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는 어떤 곳일까. 감사하게도 시간이 주어져서 설악산 산행을 계획하게 되었고, 설악산 가고 오는 길에 강원도에 가볼 만한 명소들을 지도와 인터넷 등을 토대로 검색하고 계획하면서 강원도 여러 명소 가운데 몇몇 곳을 둘러볼 수 있게 됐다.
지도상으로 보아도 경남 양산과 강원도 속초는 끝에서 끝에 위치해 있고 까마득히 먼 거리이다. 휴전선이 가까운 강원도, 산과 바다, 강, 계곡, 호수 등 자연의 신비로움을 그대로 간직한 강원도를 만났다. 설악산 등반을 하면서 3박 4일 동안 강원도 속초에 머물렀고, 거꾸로 내려오면서 강릉, 평창군 등 일대의 명소들을 찾았다.
연인들의 바다, 정동진에서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참 먼 길을 거슬러 왔다. 속초여 이제 안녕, 언제 또 다시 만날 날이 있겠지, 속초를 벗어나기 전, 속초 시내에 있는 영랑호를 둘러보고 속초 앞바다를 이별했다. 이제 우린 강릉으로 간다.
빗길 운전이다. 비는 오다 그치고 또 쏟아지기를 반복한다. 하, 수상한 날들이다. 오후 1시 8분, 헌남 IC를 지난다. 구정휴게소에서 잠시 휴식하고 동해고속도로를 벗어나 남강릉 IC로 진입한다. '전방 300미터 신호대에서 좌회전, 17킬로미터 더 가면 된다'고 말하는 톨게이트 직원의 앵무새 같은 말을 듣고 간다. 다시 비가 쏟아진다. 빗길은 장난이 아니다.
불어난 빗물에 물웅덩이 곳곳에 있고 미끄러질 듯 아슬아슬하게 빗속을 계속 간다. 정동진. 언젠가 한 번은 꼭 와보고 싶었던 곳, 한때는 정동진 바닷가에 오고 싶어 여행 기사들을 살펴보며 여행을 마음 속으로 수없이 계획해 보기도 했던 곳이다. 짓누르는 삶의 무게가 버겁게 느껴져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 훌훌 털어버리고 혼자서라도 와 보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몸도 마음도 쉼을 얻고 싶을 때, 그럴 때 참 정동진 바다가 그리웠다. 그때, 찬물 끼얹듯 급제동을 걸어오는 이가 있었으니, 지금은 저 멀리 이국땅에서 살고 있는 막내 여동생의 한마디 말,
"언니! 거긴 모두 연인들이 손잡고 찾는 곳인데, 혼자 가면 좀 뻘줌 할 걸~"
"뭐~ 어때!"
이렇게 큰소리 쳤건만, 내가 사는 부산에선 거리도 만만찮은 데다가 낯선 곳으로의 여행에 대한 용기를 동생의 한 마디가 기를 꺾어 시들해지고 말았다. 그렇게 간절하게 오고 싶었던 적이 있었던 정동진 바다였건만,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그리고 전혀 생각지 않은 때 우연처럼 정동진에 오게 되었다. 아슬아슬하게 빗길에 위험한 국도를 계속 따라간다. 얼마쯤 갔을까. 바로 옆에 드넓게 펼쳐진 바다를 끼고 달린다.
무슨 일인가. 태풍주의보라도 내린 것일까. 강릉과 정동진을 잇는 해안도로를 가는 동안 앞을 가리는 폭우는 그 기세가 대단하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겨우 흐린 하늘, 흐린 바다빛이 조망된다. 오후 2시 20분 정동진에 도착한다. 쏟아지는 비속에 정동진 바다가 보인다. 드라마 <모래시계>의 촬영지가 있는 정동진역과 해수욕장 가운데에 있는 굴다리 아래로 흙탕물이 범람해 있다. 도착 후 10분이나 지났을까.
쏟아지던 비 그치고 하늘은 약간 흐리다. 변덕도 많은 날씨다. 거의 일주일 내내 이런 날의 연속이라니, 정동진 역은 오래 전에 드라마 <모래시계>로 더 유명해진 곳이다. 전국에서 바다와 가장 가깝다는 정동진역, 철길과 해변, 그리고 해송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장소로 이젠 하나의 명소가 되었다. 기대했던 것보다는 아주 소박한 곳이지만 어쨌든 한 번쯤은 꼭 와보고 싶었던 이곳에 잠시 와서 정동진 바다를 만나게 되어 기쁘다.
정동진역 안을 들어가 보려면 500원을 내고 표를 끊는다. 철길과 바다를 배경으로 그 가운데 길게 도열해 있는 해송들, 그 중에 <모래시계> 여주인공 고현정이 서 있었던 '모래시계 소나무'가 있다. 한때 <모래시계>는 직장인과 가장들의 귀가시간이었다. <모래시계>가 방영되는 시간이 되면 골목골목마다 한산해졌을 정도로 전 국민을 사로잡았던 드라마였다.
젊은 연인들이 특히 많이 찾아 연인들의 바라도 알려진 정동진 바다. 날씨가 흐리고 비가 오지 않았다면 더 푸르고 맑은 정동진 바다를 거닐 수 있을 텐데, 아쉬움으로 남는다. 정동진 바다를 뒤로 하고 다시 길을 떠난다.
바다
- 이원섭
나로 하여금 너와 함께 있게 하라
끝없이 짙은 네 외로움 속에
지나가는 기러기가 흘리고 간
핏방울처럼 꺼지게 하라
임께서 나를 찾아오시는 날은
네 치맛자락 안에 얼굴을 묻고
슬픈 노래 부르듯 타신 뱃전에
고요히 고요히 바서지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