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메지성, 일본 문화재 보호 위한 노력의 결과물
1993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일본 효고현의 히메지시에 위치한 히메지성(姫路城, ひめじじょう). 하얗게 칠해져 있는 외형으로 유명한 성이기도 한 히메지성은 그 역사 또한 오래됐다.
일본 내 마쓰모토, 이누야마, 히코네성과 함께 천수각이 국보로 지정돼 있고, 에도시대 이전에 이미 건조됐다. 특히 성이 축성된 이후 여러 차례 전쟁의 위협 속에서도 파괴되지 않고 살아남았다. 대천수, 소천수, 와타리 망루 등 8개 동이 국보로 지정됐고, 담과 문, 망루 등 74개 동이 중요문화재로 등록돼 있다.
히메지성은 1346년 남북조시대에 축성됐다는 설과 16세기 전반에 구로다 시게타가 조다이로 하리마성에 입성할 때 축성됐을 것이라는 설이 있다. 물론 일본의 대부분의 학자들은 시기적으로 앞서는 전자의 설을 더 신뢰하고 있다.
수 차례 해체위기를 맞은 히메지성
이 성이 세워진 지역은 그 지반이 튼튼하지 못하다. 그래서 이미 에도시대(1603년~1867년)부터 지반이 내려앉는 현상이 발생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기술로는 천수의 무게를 못 이겨 지반이 침하되는 것을 보고만 있었고, 기둥과 들보 등의 변형도 심했다.
일본 민요인 '동쪽으로 기운 히메지의 성은 꽃 같은 에도가 그리운가'라는 노래에서도 그 역사를 읽을 수 있다. 이후 막부 말기에 도바와 후시미 사이에 포탄과 총탄이 오가는 전투가 있었고, 1871년 메이지 시대 4년에 반포된 페번치현(메이지 유신 시기인 1871년 8월 29일에, 이전까지 지방 통치를 담당하였던 번을 폐지하고, 지방통치기관을 중앙정부가 통제하는 부(府)와 현(縣)으로 일원화한 행정개혁)과 2년 후 단행된 폐성령(廢城令)에 따라 많은 성들이 개인에게 팔리거나 해체되는 위기를 겪는다.
그 때 히메지성 또한 경매에 붙여지는데 요네다에 거주하는 한 사람이 성을 해체해 기와를 팔 목적으로 23엔50전에 낙찰 받았다. 그러나 이후 해체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이유로 해체공사가 지지부진하다가 성에 대한 권리가 소멸되기도 했다.
지역민들 노력으로 복구성공
연약한 지반으로 내려앉는 천수각과 일본 내전의 요새로의 활용, 그리고 근대화에 따른 정부의 폐성 정책으로 히메지 성의 붕괴는 예견돼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 성을 지켜낸 것은 지역주민들의 힘이었다.
복구 및 보존에 드는 비용을 부담하기로 했던 일본 육군이 예산 때문에 긴급한 수리만 한 채 손을 놓았다. 이후 이를 지켜볼 수만 없었던 지역 유지들이 중의원에 진정서를 제출했고 중의원에서는 각고의 노력 끝에 이를 수용해 1910년(메이지 43년) 국고 보조금 9만3천엔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이것이 '메이지 대수리'다. 하지만 이미 기울어진 천수를 수리하는 데는 비용이 부족했고, 천수가 기울어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고 한다.
이후 1928년 쇼와3년에 사적으로 지정되면서 문부성 소관으로 이관된 히메지성은 천수각과 망루 등이 국보로 지정됐고, 1934년 와타리 망루가 호우에 붕괴된 것을 계기로 대대적인 보수공사에 돌입하게 되는데, 이것이 '쇼와대수리'다.
쇼와대수리는 건물을 한번 해체한 다음 다시 조립하는 방식이었다. 먼저 천수 이외의 건물을 손봤지만, 1944년(쇼와 19년) 태평양 전쟁 때문에 중단됐다. 1950년(쇼와 25년) 대수리는 재개됐고, 1955년(쇼와 30년) 천수를 제외한 모든 건물의 수리가 완료됐다.
이후 천수의 수리에 맞춰 기와의 중량을 낮추고 내진을 강화하기 위해 금속제를 새롭게 사용하는 등 석벽을 제외한 나머지 전반에 대한 내구성강화 공사를 벌였는데, 이 천수의 수리가 완료된 것이 1964년이다. 따라서 1910년 '메이지 대수리'를 시작으로 '쇼와 대수리'가 완전히 끝나는 1964년까지 무려 54년의 보수공사 기간을 거치면서 히메지성은 그야말로 '부전의 성'이라는 명성을 얻게됐다. 앞서 밝힌 대로 이로써 히메지성은 1993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고, 지난 2006년 4월 6일 일본 100대 명성에 선정됐다.
히메지성은 태평양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당하지 않으면서 '부전의 성(不戦の城)'이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고 한다. 성의 외벽이 백색으로 적군의 눈에 잘 띄고 육군부대가 성내에 주둔하고 있어서 언제 미군의 폭탄세례가 퍼부을지 모를 위험에 처했지만, 일본군은 이 큰 성에 검게 칠해진 망을 씌워 공습을 모면했다고 한다. 히메지의 보존에 대한 일본인의 노력은 가히 눈물겹다고 할 수 있다. 문화재로서의 가치와 그 문화재를 보존하고 지켜내려는 그들의 노력만큼은 본받을 만하다.
일본 정부는 오는 2009년에 약 10억 엔의 예산을 투입해 다시 한 번 히메지성에 대한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성 내부 목재의 부식이 진행됨에 따라 대천수의 옷칠과 기와 교체, 내진성 보강에 중점을 둘 예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보수작업 중에도 관광객들의 출입은 막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일본 문화재 보호 본받을 만 해
안타까운 숭례문 화재로 인해 전 국민이 낙심한 지 벌써 8개월이 지나고 있다. 문화재청은 총 250억 원을 들여 2012년까지 일제에 의해 훼손되기 이전의 모습으로 복원을 마무리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건무 문화재청장은 지난 5월 "숭례문 석축과 문루 1층 대부분이 남아있기 때문에 생각보다 복원이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부실공사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우선이다.
우리나라 숭례문과 일본의 히메지성은 축성연대가 비슷하다. 숭례문은 1396년 조선 태조 5년에 축성된 한성부 도성의 남쪽 대문으로 사신을 맞아들이던 문이었다가 2년 후인 1398년 2월에 준공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후 1447년 세종 29년 8월에 새로 지었다는 기록이 <세종실록>에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이 때 현재 모습을 갖추게 된 듯하다. 히메지 성 또한 1346년에 축성됐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 양국의 대표적 문화재를 보호하려는 노력엔 차이가 있어 보인다. 평소 허술한 관리로 대한민국의 국보 1호인 숭례문은 그 형체를 잃어 버릴 정도로 훼손됐고, 히메지성은 전쟁의 폭격과 지진, 호우로 인한 연약한 지반 등 총체적인 약점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지켜졌다.
일본을 본받자는 주장이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어쩌겠는가. 자기네 역사와 문화를 지켜내려는 노력은 본받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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