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달천의 다리를 건너자 녹슨 양철지붕의 방앗간이 쓸쓸하다. 지붕은 해풍에 뜯겨나가고 바람벽도 뻥 뚫렸다. 숱한 세월이 녹으로 흘러 내렸다. 92번 시내버스가 비상등을 깜박이며 달천교를 지나간다. 선창에서 손님 둘이 내린다.
마음이 울적해서 찾아든 섬달천. 흐린 하늘에 바람이 세차다. 아직 매미는 여름을 노래하고 있다. 섬달천 표지석이 있는 곳에서 마을길을 버리고 해안로를 따라갔다. 텅 빈 방앗간 앞을 지나간 것이다. 인적이 없는 호젓한 길이다.
코스모스 한들거리는 섬달천의 바닷가
앙상한 방앗간의 자투리땅에는 코스모스가 무심하게 한들거린다. '콰르릉~ 콰르릉~' 천둥소리가 들려온다. 갑자기 빗줄기가 굵어진다. 천둥소리에 놀란 섬달천의 바다는 쿨렁쿨렁 울먹인다. 해안도로는 산자락을 따라 굽이친다. 낚시꾼이 후줄근하게 젖은 채로 바다를 응시하고 있다.
길은 끊어질 듯하면서 다시 이어진다. 산자락 앞에서 막다른 길에 이르렀다. 차는 멈춰 섰다. 산자락으로 가는 길은 오솔길이다. 갯가에는 백로 한 마리 외롭다. 비는 더욱 거세졌다. 차 지붕에 빗줄기가 후두두둑 내리친다. 후텁지근한 날씨는 숨이 막힐 지경이다.
빗줄기가 잦아들자 차는 뒷걸음질 쳤다. 오던 길을 되돌아 나온 것이다. 차를 세우고 주변을 살폈다. 한바탕 소나기가 훑고 지나간 세상은 맑고 깨끗하다. 이슬을 잔뜩 머금은 칡넝쿨에서 노랑나비 한 쌍이 춤을 춘다.
산자락 구릉에는 누렁이 암소가 풀을 뜯고 있다. 암소가 움직일 때마다 백로 대여섯 마리가 쪼르르 따라간다. 암소와 백로는 그렇게 사이좋게 풀밭에서 노닐고 있다. 백로는 암소의 주변을 맴돌면서 몇 시간을 그렇게 지내고 있다.
비가 그쳤다. 하늘에는 고추잠자리 예쁘게 수놓고 섬달천 바다 수면에는 은빛을 반짝이며 이름 모를 고기들이 펄쩍펄쩍 뛰어오른다. 산 능선에 오르자 백로 한 무리가 날아오른다. 누렁이 암소는 그 광경을 멀뚱하니 바라보고 있다. 뒤편 해안가의 파도는 거칠게 소용돌이친다.
가을풀벌레 울음소리 가득한 섬달천
풀숲이다. 가을풀벌레 울음소리 가득하다. 숲에서는 가을 풀벌레들의 합창대회가 열리고 있다. 귀뚜라미, 여치, 쓰르라미… 아름다운 화음이다. 잿빛하늘은 어느새 또 얼굴을 찌푸린다. 금방이라도 비를 쏟아 부을 태세다. 바람도 거세다. 어디선가 또 천둥소리가 들려온다. 발길을 서둘러야겠다. 비 맞은 생쥐 꼴이 안 되려면.
강아지풀에는 나비 한 쌍이 은밀하게 사랑을 나누고 있다. 안개가 뒤덮인 바다는 희부옇다. 산밭울타리 거미줄에는 호랑나비 한 마리가 걸려들었다. 거미줄에 친친 감긴 채 날아가려고 발버둥이다.
거미 녀석은 쉬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어디에 숨었을까. 살펴보니 녀석이 대나무 통 속에 꼭꼭 숨어 있다. 왕거미다. 한참이 지나자 동료 호랑나비 한 마리가 날아왔다. 주변을 한 바퀴 맴돌다 어디론가 사라져간다.
"호랑나비야 날아봐. 하늘높이 날아봐."하필이면 이때 호랑나비 노래가 떠오를 게 뭐람. 그래, 호랑나비야 훨훨 하늘높이 날아보렴! 하지만 안타깝게도 호랑나비는 거미줄에 온몸이 되감겨 살 가망이 없어 보인다.
멀리 산자락을 보니 누렁이 암소 곁에는 어느새 백로 무리가 또 다시 날아와 있다. 소잔등에 백로 한 마리가 올라서 있다. 이들은 어찌된 영문인지 퍽이나 사이가 좋아 보인다.
돌아오는 길. 호랑나비 한 마리가 나풀대며 하늘높이 훨훨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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