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우토로 주민들을 위한 인혁당 유가족들의 기부금 전달식이 있었던 서울 정동의 세실 레스토랑. 우토로 마을을 대표해 자리에 나온 우토로 주민회장 김교일씨와 부회장 하수부씨는 문정현 신부와 유가족들로부터 성금을 전해 받은 뒤 조국의 따뜻한 도움에 감격한 듯 연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김교일 주민회장은 더듬더듬 읽어 내려간 감사문에서 "우토로의 절망과 고통은 조국이 아니었으면 이겨낼 수 없었다"고 말하고 "우토로 동포에게는 조국만이 희망"이라면서 "우토로를 지켜 줘 정말 정말 감사드린다"며 한국 정부와 국민들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시민운동 차원을 넘어 국고 지원을 통해 우토로 마을 주민들의 생존을 도운 정부, 그리고 민주양심세력들도 직접 나서 성금을 전달한 모습은 재외동포를 향한 우리 사회의 시선이 어떤 지를 제대로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외국에 거주하는 우리 동포들의 어려움을 조국이 외면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 준 것이다.
빛보다는 그늘이 많았던 재외동포 역사
우리나라 재외동포의 역사는 쇠약한 국력 속에 부침을 거듭했던 역사적 현실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일제 강점과 남북분단, 냉전으로 이어지는 시기, 수많은 사람들이 자의에 의해 또는 징용이나 공출 등으로 나라밖으로 떠밀려야 했고, 조국으로 돌아올 수 없었던 것이다.
일제에 의해 반 강제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미국과 멕시코의 농장으로 팔려갔고, 일본의 압제를 피해 간도 연해주 만주 등지로 이주한 조선인들은 험난한 삶을 이어야 했다.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고려인들의 아픔은 나라 잃은 백성이 당할 수밖에 없었던 설움이었다.
가까이는 60~70년대 나라 살림이 어려운 때 간호사와 광부를 독일로 송출했던 경우까지 재외동포 역사 이면에는 밝은 모습보다는 어두운 그늘이 더 많이 남아있다. 해외 민주화 운동으로 인해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눌러앉은 사람들도 많았다.
어떻게 보면 재외동포들은 국가가 져야 했던 빚이기도 했다. 일제로부터의 해방과 경제적 도약, 정치적 민주화 이면에는 그들의 노력이 많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외동포들을 지원하는 시민운동단체들은 이 문제를 역사나 인권의 문제로 본다. 험난한 과거 역사와 뒤떨어졌던 인권현실이 이들의 아픔을 만들어 낸 원인이라 보고 있는 것이다.
일제에 해방된 조국은 곧바로 분단으로 이어지며 나라 밖에 남겨진 동포들을 제대로 보듬어 내지 못했다. 조국과 떨어져 있던 이들은 어려운 일이 생겨도 조국으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가 없었다. 분단과 냉전으로 이어진 현실 속에 두개의 조국이 대립하면서 어느 조국으로든 쉽게 돌아갈 수 없었던 사람들이다.
한쪽을 택하고 싶었던 사람들도 상이한 국가 간 현실로 인해 그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고, 도리어 그 반대 상황으로 몰리든가 아니면 요구가 묻혀 버리기 일쑤였다. 국제정세의 흐름 속에 차츰 환경이 변화됐지만, 오랜 시간 쌓인 아픔은 가슴에 응어리로 남은 회한이었다.
일제의 징용으로 끌려갔으나 해방 이후에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남겨졌던 사할린 땅 주민들이 그랬고, 우토로도 그런 사례 중의 하나였다.
일제에 끌려갔으나 분단과 냉전이 막아버린 귀환
해외동포와 관련된 활동을 펼치는 동북아평화연대나 지구촌동포연대 등의 시민운동 단체들이 해외동포들의 어려운 문제에 적극 나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토로 문제의 경우 '아름다운 재단'과 함께 '우토로국제대책회의' 이름으로 지원을 위해 애쓰고 있으며, 지난 21일 인혁당 유가족들의 기부금 전달식도 이들 단체들의 준비 아래 이뤄진 행사였다.
하지만 일본 우토로 마을 문제는 이들이 펼치고 있는 여러 활동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한 부분일 뿐이다. 우토로 외에 옛 간도와 연해주 사할린 등 일제시대 징용이나 공출, 압제를 피해 이주한 주민들이 있는 곳에 재외동포 문제들은 어김없이 산재돼 있다.
정부도 이 문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97년 해외동포 지원 강화를 위해 재외동포재단을 설립했다. 재단은 애초 '교민청' 신설을 검토하다 외교 마찰의 소지가 있어 대안으로 설립된 기관. 동포들이 민족정체성을 유지하고, 스스로의 권익과 지위를 향상시키며, 역량을 결집할 수 있도록 적극 돕겠다는 것이었다.
민간 시민운동단체 활동 또한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으며, 이들은 연변 사할린 연해주 등지의 동포들을 위한 협력 사업을 적극 전개하고 있다. 지난 7월 말에 있은 <오마이뉴스> 청소년 기자학교에 동북아지역의 청소년들이 참가한 것도 이런 프로그램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이렇듯 재외동포들에 대한 사업이 중요해지는 시점에서 최근 정부가 재외동포사업을 책임지고 있는 재외동포재단 이사장과 사업이사에 낙하산 인사를 선임하면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공모절차 무시, 비전문가 기용은 재외동포 능멸한 처사
이명박 정부는 지난 18일 외교부 산하인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에 권영건 전 안동대 총장을 임명했다. 권 이사장은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의 선대위 외곽 조직인 선진국민연대 상임의장을 역임한 인물로 전형적인 보은 낙하산 인사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사업이사로 선임된 강남훈 전 국제신문 정치부장 역시 이명박 후보의 언론특보를 지낸 인물이다.
특히 선임과정에서 공모 절차에 의해 투명하게 이뤄진 기존의 이사장 선임 과정을 무시한 데다 일방적 내정과 속전속결식 임명 강행으로 재외동포 관련단체들의 강한 반발을 사고 있다.
재외동포 단체들은(재외국민참정권연대 / 조선족연합회 / 중국동포타운센터 / 해외동포민족문화교육네트워크 / 지구촌동포연대) 21일 재외동포재단 이사장 낙하산 인사와 관련한 성명을 발표하고 "동포사회의 '동'자도 모르는 인사를 이사장과 사업이사에 임명한 것은 750만 동포사회를 무시하는 처사"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또한 "이같은 모습은 앞으로 재외동포사회와 현 정부의 갈등을 예고하는 것"이라고 우려하고 '낙하산 인선의 즉각적인 철회와 공모절차를 통한 재선임'을 요구했다. 정부가 재외동포문제에 대한 전문성이 없는, 이사장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는 인사를 내려 보냈다는 것이다.
이들은 성명에서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한 권영건씨는 그의 전공인 정치학분야에서 훌륭한 학자이겠지만, 재외동포재단의 이사장으로는 적임자일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재외동포문제는 밖에서 보듯이 단순하지 않고 세계 170여 개국의 다양한 조건에서 140여년간 뿌리박고 터전을 일궈 온 각양각색의 여러 특색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어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인데, 3년 임기동안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고 밝히고, '이같은 행동은 (이명박 정부가)재외동포재단을 우습게 본 것으로 재외동포를 능멸한 처사이며, 처음부터 투명한 인사는 마음에 없고 밀실인사를 하겠다는 속셈을 드러낸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와 관련해 지구촌동포연대 최준혁 사무국장은 "재외동포문제는 워낙 국가별 특성이 다양한지라 전문성이 없으면 안 되는 자리인데, 경험이나 전문성이 전혀 없는 사람을 자리에 앉혔다"고 말하고 "전임 이사장의 경우는 법 절차에 따라 공모를 통해 선임됐으나 이번에는 그마저도 완전 무시됐다"며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최준혁 국장의 지적대로 공모를 통해 선임된 전임 이사장들은 모두 재외동포 문제에 대한 논문이나 저서를 발간한 전문가들이었다.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이명박 정부의 압박으로 물러난 전임 이구홍 이사장은 오래 전부터 해외교포문제연구소를 창립하고 중국·러시아·일본의 한인 사회와 관련한 논문이나 저서를 여러 권 발간한 동포문제 전문가였고, 그 전의 이광규 이사장 또한 재외한인학회장을 역임하고 해외동포문제에 대한 오랜 연구와 다수의 책을 저술한 재외동포전문 학자였다.
이에 반해 낙하산 비판을 받고 있는 권영건 이사장은 관련 연구나 논문이 전혀 없는 정치학 전문가. 전문성에 대한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국제정치학은 동포들과 깊은 관련성, 문외한 아니다
권영건 이사장은 이를 의식한 듯 취임 직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총장 재임 당시 세계 17개국 72개 대학과 자매결연 맺으면서 업무 협조의 과정을 통해 글로벌 마인드를 가지고 있으며, 한국 근현대사에서 해외 한인 이주사를 접하는 등 어느 정도 재외동포 분야에 대한 사전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재외동포재단의 한 관계자는 "시민운동단체들의 반대 성명 발표를 알고 있다"고 말하고 "이사장님이 취임직후 연합뉴스 등의 언론과 하신 말씀 내용 외에는 특별히 다른 입장은 없다"고 전하면서, 이렇게 부연했다.
"이사장님이 외국에 자주 다니시면서 동포들을 많이 만났고, 도움 받은 경우도 많았다고 하신다. 그 과정에서 동포들에 대한 문제들을 인식하고 계셨기에 이사장님 스스로도 기본적인 정책을 이끌어 나가는 데 무리는 없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또한 "'국제정치학자로서 국제정치학과 동포들의 연관성이 깊기 때문에 문외한이라는 지적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반응"이라고 전하고, "국제정치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의 식견과 대학총장으로서의 조직 관리 경험이 잘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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