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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찰리 채플린
찰리 채플린 ⓒ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에 맞서 '21세기 사회주의 혁명'을 부르짖으며 중남미 좌파 바람을 만들고 있는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 그가 이끌던 노동부는 2006년 1월부터 공장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어떤 영화를 상영했다.

노동자들의 열악한 작업환경과 자본주의의 야만성을 폭로하는 이 영화는 베네수엘라의 자본가들에게는 불편함 그 자체였다.

공장 강당을 순회하며 상영을 한 지 6개월 만에 1000회가 넘는 상영회에 4만 여명의 노동자들이 관람했는데, 급기야 베네수엘라 사용자단체연합은 같은 해년 6월 정부에 공식적으로 상영 금지를 요청했다.

2006년에 베네수엘라의 자본가들을 더할 나위 없이 불편하게 만든 이 영화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1936년 미국에서 첫 상영되었을 때, 역시 미국의 자본가들을 더할 나위 없이 불편하게 만들었다.

바로 찰리 채플린(1889~1977)이 감독과 주연을 맡은 영화 <모던 타임즈>이다.

70년 전부터 예언한 '공장 CCTV'

찰리 채플린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일반적으로 그를 기억하는 방식은 독특한 외모와 몸짓 정도를 넘어가지 않는다. 히틀러를 닮은 우스꽝스러운 콧수염, 냄비를 얹어놓은 듯 보이는 중절모, 억지로 구겨입은 양복에 발보다 두 배는 커 보이는 구두, 뒤뚱뒤뚱 지팡이를 짚고 걷는 그의 독특한 걸음걸이는 한 번 보면 결코 잊을 수 없는 독특함이 묻어 있다.

영국에서 태어나 주로 미국에서 활동한 찰리 채플린은 그 당시 대중들에게도 천재 배우, 천재 감독으로 명성을 날렸지만 그 명성만큼이나 강하게 찍힌 낙인이 있었으니 바로 '빨갱이'였다. 그리고 미국의 보수우익들에게 그러한 심증을 굳히도록 만든 영화가 바로 <모던 타임즈>이다.

 <모던 타임즈>에서 나오는 양떼들
<모던 타임즈>에서 나오는 양떼들 ⓒ

 양떼에 이어 출근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이 이어진다.
양떼에 이어 출근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이 이어진다. ⓒ


<모던 타임즈>는 영화 첫 장면부터 미국의 자본가들에게 불편함을 주면서 시작한다. 이른 아침에 정신없이 출근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축사로 끌려가는 양떼에 비유하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이 정신없이 일하고 있는 장면은 곧바로 사장실에서 직소퍼즐을 맞추다가 신문이나 보는 자본가의 모습으로 바뀐다.

곧이어 채플린의 놀라운 상상력이 발동되는 장면이 나온다. 사장은 자신의 방에 있는 커다란 스크린을 통해 공장의 구석구석을 감시하는 것 아닌가. 영화가 개봉된 1936년 당시에 CCTV가 없었을 텐데 말이다. 사장은 현장에 장치된 스크린을 통해 컨베이어벨트의 속도를 높이라는 지시를 내린다. 그리고 바로 그 컨베이어벨트에는 찰리 채플린이 나사를 조이는 일을 하고 있다.

채플린은 자본가들의 속성을 매우 잘 파악하고 있었던 듯 하다. 이런 측면에서 그의 통찰력과 아이디어가 번뜩인 장면이 또 하나 있으니, 바로 자동급식기계 장면이다. 점심시간에 노동자가 식사를 하면서 동시에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고안한 이 기계는 궁극적으로 점심시간조차도 이윤추구 시간으로 바꾸고 싶어하는 자본가의 속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지독한 노동강도와 감시로 인한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로 결국 채플린은 정신이 나가버린다. 물론 정신 나간 채플린은 관객들의 정신이 나갈 만큼 웃음을 주게 되지만 말이다. 채플린은 당시 디트로이트에 있는 자동차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신경쇠약으로 고통 받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이 장면을 구상했다고 한다.

이 정도 되면 보고 있을 자본가들의 심기가 매우 불편해질 것이다. 그런데, 채플린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영화 속의 채플린은 정신병 치료를 받고 나온 직후 엉겁결에 노동자 파업 데모의 선봉에 서게 된다. 붉은(물론 흑백이지만) 깃발을 치켜 든 채플린의 뒤로 일군의 노동자들이 '자유' '단결' 등의 무서운(?) 구호가 적힌 피켓을 치켜들고 당당하게 행진한다. 스크린을 통해 자신의 앞으로 다가오는 데모 대오를 보고 있는 자본가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자동급식기계의 실험대상이 된 채플린. 결국 이 기계의 폭주로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자동급식기계의 실험대상이 된 채플린. 결국 이 기계의 폭주로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

 컨베이어 벨트의 부속품이 되어 기계의 리듬에 몸을 맡긴 채플린과 노동자들
컨베이어 벨트의 부속품이 되어 기계의 리듬에 몸을 맡긴 채플린과 노동자들 ⓒ

비극적 현실을 희극으로 승화시키는 데 탁월한 재주가 있는 채플린은 <모던 타임즈>에서도 그러한 자신의 장기를 십분 발휘한다. 주어진 현실은 비참하지만 그 안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나가는 스크린 속의 채플린의 모습을 보며 관객들은 용기와 삶의 의욕을 얻는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채플린 자신이 했던 말처럼 그의 영화들은 비극과 희극을 카메라의 줌인과 줌아웃처럼 자유자재로 다룬다. 그런 희비극을 관통하는 것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마음과 더불어 돈과 권력을 통해 사회를 자기 멋대로 주무르는 지배계급에 대한 분노였다. <모던 타임즈> 뿐만 아니라, 그는 일련의 영화들에서 일관되게 이러한 관점을 지켜나갔다.

사장님 눈 앞으로 행진하는 파업 대오, 그 앞엔 채플린이

<모던 타임즈>에 이어 4년 후에 상영된 <위대한 독재자(1940)>에서 그는 영화사에 길이 빛날 명장면을 만들어 낸다. 파시즘을 비판한 이 영화에서 독일의 히틀러를 닮은 독재자와 이발사의 1인2역을 소화한 찰리 채플린은 마지막 연설장면에서 배우가 아닌 찰리 채플린 자신으로 돌아온 듯 다음과 같은 연설을 한다.

미안합니다만, 나는 황제가 되고 싶지 않군요. 그건 내 할 일이 아닙니다. 누군가를 다스리거나 정복하고 싶지도 않아요. 가능하다면 모든 이들을 돕고 싶어요. 유태인·기독교인·흑인· 백인이든 간에 모든 인류가 그렇듯, 우리 모두가 서로 돕기를 원합니다. 남의 불행을 딛고 사는 것이 아니라 남이 행복한 가운데 살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남을 미워하거나 경멸하고 싶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모두를 위한 자리가 있고 풍요로운 대지는 모두를 위한 양식을 줍니다. 인생은 자유롭고 아름다울 수 있는데도 우리는 그 방법을 잃고 말았습니다.

탐욕이 인간의 영혼을 중독시키고 세계를 증오의 장벽으로 가로막았는가 하면 우리에게 불행과 죽음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급속도로 발전을 이룩했지만 우리 자신은 갇혀버리고 말았습니다.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한 기계는 우리에게 결핍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지식은 우리를 냉정하고 냉소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생각은 너무 많이 하면서도 가슴으로는 거의 느끼는 게 없습니다. 기계보다는 휴머니티가 더욱 필요하고 지식보다는 친절과 관용이 더욱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생은 비참해지고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입니다.

비행기와 라디오 방송은 우리를 더욱 가깝게 연결 시켰습니다. 이러한 발명의 진짜 의도는 인간의 선함에 전 지구적 형제애와 우리 모두의 화합을 호소하기 위함입니다. 지금도 내 목소리가 세계 방방곡곡에 울려퍼져나가 인간을 고문하고 죄없는 사람들을 가두는 제도에 희생된 수백만의 절망하고 있는 남녀노소에게까지 들리고 있지 않습니까?

 <위대한 독재자>에서 연설중인 찰리 채플린
<위대한 독재자>에서 연설중인 찰리 채플린 ⓒ

지금 내 말을 듣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합니다. 희망을 잃지 마십시오! 우리가 겪는 불행은 탐욕에서 인류의 발전을 두려워하는 자들의 조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증오는 지나가고 독재자들은 사라질 것이며 그들이 인류로부터 앗아간 힘은 제자리를 찾을 것입니다. 인간이 그것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한 자유는 결코 소멸되지 않을 것입니다. 군인들이여, 그대들을 경멸하고 노예처럼 다루며, 당신들의 행동과 사고와 감정·삶까지 통제할 뿐만 아니라 당신들을 짐승처럼 다루고 조련하여 전쟁터의 희생물로 만들고 있는 이 잔인무도한 자들에게 굴복하지 마시오!

이런 비인간적인 자들에게 기계의 지성과 마음을 가진, 기계나 다름없는 자들에게 굴복하지 마시오! 그대들은 기계도 짐승도 아닙니다 인간입니다! 당신들의 마음속에는 인류에 대한 사랑이 숨쉬고 있습니다!

증오하지 마시오. 비인간적인 자들만이 증오를 합니다. 군인들이여, 노예제도를 위해 싸우지 말고 자유를 위해 투쟁하시오. 누가복음 17 장에서, "주의 왕국은 인간들 사이에 있다" 라고 했습니다. 한 사람, 한 무리가 아닌 인간 전체에 바로 당신들 마음속에 있는 것입니다

민중은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계를 창조할 힘과 행복을 창조할 힘 말입니다. 민중은 삶을 자유롭고 아름답게, 그리고 멋진 모험으로 만들 수 있는 힘을 지닌 것입니다. 그러니,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그 힘을 사용하여 화합을 이룩합시다. 모두에게는 일할 기회를, 젊은이에게 미래를, 노인들에게는 안정을 제공할 훌륭한 세계를 건설하기 위해 싸웁시다.

극악무도한 자들도 이런 것들을 약속하며 권력을 키웠지만 그들의 약속은 실행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절대 지켜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면서 민중을 노예로 전락시켰습니다. 이제 그들이 했던 그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싸웁시다. 세계를 해방시키고 나라간의 경계를 없애며 탐욕과 증오와 배척을 버리도록 함께 투쟁합시다. 이성이 다스리는 세계, 과학의 발전이 모두에게 행복을 주는 세계를 만들도록 함께 투쟁합시다. 군인들이여, 민주주의의 이름하에 하나로 뭉칩시다!

500만 달러보다 중요했던 독재자의 연설

 스크린을 통해 노동자를 감시하는 자본가
스크린을 통해 노동자를 감시하는 자본가 ⓒ

 감시 스크린을 통해 컨베이어 벨트 속도를 올리라고 지시하는 자본가
감시 스크린을 통해 컨베이어 벨트 속도를 올리라고 지시하는 자본가 ⓒ

앞의 두 시간에 가까운 스토리가 바로 이 장면을 위한 리허설인 것처럼 찰리 채플린은 자신의 모든 것을 다해 연기 아닌 연기를 했다. 이 연설 장면에 대한 채플린의 애착은 대단했다.

제작 당시 주변 사람들이 이런 긴 연설을 삽입한다면 흥행 수입이 100만달러는 줄어들 것이라고 만류하자, 채플린은 "비록 500만달러가 줄어든다고 해도 난 꼭 그 연설을 삽입시킬 거야"라고 응수했다.

<위대한 독재자>를 본 당시 FBI 국장 J. 에드거 후버는 이 영화가 독일의 나치뿐만 아니라 미국을 비판하는 것이라는 판단 하에 부하들을 동원해 찰리 채플린의 모든 것을 캐내기 시작했다. FBI가 작성한 채플린 파일은 1900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으로 알려져 있다.

<위대한 독재자>를 만든 지 7년 후, 그는 <무슈 베르두(1947)>라는 또 하나의 문제작을 내놓는다. 실업자가 된 전직 은행원 베르두 역을 맡은 채플린은 중년의 돈 많은 여자를 유혹해서 재산을 강탈하고 살해하려는 베르두를 통해 이전의 영화들보다 훨씬 강도를 높여 자본주의와 물질 만능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이에 충격을 받은 재향군인회 등 보수단체들이 조직적으로 극장을 압박해서 <무슈 베르두>는 많은 지역에서 개봉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는 이제 보수우익세력에게 반미주의자·공산주의자로 완전히 낙인이 찍히게 되었다. 결국 찰리 채플린은 비이성적 반공주의가 판을 쳤던 매카시즘의 광풍 속에서 1952년에 자의반 타의반 미국을 떠나 스위스에 거주하게 된다.

그가 이런 어려움을 겪으면서까지 신념을 굽히지 않은 것은 자신의 어린 시절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채플린은 1889년 런던 뮤직홀 삼류 배우인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의 부모는 그가 한살 때 이미 헤어졌으며, 그와 이복형 시드니는 배우였던 어머니 밑에서 자라게 된다.

채플린의 아버지는 알코올중독으로 사망했고, 아버지의 죽음 이후 어머니는 연극무대에서 들어오는 수입으로 그와 형을 키웠다. 그러나 어머니가 점차 인기가 하락하고 건강이 악화되자, 집안은 급속히 기울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어머니의 정신병 증세는 날로 심해져서 결국 그는 형과 함께 먹을 것을 구하러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했다.

이러한 채플린의 어린 시절은 그의 시선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고정시키게 했고, 설사 자신이 어려움을 겪더라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가치를 마음속에 심어주었다.

FBI의 채플린 파일... 고향 잃은 천재

그러나 채플린이 런던을 떠나 수십 년간 살아온 미국은 그의 '가치'를 용인할 수 없었고 그는 정든 제2의 고향 미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아무리 천재적인 배우이자 감독이라도 그의 인생 자체를 비극에서 희극으로 돌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1952년 미국을 떠난 지 20년도 더 지난 1972년에서야 채플린은 83살의 나이로 20년 만에 아카데미 특별상을 수상하기 위해 미국땅을 밟았다. 그리고 5년 후 1977년 12월 25일, 비극과 희극으로 점철된 자신의 삶을 마무리한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찰리 채플린

 정신줄을 놓아버린 채플린. 이후로 슬랩스틱 코미디의 진수를 보여준다.
정신줄을 놓아버린 채플린. 이후로 슬랩스틱 코미디의 진수를 보여준다. ⓒ

 붉은(?) 깃발을 들고 데모대의 앞장을 선 채플린.
붉은(?) 깃발을 들고 데모대의 앞장을 선 채플린. ⓒ


#찰리 채플린#모던 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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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피아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 <나는 행복한 불량품입니다> <삶은 어떻게 책이 되는가> <원숭이도 이해하는 공산당 선언>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 등 여러 권의 책을 쓴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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