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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과 안치환

 

우연찮게도 이번 한국 방문은 촛불로 시작해서 촛불로 끝나게 되었다. 5월 초에 한국에 들어왔을 때는 서서히 촛불이 달아오르고 있었다. 6월과 7월은 촛불 현장에 함께 하면서 다양한 목소리와 퍼포먼스 그리고 노래를 보고 들었다. 그 곳에서 정말 오랫만에 안치환을 만났다. 그는 촛불에 관한 노래를 작곡해서 현장에서 부르기도 했다. 그 가운데 <삶이여 감사합니다>라는 곡을 이날 공연에서 다시 불렀다.

 

 혼자 부르는 노래 2
혼자 부르는 노래 2 ⓒ 류동협

<안치환의 혼자 부르는 노래 2> 공연이 덕수궁 옆 세실극장에서 열리고 있다. 22일, 첫 공연장을 찾았다. 촛불의 열기로 뜨거웠던 시청앞 광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감회가 새로웠다. 200여 석 규모의 소극장은 관객들로 가득찼다. 공연은 서서히 달아올라 지치지 않는 앙코르 공연으로 마무리됐다. 마치 촛불의 현장에서 가슴으로 느꼈던 뜨거움처럼 얼얼했다.

 

촛불 이야기가 나온 김에 몇 마디만 더 하자. 안치환이 부른 <삶이여 감사합니다>는 지난 6월 4일 <한겨레>에 실린 곽병찬 칼럼 <삶이여 감사합니다>에 영감을 받아 작곡한 노래다. 사실 이 칼럼에 영향을 받은 노래가 한 곡 더 있다. 노래마을 출신 가수 손병휘의 <삶에 감사해>다. 이날 공연에 초대가수로 손병휘가 나와서 이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젊은 벗들이여, 감사합니다. 그대는 일쑤 비장하고, 그래서 일쑤 주저앉는 우리에게 희망하는 법을 알게 하고, 서로 연대하고 의지하는 법을 알게 했습니다. 그대의 노래는 나의 노래이며, 그대의 춤은 우리의 춤입니다. 그대들을 우리 곁에 두신 삶이여 감사합니다. (곽병찬 칼럼중에서)

 

곽병찬의 칼럼은 촛불 정국을 잘 짚어낸 글이고 동시에 안치환과 손병휘라는 두 명의 가수에게 영감을 준 예술적인 글이다. 사회적인 글과 음악이 서로 교류할 수 있다는 확실한 증거다. 촛불광장에서 불린 아름다운 선율이 담긴 연대의 노래가 세실극장에서도 우렁차게 울려퍼지고 있었다. 현실에 대한 고민과 사회에 대한 사랑의 노래를 만들고 부른 두 가수의 열정이 부러웠다.

 

안치환은 촛불을 처음에는 가볍게 생각했다고 한다. 거친 80년대 운동을 경험한 386인 그의 눈에는 촛불이 충분히 진지하지 않아 보였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른 세대의 감수성을 이해하게 되면서 젊은 친구들에게 눈물나게 고맙게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이런 노래도 만들고 가수로 참여하게 되었다. 안치환에게 촛불은 새로운 창작의 원동력이 되었고, 세상에 대한 화답가 <유언>, <삶이여 감사합니다>가 태어날 수 있었다.

 

그가 노래하는 이유

 

안치환은 1984년 대학에 입학하여 학내 노래패 <울림터>를 시작으로 <노래를 찾는 사람들>을 거쳐 솔로로 데뷔했다. <내가 만일> <우리가 어느 별에서> <소금인형>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광야에서> 등 민중가요와 대중가요를 넘나들며 대중적인 인기도 얻었다. 안치환은 대중의 사랑을 받은 만큼 세상을 향한 사랑의 노래를 부르며 살고 있다. 정규음반(9집)을 비롯한 음반을 13개나 냈고 지치지 않는 공연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있었다.

 

안치환이 바라본 세상은 마냥 좋기만 한 건 아니었다. 그의 노래에는 힘에 부치고 절망적인 세상이 보인다. 하지만 그의 세계관은 아주 낙관적이다. 힘든 세상일수록 서로 연대하고 사랑하며 힘차게 이겨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무정한 세월이야 구름처럼 흘러만 간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있다. 청춘의 꽃이여 힘내자. 위하여! 위하여! 우리의 남은 인생을 위하여! (위하여! 중에서)

 

이렇게 안치환은 울먹일 듯하면서도 우렁한 목소리로 힘내라고 노래한다. 공연 첫날 하루 종일 비가 내려 약간 우울했는데 그의 힘내라는 목소리에 기운을 얻었다. 무려 2시간 40분에 걸친 대장정을 완벽하게 소화한 당당한 그의 모습에 놀라웠고 나도 덩달아 힘이 났다.

 

 안치환의 멋진 앙코르 공연에 관객들이 기립박수와 합창으로 응대하고 있다.
안치환의 멋진 앙코르 공연에 관객들이 기립박수와 합창으로 응대하고 있다. ⓒ 류동협

안치환이 노래하는 희망은 단순한 희망이 아니라 슬픔이 깔려있는 희망이다. 고난과 슬픔을 이해하는 마음이 없이 그냥 힘내라고 하지 않는다. 사람에 대한 이해없이 건성으로 하는 위로의 말이 아니다. 힘들어 하는 사람이 그의 노래에서 처절하게 느껴진다. 아픔을 견디고 이겨낸 강인한 사람들의 연대를 통해서 세상의 희망을 말할 수 있다.

 

지독한 외로움에 쩔쩔매 본 사람은 알게 되지 알게 되지. 그 슬픔에 굴하지 않고 비켜서지 않으며 어느 결에 반짝이는 꽃눈을 담고 우렁우얼 잎들을 키우는 사랑이야말로 짙푸른 숲이 되고 산이 되어 메아리로 남는다는 것을 누가 뭐래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중에서)

 

이번 공연의 테마는 '혼자 부르는 노래'다. 노래는 혼자 부르지만 안치환은 객석을 향하여 끊임없이 말을 건다. 무대를 비추던 조명이 객석을 여러 차례 비춘다. 처음에는 눈이 부셔 무대를 제대로 쳐다볼 수 없었다. 조명 아래에 적나라하게 드러난 객석에는 20대 대학생도 보이고, 친구나 가족과 함께 온 30~40대도 있었고, 장애인과 함께 온 수녀님도 있었다.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공연을 위하여 비오는 저녁 8시부터 밤 10시 40분까지 남아 있었다.

 

객석을 향했던 조명이 다시 안치환에게 돌아가면서 다시 무대는 뜨거워졌다. 공연 내내 땀을 흘리던 그가 안타까웠는지 한 관객이 손수건을 내밀었다. 그는 손수건을 얼굴에 가져가지 않고 기타부터 닦았다. 무대에 마련된 어쿠스틱 기타, 스틸 기타, 나일론 키타를 바꿔가며 정성스레 노래를 부르며 청중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기자와 함께 공연을 본 한 지인은 "안치환의 노래는 사람에 대한 믿음이 느껴져서 좋았다. 그리고 상처를 치유하는 효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안치환은 상처받은 사람을 노래로 어루만져 주었다.  

 

노래로 끝까지 살아 남으시라

 

요즘 노래의 가사는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내지르는 경향이 짙다. 사랑하면 대놓고 좋다고 하고 싫은 감정도 숨기지 않는 게 현재의 표현법이다. 가사가 너무 노골적이어서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한다. 안치환은 그런 시대적 흐름에 따르지 않고 시 같이 은유적인 가사를 즐기는 고집이 있다.

 

노래를 들을수록 사랑하는 연인에 대한 노래인 줄 알았는데 그게 세상에 대한 은유로 읽힐 수도 있다. 다양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 그의 노래가 가진 매력이다. 그 노래를 듣는 사람이 처한 상황에 따라서 다르게 울릴 수 있다. 귀뚜라미의 울음소리가 어느 순간에 노래로 사람에게 감동을 줘서 세상을 바꾸려는 투사의 목소리로 들리기도 한다.

 

귀뚜루루루... 보내는 내 타전소리가 누구의 마음 하나 울릴 수 있을까. 누구의 가슴 위로 실려 갈 수 있을까. (귀뚜라미 중에서)

 

은유적인 언어가 전달하는 의미는 조금은 둘러가지만 더 다양한 목소리를 담을 수 있다. 이런 노래가 가슴 속에 파고들 때는 폐부 깊숙이 들어간다. 표면을 대충 훑고 지나가지 않는다.

 

 공연 포스터
공연 포스터 ⓒ 류동협

음악이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이 과거와 달라졌다. 가수가 노래만 불러서는 힘든 세상이 되었다. 가수도 버라이어티쇼에 나와서 사람들을 웃기고 망가져야 인기를 유지할 수 있다. 노래를 홍보하기 위해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할 몫이 되었다.

 

안치환은 버라이어티쇼에 나가지 않는다. 그러니 새로운 대중이 그를 접할 기회가 많지 않다. 그는 그래도 고집스럽게 공연과 음반이라는 음악 안에서 대중을 만나려고 한다. 사람을 웃길 줄도 아는 그이지만 그런 방식으로 타협하지 않는다. 대중매체의 노출로 인기를 유지하려는 연예인이 아닌 노래로 정체성을 확인하는 가수로 남는 것이 안치환의 목표다. 그는 방송에 휘둘려 노래하기 보다는 노래가 가진 힘으로 밀고 나가는 방식을 택했다.

 

너무 빨리 늙어 버려 히트곡 한두 곡으로 먹고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끊임없이 새 노래를 만들고 부르며 안치환 같은 가수가 있다. 나는 그가 질기게 살아남아서 그 세대의 정서를 대변하는 가수로 오래오래 살기를 바란다.

 

<안치환의 혼자 부르는 노래 2> 덕수궁 옆 세실극장에서 8월 22일부터 10일 동안 열린다.


#안치환#촛불#세실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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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동협 기자는 미국 포틀랜드 근교에서 아내와 함께 아이를 키우며, 육아와 대중문화에 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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