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참으로 거리가 멀다는 생각을 하고 또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예술가의 방>(서해문집 펴냄)의 저자인 아나운서 김지은이 소개한 10명의 현대미술작가 중 이름을 들어본 이는 윤석남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윤석남에 대해서 잘 아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이름을 들어본 정도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이 책, 낯설게 읽히지 않았다. 현대미술에 관해서 문외한이므로 지루하고 재미없고 딱딱할지도 모르겠다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읽으면서 그런 생각은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김지은의 만만치 않은 글솜씨와 김수자의 깔끔한 일러스트 덕분에 책은 부담 없이 읽혔고, 그림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그림이 글보다 빠르게 와 닿는다는 사실,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하지만 마지막 장을 덮고 나자 갑자기 막막해졌다. 이 책, 이 사람들,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머릿속에 생각은 어지럽게 날아다니는데 정리가 안 되는 것이었다. 아나운서 김지은의 안내로 10명의 현대미술작가의 방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 그 속을 낱낱이 들여다봤으면 그 소감이 어떤지 줄줄 나와 줘야 하는데 말문이 막힌 것처럼 글문도 함께 막혀 버렸다.
해서 이 책, 다시 찬찬히 읽었다. 이들 작가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했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현대미술과 작가에 대해 잘 모르면서 이 책에 관한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쓰는 것 또한 저자와 이 책에 등장하는 10명의 현대미술작가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도 더불어 했다.
참 신기한 것은 두 번째 읽는 데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읽는 재미가 새록새록 났다는 것이다. 처음 읽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안개가 걷힌 것처럼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고나 할까. 그렇다고 해서 이들 작가를 제대로 이해하거나 알게 되었다고 '뻥'을 치고 싶지는 않다. 그저 조금이나마 이들의 작품세계에 접근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아나운서 김지은이 현재 주목받고 있는 현대미술작가 10인을 만났다. 그냥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들은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작품이 품어지고 태어나는 그들의 '은밀한 방'으로 찾아가 그 속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끄집어냈다.
작가들의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기만 한다고 속살 깊은 이야기들이 저절로 줄줄 딸려 나오는 것은 아니니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저자는 그 작업을 무난하게 해냈다.
저자는 이들 작가들의 방에서 그들의 작품세계만을 조망한 것은 아니다. 그들이 어떤 고민을 하는지, 그들의 작품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지, 그들이 어떤 한계를 느끼는지,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세세하게 전하고 있다. 결코 톤을 높이지 않으면서 차분하게 전하는 그들의 이야기는 때로는 감동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가슴 아프게 다가오기도 하고, 때로는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게다가 10명의 작가들이 어쩌면 그렇게 추구하는 작품세계나 그것을 구현하는 방법이 다른지 그저 회화나 조각 위주로 미술을 바라보았던 '평범한 시각'을 교정하게 하는 역할도 해준다. 그러면서 우리 시대에 미술이란 무엇이며, 미술작가란 어떤 의미를 가진 사람들인가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하는 기회를 갖게 한다. 너무 무겁지도, 너무 가볍지도 않게. 적어도 나는 그랬다.
김지은이 만난 작가는 이동재, 권기수, 윤석남, 김동범, 김준, 배준성, 데비한, 이영섭, 손동현, 배종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