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뜨거운 8월의 햇볕 아래. 구례 군청 앞에 천막을 친 주민들의 농성이 한달 가까이 계속되었다. 이들은 산수유마을로 유명한 산동지역에 골프장 계획이 발표된 뒤, 4년이 넘도록 골프장 반대운동을 하고 있는 사포마을과 정산마을 주민들이다.
농성이 시작된 8월의 첫주, 군수를 포함한 상당수 공무원들이 여름휴가를 떠난 구례군청은 한가했고, 주민들은 절박한 심정으로 이 뜨거운 여름에 농사일을 제쳐두고 천막을 지키고 있었다.
농성장에서 만난 동네 어른은 말씀하신다.
"나야 살면 얼마나 사나.나야 골프장이 들어오든 동네가 망가지든 어찌보면 살날 얼마없으니 되지만, 동네는 우리가 가도 자식이든 누구든 자꾸 들어와 살아야 할 것 아닌가.골프장 딱붙어서 어찌 동네가 되겠는가"
이분들의 바람은 오직 하나! 골프장 취소하고 이대로 농사 짓고 살게 그냥 놔두라는 것이다. 이 당연하고 소박한 바람을 지켜주기는커녕 세수확대에만 관심이 있는 국가와 행정은 국토나 마을공동체야 어찌되든 상관없이 업주편에서 오히려 주민들을 위협하고 있다.
그동안 이 골프장을 막기 위한 주민들의 반대운동의 역사를 보면, 대한민국이 정말 민주공화국인지, 왜 골프장이 공익시설인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으며, 잘못된 골프장 육성 정책의 폐혜를 적나라하게 볼 수 있다.
2004년 지리산온천랜드측의 골프장 계획의 발표된 이후 지리산과 마을을 지키자고 나선 주민들에게 돌아온 것은 업주측의 폭행과 민형사 손해배상, 재산 가압류였다. 골프장 업주측은 사전환경성검토를 의식해 이곳의 환경적 가치를 떨어뜨리기 위해 골프장 예정지의 아름드리 나무들을 무차별로 불법 간벌했고, 이에 대해 업주측은 미미한 벌금으로 면죄부를 얻은 반면, 이 문제점을 알리려 제출한 수십통의 탄원서와 민원서류는 산림 과벌에 대한 처벌이 종결된 것으로 되돌아왔다.
특히 2004년 9월에는 지리산온천랜드측 사람들이 백주 대낮에 마을에 쳐들어와 "불순분자 몰아내자"며 온갖 욕설을 퍼부으며 놀라 달려나온 부녀자들을 집단 폭행한 사건이 있었는데, 경찰은 뒤늦게 와 현장을 보고도 현장범 검거는커녕 방관했고, 사과와 배상은커녕 업주측은 '주민 자작극'으로 몰며 영업방해로 마을 사람들에게 10억이 넘는 손해배상 소송을 걸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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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집단폭행 당시 2004년 9월 관련글 보기
주민들은 지혜롭고 강했다. 마을공동체를 지키는 것이 지리산을 지키는 일이라며 우리의 이야기를 문화로 알려보자며 마을 사람들이 나서서 2006년 제1회 지리산문화제를 사포마을에서 개최했다. 지리산에 걸린 달과 푸른 산자락, 누런 가을 빈들녘에서 늦도록 함께하며 지리산과 마을의 소중함이 가득 담긴 감동의 축제였다.
오랫동안 속앓이를 해서일까? 4년이 넘는 골프장 반대운동에 "우리 사포사람들이 젤루 똑똑하고 나는 그냥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이여"하며 항상 뒤에서 온갖 궂은일은 도맡으셨던 사포마을 박운주 사포마을 대책위원장님께서 올해 4월 폐암으로 돌아가셨다. 소의재에서 열린 추도식에 선생님 그늘에 쉬어갔던 많은 이들과 마을주민들이 모두 모여 큰 슬픔을 나눴다.
*지리산 아버님, 故박운주 어르신 추모 동영상 보기
그동안 숱하게 다른 지역 골프장을 돌아본 주민들은 직접 보고 느낀 것이 많다. 올해 7월에는 바쁜 농사일을 접고 전남 쪽 골프장을 함께 둘러보았다.
난생처음 들어가본 골프장. 돌아서면 잡초가 무성한 이 계절, 산등성이를 깎아 들어선 골프장은 파랗게 오직 잔디만 자랄 수 있는 땅이었다. 그 '단일한 푸르름'이 섬뜩했다.
골프장이 지나간 곳은 곳곳이 상처투성이었다. 함평 골프장 아래쪽에서는 개를 키워 개짓는 소리가 골프경기 집중력에 방해가 된다며 주민을 상대로 업주 측에서 1억6천이 넘는 거액의 소송을 걸었다. 골프장 반대를 끝까지 했던 것에 대한 괘씸죄성 소송이었고 고등법원까지 끌고가 마침내 일단 주민이 승소했다고 한다. 또 화순 지역에서는 골프장이 개장도 전에 취수를 시작하자마자 마을 일대의 관정이 말라버린 지역도 있었다. 고압으로 세게 물을 뽑아내자 상대적으로 얕게 판 마을 관정들이 다 말라버린 것이다.
마을 바로 곁에서 온갖 발파와 골프장 출입 차량이 달리기 시작하자 살기 어려워 고향을 등진 사람이 많아 마을이 비어 있었다. 골프장 피해 지역 주민들은 하나같이 들어오기 전에 꼭 막으라고, 꼭 단합해서 막으라고, 일단 들어오고 나면 어떤 피해가 나도 누구하나 들어주지 않는다는 당부를 전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친환경농업과 청정 구례를 강조하는 구례군의 시책과 과연 골프장이라...제 목에 칼을 겨누는 시설이 아닐까. 친환경 군정 홍보를 위해 자전거 타는 군수님의 출근모습을 신문에 싣는 것보다, 차라리 골프장이 없는 유일한 구례군을 자랑삼아 홍보할하는 것이 구례군의 중심 시책과 맞아보인다.
'전국최초 NO골프장 선언'을 구례군에 제안하고 싶다. 너나할 것없이 자치단체마다 유치한 골프장에 멍든 현실속에 오히려 NO골프장 선언을 한다면 얼마나 참신한가. 이렇게 되면 깨끗한 구례의 농산물과 농촌관광사업의 홍보효과가 대단하지 않을까.
지리산이 사람들 마음속에 차지하고 있는 심리적 높이가 중요하다.이것이 지리산권에 기대어 관광이든 농사든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가치를 높여줘왔다. 지리산이 골프장으로 산이 깎이고 마을공동체가 쇄락해가고 케이블카로 묶이고..도로로 타고 넘는다면 사람들 마음속에 커다란 가치를 지니던 지리산은 한낱 관광지로 전락해간다.
이 심리적 높이를 자꾸 낮추면 낮출수록 지자체가 그리도 외치는 '지역경쟁력'은 오히려 점점 낮아질 뿐이다. 자연 그대로를 느낄 수 있는 곳이 사라져가는 지금, 잘 지켜진 자연과 문화는 장기적인 지역경쟁력이다.
인간의 탐욕이 사욕이 지리산을 흔들고 있는 지금, 과거 우리를 품어 키웠던 지리산과 함께 그 산에 기대어 살아온 사람들이 똘똘 뭉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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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성삼재 바로 아래 골프장부지 둘러보기 27홀 골프장이 얼마나 넓은지 한번 둘러볼까요? 산자락에 들어서는 27홀 골프장 정말 정말 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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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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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이 시작되는 곳은 바로 지리산 성삼재다. 성삼재 코밑으로부터 보여지는 전체 능선 아래 산자락 전체가 골프장 부지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이곳은 온천개발당시 뜷었던 수많은 폐공과 지금도 산동 온천지구에 물을 공급하는 온천공이 있어 온천공 보호를 위한 입산금지 푯말이 있다. 이런 곳에 골프장을 짓는다. 골프장에서 흘러나온 물에 온천을 한다면 과연 이 사실을 안 사람들이 골프장물 온천하러 올까?
골프장 추진 업주와 자치단체는 어느 지역이나 일단 상당수의 토지매입을 하고 골프장 계획을 가시화한다. 그러다보니 90퍼센트 가까운 토지를 매입한 측에서는 주민과 협의할 필요가 없다. 골프장에 끝까지 땅을 넘겨줄 수 없다고 버티는 주민들을 협박할 수 있는 '토지수용'이라는 카드가 있다.
어째서 자신의 농토와 집을 지키려는 주민이 공공사업도 아닌 개인사업에 토지수용을 당해야 하는지 개인의 권리를 중시한다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런 폭력을 행사해도 되는 것인가.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제19조 (토지등의 수용 또는 사용) ①사업시행자는 공익사업의 수행을 위하여 필요한 때에는 이 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토지등을 수용 또는 사용할 수 있다.
대부분의 골프장은 '시군 체육시설'로 인가고시를 하고 개인 사업자를 지정하는 방식으로 한다. 그러다보니 골프장은 체육시설이고 '공익시설(!)'의 외피를 걸치는 것이다. 국가에서 오히려 골프장 업주를 보호하는 상황에서는 자치단체와 개발업자에게 마을주민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일쑤다.
골프장은 그 환경피해와 지역공동체에 끼치는 해가 더할 수 없이 많은 시설이다. 게다가 이제 대한민국 골프장은 포화상태다. 줄도산을 눈앞에 두고 있는 지금, 어디까지 가봐야 이 그릇된 정책을 거둬들일 것이란 말인가.
지속적인 마을공동체의 경제적, 사회복지적, 심리적, 문화적 가치를 따진다면, 이를 10억도 안되는 지방세수와 바꾸는 미친짓을 하루 빨리 그만두어야 한다. 골프장은 공익시설이 아니다. 공공의 공해시설이다.
덧붙이는 글 | 골프장 반대를 위해 활동하며 고생뿐 아니라 마을 살림이 말이 아닙니다. 지리산과 마을을 지켜주실 분들은
1) 해피빈 모금함을 찾아 기부해주세요. http://happylog.naver.com/savejiri/H000000013707
2) 고향을 지키는 착한 알밤을 주문해주세요. 자세한 안내는 http://www.savejirisan.org/bbs/board.php?bo_table=notice&wr_id=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