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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ㄱ. 우리 나라 그림책

 

한국땅에 옮겨지는 나라밖 그림책이 80%가 넘는다느니 90%가 된다느니 하는 이야기는 아무런 뜻이 없습니다. 70%라고 해도 너무나 많으며, 50%도 아니고 40%라고 해도 어마어마하게 많은 '나라밖 어린이책'이 우리 줏대가 하나도 담기지 않은 채 돈만 바라보면서 나오는 셈입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아이들이 보라고 엮는다는 그림책 한 권 값이 무척 비쌉니다. 고작 열여섯 쪽 하는 그림책은 8000원쯤 하고, 서른두 쪽쯤 되면 1만 원 안팎입니다. 그러나, 이러저러한 책값은 책값이라고 치고, 오늘날 한국땅에 옮겨져 나오는 나라밖 그림책은 참말로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옮겨서 펴낼 만한 뜻이나 값이 있을까요?

 

돈 적은 집에서는 사서 볼 수도 없을 뿐더러, 도서관도 아주 적어서, 도서관에서는 사 주지도 않지만, 어쩌다가 도서관에서 사 준다고 해도, 이 책을 보려고 도서관 나들이를 하자면 몹시 힘든 우리 형편을 살펴봅니다. 우리 나라 도서관 가운데 어느 곳이, 느즈막하게 일을 마치는 여느 노동자들이 책 보러 갈 틈을 돌아본 적이 있던가요.

 

부자집은 부자집대로 한국 사회와 삶을 있는 그대로 살피지 못하도록 어릴 적부터, 나라밖 그림책, 알고 보면 서양 그림책에 길들어 버립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가난한 집은 가난한 집대로 한국 사회와 삶을 있는 그대로 담아낸 그림책이 거의 없기 때문에, 애써서 한두 권 그림책을 사 준다 한들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그림책을 펴내는 출판사에서 가난한 어버이들을 헤아리는 일이란 아직까지 한 번도 없는 줄로 압니다.

 

ㄴ. 51권이라는 책

 

문단에 어떤 힘이 있다고 할 수 있으나, 그렇게까지 큰힘을 낸다고 할 수 없는 어떤 분이 여태까지 51권에 이르는 책을 냈고, 앞으로 한 해 사이에 열 권을 더 낼 준비가 되었고, 오래지 않아 101권까지 책을 내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분을 훌륭하다고 보면 훌륭할 터이나, 나로서는 이 분 책을 여러 권 읽고 살피는 동안, 그다지 마음에 와닿는 이야기가 없었기 때문에 참으로 뜻밖이라고 여겼습니다.

 

쉰한 권이라는 숫자도 숫자이지만, 앞으로 백한 권을 넘어설 그분 책 숫자를 헤아리면서, 앞으로 쉰 해나 백 해쯤 지난 뒤, 이분 책이 몇 권이나 살아남아서 우리들한테 읽힐 수 있을까를 곱씹으면서 슬펐습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자라지 않는, 아니 자라지 못하는 어마어마한 나무가 베어지면서 이분 책에 들어갈 종이로 쓰여야 하기 때문에.

 

ㄷ. 잠을 깨우는 아기

 

신문사 지국에서 일하던 때, 작은 소리에도 곧잘 잠이 깨곤 했습니다. 작은 소리에 잠이 깨지 않으면 지국에 도둑이 들었고, 작은 소리에 깨어야 새벽녘 짐차에서 신문 부리는 소리를 알아채고 늦지 않게 신문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신문을 다 돌리고 나서 아침을 차릴 때에는, 지국 문을 살그머니 열고 신문 한 장 훔쳐가려는 '신문도둑'을 잡아내고자 작은 소리를 알아채야 했습니다.

 

이러다가 군대라는 곳에 끌려갔고, 잠다운 잠을 재우지 않는 한편 툭하면 깨워서 옷과 장비를 후다닥 채우도록 하는 일에 길들여집니다. 생각해 보면, 군대에서 새벽에 깨우거나 작은 소리에도 일어나도록 하는 일은, 신문사 지국에서 살던 저로서는 조금도 안 힘들었습니다. 외려 군대에서는 신문사 지국에서보다 훨씬 길고도 느긋하게 잘 수 있었고, '신문도둑 걱정'이 없으니 잠도 푹 잤습니다. 언제나 잠이 모자라서 푸석푸석한 얼굴이었던 다른 사람과 달리, 저는 새벽이건 밤이건 말짱했고 눈이 빛났습니다.

 

아기가 밤부터 끙 끄 끅 합니다. 무언가 꿈을 꾸고 있다는 뜻이거나, 쉬를 했거나 똥을 누어서 엉덩이가 축축하다는 뜻입니다. 자다가도 아기 소리에 퍼뜩 잠이 깨어 엉덩이 밑으로 손을 넣습니다. 촉촉함이 느껴지면 곧바로 기저귀를 빼냅니다. 바닥에 깐 기저귀도 만져 봅니다. 하루가 다르게 오줌 부피가 늘어납니다. 엉덩이에 댄 기저귀가 폭삭 젖습니다. 바닥에 깐 담요까지 젖기도 합니다. 담요를 날마다 여러 차례 빨 수는 없기에, 아기 오줌 퍼진 자리는 밑에 수건을 대고 위에서 다림질을 해서 말린 다음 부채질을 하며 식힙니다.

 

지난밤, 아기는 23시 12분에 처음으로 깹니다. 23시 42분까지 젖을 먹고 배냇짓을 하다가 겨우 잠듭니다. 저는 젖은 기저귀를 빨고 담가 놓은 뒤, 앞서 담가 놓은 기저귀를 헹구고 털어서 마루에 걸쳐 놓은 빨랫줄에 넙니다. 02시 54분, 끙 끄 끅 하는 소리를 듣고 엉덩이에 손을 넣습니다. 오줌입니다. 밤 12시부터 새벽 세 시가 되도록 모기를 잡느라 잠을 안 이루고 있었으니, 굳이 잠을 안 깨고도 아기 기저귀를 갈아 줍니다. 그리고 빨래.

 

아기는 잠이 든다 싶었으나 03시 38분에 다시 뒤척이며 젖을 먹겠다고 꽁알거립니다. 뒤이어 04시 44분에 오줌을 한 번 더 누고, 저도 빨래를 한 번 더 합니다. 이번에는 05시 03분에 일찌감치 잠듭니다. 그리고 05시 46분, 끙 하는 소리가 들려서 눈을 떠 보니 엉덩이 밑이 젖었습니다. 이리하여, 지난밤 사이, 꼭 43분을 자고 아기 기저귀를 네 차례 갈고, 기저귀 여덟 장과 배냇저고리 석 장을 빨았습니다.

 

빨래라 하면 어느 누구보다도 즐기고 있습니다만, 한두 시간에 한 차례씩 빨래를 하노라니 굳은살로 가득했던 손바닥에 겹으로 굳은살이 박힙니다. 빨래를 하며 손바닥이 아파 끙끙거리면서 물을 짜다가 생각합니다. 여태껏 내 손바닥에 박혀 있던 굳은살은 굳은살이 아니었어.

 

등허리가 끊어질 듯해서 자리에 앉아 책을 읽을 수 없고, 더더군다나 글을 쓸 수 없습니다. 엎드려서 책장을 조금 넘기다 보면 아기가 칭얼거리고, 옆지기 몸을 주물러야 하며, 빨랫감이 쌓입니다. 느긋한 틈을 내고 마음을 모을 수 있는 자리는 뒷간에 앉아서 똥을 눌 때.

 

가끔 등판을 벽에 붙이고 앉아서 옆지기와 아기 모습을 그림으로 스윽슥 그려 보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마당]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태그:#책읽기, #육아, #책문화, #그림책,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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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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