실, 행간의 의미까지 분석
이 책은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을 하면서도 58편의 깊이읽기와 132개의 해설을 통해 <백범일지>의 행간에 숨은 의미까지도 철저하게 분석하고 있다. 단지 백범이 남긴 기록을 번역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록과 시대적 상황을 면밀히 비교 분석하면서 역사적 진실에 접근하고 있다. 그 사례 하나를 소개해본다.
백범이 광개토왕비를 비롯하여 장군총 등 수많은 고구려 유적들이 몰려 있는 고구려 수도 집안 일대를 여행하면서도 고구려사에 대해서 아무런 언급이 없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유득공의 <발해고>에서 나타나는 18세기 이후 실학파 지식인들의 만주와 고구려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백범과 같이 화서학파 문하에서 교육받은 사람에게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백범이 만주를 여행했을 때는 만주에 파견된 일본 관동군 첩자에 의해 이미 광개토왕비가 발견된 뒤였으나, 그러한 사실이 아직 한국인에게는 알려지지 않았다.(깊이읽기, '백범은 광개토왕비를 몰랐다' 중에서)
백범이 스승으로 모셨던 고능선은 유중교의 제자이자 유인석의 동문으로 해서 지방의 손꼽히는 학자였다. 성리학에 바탕을 둔 위정척사 학자로서 중국 중심의 중화사상에 충실했기 때문에 고구려나 발해 역사를 강조하던 실학파의 입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런 영향을 받은 백범이 고구려 유적지에 관심이 없었던 게 당연하다고 분석한다.
하지만 백범은 후일 스승 고능선과 사상논쟁을 벌일 정도로 성리학적 관념을 뛰어넘는다. 성리학적 질서를 지키고 신분질서를 지키려는 성리학 사상이 되레 학문과 도덕을 무기로 백성을 괴롭히는 탐관오리와 토호를 두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백성의 고혈을 짜내어 외세에게 바치는 무리들도 학문과 도덕을 앞세운 무리들이라고 비판하면서 진정 나라를 구하는 길은 성리학적 관념을 극복하는 길임을 강조했다.
다시 백범이 그리운 이유
올해처럼 8월 15일을 불편하게 맞았던 때도 없다. 광복의 의미보다 건국의 의미가 더 중하다는 이들이 경복궁 앞에서 성대한 건국 행사를 열고 방송국에서도 장단 맞추어 건국 60주년의 의미를 강조하는 호화찬란한 프로그램을 방영하는 걸 보면서 정말 마음이 불편하다.
완전한 자주독립국가를 세우는 게 평생의 꿈이라던 백범이 다시 그리워진다. 서로 머리가 되기 위해 헤게모니 싸움을 일삼지 말고, 자신을 낮추어 발이 되기 위해 노력해달라고 호소했던 백범, 모름지기 청년들은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가 되어달라고 강조했던 그분이 다시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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