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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나의 어머니 5년 전 추석때 아버님 성묘길에 묘소 텃밭에서 깻잎을 따고 계신 어머니입니다. 20년 홀로 지내시며 오직 자식 잘 되기만을 희구하셨던 어머니께서 75세를 일기로 영면하셨습니다.
▲ 5년 전 나의 어머니 5년 전 추석때 아버님 성묘길에 묘소 텃밭에서 깻잎을 따고 계신 어머니입니다. 20년 홀로 지내시며 오직 자식 잘 되기만을 희구하셨던 어머니께서 75세를 일기로 영면하셨습니다.
ⓒ 박병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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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갑자기 예고 없이 떠나신 어머니

지난달 23일 오전, 올해 75세 된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작은 형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전화를 받는 순간 좀처럼 울지 않는 작은형이 울먹이고 있었습니다.   

"형, 왜 그래?"
"응… 어머니께서 깊이 잠드셨구나."
"뭐야! 무슨 일이야?"

3분 거리 옆 아파트로 달려갔습니다. 어머니는 엉엉 울고 있는 조카들 넷에 둘러싸여 편안히 잠들어 계셨습니다. 흔들어 깨우고 울고불고 난리를 쳤지만 어머니는 그 모습 그대로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싸늘하게 식어버린 어머니 앞에서 "엄마, 죄송해요" 만을 외쳤습니다. 단 1%라도 어머니의 운명을 예감했다면 덜 억울하겠습니다. 그리고 해드릴 일이 너무나 많은데 더 이상 기회를 주지 않고 떠나셨습니다.

돌아가시기 직전 보름 동안 서울로 인천으로 일가 친척집을 순회하며 삼촌이랑 이모들이랑 뱃놀이도 하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오셨더랬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시기 전날에는 대구에 사는 막내딸이 놀러와 어머니랑 도란도란 이야기꽃도 피웠습니다.

돌아가시기 전날에 저는 어머니랑 여동생이랑 아침 식사를 했고, 저녁 때도 전화통화를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언젠가 병마에 시달리다 저 세상으로 가신 친구분을 조문하고 오셔서 "자다가 죽는 게 소원이다"라고 하시며 죽음복을 논하셨는데, 그 말씀이 현실이 될 줄은 진정 몰랐습니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눈물이 치솟는군요.

통탄할 일은 돌아가시기 스무날 전쯤 "입맛이 없고 쓰다"라고 말씀하셨는데도 병원에 모시지 못한 것입니다. 입맛이 없을 때마다 어머니께서 평소 좋아하는 냉면 한 그릇을 사 드리면 씻은 듯이 좋아지곤 했던 어머니였기에 "엄마! 얼렁 입맛 찾으세요!"하며 냉면 드실 용돈을 드리고 말았던 것이 천추의 한이 됩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이야기도 못 들어드리고...

어머니는 지금으로부터 꼭 20년 전, 아버님을 먼저 보내고 혼자되시어 줄곧 자식이 잘 되기 만을 바라며 살아오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당신의 인생 역정을 책으로 엮으면 "만리장서가 될 거"라고 하셨는데, 그 말씀을 다 하지 않고 가셨습니다. 기다려주실 줄만 알았던 불효자식들의 셈법이 잘못되었고, 어머니가 말을 걸기 전에 먼저 걸어보았어야 할 세 치 짧은 혀가 부끄럽고 통탄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어머니는 풍족한 주머니보다도 자식들의 말 풍년을 더욱 그리워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그러질 못 했습니다. 바쁘다는 핑계와 먹고사는 문제로 발길이 뜸했어도 어머니는 몇 줄 안 되는 텃밭 고랑에서 호미질을 하시면서 자식들의 근심을 뽑아내셨을 것입니다.

어머니는 서울, 인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셔서 몇 줄 안 되는 텃밭을 일구셨습니다. 거름이 필요하다시며 대전역 인근 비료 가게에 가서 저랑 함께 거름 한 부대를 사온 일도 있습니다.
5년전 한가위때 삼형제 손을 잡고 그토록 든든해하시던 어머니께서 빛 곱고 결 곧게 사시다가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어머니! 부디 좋은 곳에서 만복 누리시길 바랍니다.
▲ 5년전 한가위때 삼형제 손을 잡고 그토록 든든해하시던 어머니께서 빛 곱고 결 곧게 사시다가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어머니! 부디 좋은 곳에서 만복 누리시길 바랍니다.
ⓒ 박병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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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들에게 농약 안 묻은 먹을거리를 주신다며 그 거름을 다 뿌리시고, 작은 수레에 이것저것 소출을 담아 오셔서 그 특유의 손맛으로 기막힌 반찬을 만드셨습니다. 그럴 때면 한 사발 고봉밥을 먹고 부른 배를 탁탁 쳐 보이면 어머니 미소가 부처님보다 온화했습니다. 아아, 그런 어머니가 떠나셨습니다. 

발인하는 날, 평소 어머니께서 낙원처럼 가꾸시던 남새밭에 먼저 들러 거리제를 지냈습니다. 큰형은 남새밭 언덕에 올라 빨갛게 익은 고추를 따내며 억세게 울었습니다. 저희 가족 모두 울었습니다.

줄곧 같이 살던 둘째 형네 집도 한 바퀴 돌아, 대전 근교 공원 묘원의 햇볕 잘 드는 곳에 모셨습니다. 다 울지 못한 울음, 앞으로 평생 나누어 울겠지요.

이모는 "천사 같은 언니가 가버렸다"라고 통곡했습니다. 75평생 당신보다 남을 위하여 진실하게 살아오신 어머니는 저에게 늘 "파고 또 파고 공부해서 선생 노릇 잘 하라"라고 당부하셨습니다. 평소 그 당부가 어머니의 유언이라 믿으렵니다.

이제야 안 보였던 것들이 보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 가늠할 수 있는 눈이 생겼습니다. 나와 타자와의 관계에서 삶의 향기와 색깔을 어떻게 지녀야 하는지도 터득합니다.

어머니께서는 말없이 가셨지만 참 많은 말씀을 주고 계십니다. 침묵도 말이라는 사실을 절실하게 깨닫습니다. 지난 시간들 속에 어머니께서 남겨주신 자취가 존재의 빛이자 유언입니다. 5남매 화목을 가장 중시했던 어머니! 그 뜻 받들겠습니다. 

어머니! 굳세게 일어서겠습니다. 너무 울면 어머니 좋은 길 가는 데 장애가 된다는 덕담을 믿겠습니다. 부디 좋은 곳에 가셔서 만복 누리시길 이 아들 간절히 기도합니다.

덧붙이는 글 | 지난달 23일(토) 저희 어머니 상중에 와 주셔서 위로의 말씀과 함께 여러 모로 토닥여주신 정분, 오래 간직하고 잘 살아내어 그 뜻에 반드시 보답하겠습니다.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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