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 부리다 다치면 며칠 일 한 게 허사로
서울 인수동(수유5동) 냉골마을 어귀부터 북한산 입구까지는 완만하게 경사졌다. 2번 마을버스는 여기서부터는 50미터를 채 못가서 멈춰 사람을 싣고 내린다. 아무리 마을버스라지만 너무하다 싶지만, 그건 젊은 사람 생각이다.
나이 지긋한 어른들이 많은 동네라는 점을 감안하면 어쩌면 정류장이 많은 것은 마을 사람을 배려한 당연한 처사다. 하여튼 이 길을 하루에도 여러 차례 오르락내리락 하는 할머니가 있다. 그것도 폐지를 가득 실은 수레를 끌면서.
김화심 할머니(78)는 이 동네에서 폐지를 주은 지 5년이 넘었다. 교회에 다니는 할머니는 일요일 외에는 웬만해서는 쉬지 않는다. 비가 그치자마자 가장 부지런히 일하는 분도 할머니다. 그렇게 한 달을 열심히 일하면 20만 원 조금 넘는 돈이 손에 들어온단다. 가끔 30만 원이라는 목돈을 만질 때도 있지만, 쉬지 않고 일하고 운도 따라야 가능한 일이다.
"그래 봐야 병원비와 약값으로 다 쓰지."
그도 그럴 것이 경사진 길을 수레를 끌고 가다가 넘어지고 까이는 일이 다반사다. 얼마 전에는 영락기도원 쪽에서 청수탕으로 내려오는 길에 넘어졌다. 그날은 폐지가 평소보다 많이 나와 흥이 났다고 한다.
작은 수레에 점점 높이 쌓다가 조금씩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혹시 또 힘에 부쳐서 넘어지는 거 아냐.' 그래도 버리고 가기는 아까웠다. 이 '욕심'이 화근이었다. 그날따라 좀 도와달라고 부탁할 사람도 눈에 띄지 않아 내리막길을 걷다가 짐과 함께 쓰러졌다. 이렇게 다치면 며칠 일 한 것이 허사로 돌아간다.
할머니를 만나던 날은 마침 마을 위 북한산 국립공원 안쪽에 있는 영락기도원에 가는 길이었다. 할머니는 기도하는 시간이 쉬는 때라고 했다. 무릎이며 팔꿈치 등이 상처투성이고 어깨와 허리는 늘 결리다며 이곳 저곳을 내보였다. 그래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마을에서 늘 웃는 낯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그대로다. 마을 사람 누구에게나 정성껏 대하는 할머니를 다들 좋아한다.
이웃들에게 사랑 받은 웃음 천사
형제슈퍼 아주머니는 "할머니는 그냥 폐지만 줍는 게 아니라 쓰레기통 청소까지 하신다"고 말한다. '아름다운 마을학교' 어린이집 선생님들도 "아이들과 산책하다가 만나면 언제나 반갑게 맞아주신다"고 말했다. 그래서 한번은 아이들과 함께 옆 마을에 있는 절까지 나들이를 다녀왔다. 선생님들이 하루 쉬고 아이들에게 시간을 내달라고 요청했고, 할머니가 기쁘게 받아들였다.
폐지를 줍고 난 뒤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는 배려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이웃끼리 흔하게 다투는 꺼리가 주차 문제와 더불어 쓰레기 문제라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분리해서 버리는 살짝 귀찮은 일을 눈 감아버렸다가 주변 사람들과 크게 싸우게 된다.
할머니 처지에서는 폐지만 가지고 가면 그만이지만 쓰레기를 내다놓는 주변까지 정리하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마을 사람들이 그냥 가시라고 하는데도 할머니는 쉽게 떠나지 않는다.
이렇게 덕을 쌓았기 때문에 이웃들은 할머니를 더 챙겨준다. 버리는 종이가 많이 쌓이면 일부러 할머니에게 전화를 거는 사람이 제법 된다. 먹을거리를 챙겼다가 건네는 이웃도 있다. 지나가는 아이들도 할머니에게는 큰 소리로 인사한다. 김 할머니는 하루 벌어 하루 약값으로 쓰는 고단한 삶을 살지만 이웃들이 따뜻하게 대해줘서 행복하다고 말한다.
손자들에게 용돈 쥐어주려 오늘도 폐지 모아
요즘 경기가 어려워서 그런지 폐지를 줍는 사람이 김 할머니 말고도 몇 사람이 더 늘었다. 대부분 나이가 지긋한 할머니, 할아버지다. 경쟁자가 생겨서 그런지 할머니는 더 부지런해졌다.
새벽기도를 끝내는 대로 6시부터 수레를 끌고 마을을 돈다. 집에 들어와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조금 쉬었다가 다시 일하러 마을을 나선다. 전화를 걸어 폐지 가져가라는 사람이 있으면 밥을 먹다가도 달려간다.
할머니는 바쁘게 살아서 외로울 틈도 없을 것 같지만, 혼자 밥을 먹거나 잠이 오지 않을 때 손자들과 아들, 딸들이 생각난다고 한다. 10년 전까지 큰아들 가족과 함께 살았지만, 이제는 따로 사는 게 편하다.
손자들이 중학생이 되어서 더는 할머니 품이 필요 없다는 걸 아는데도 같이 있는 게 짐이 되는 것 같아서 싫었다. 장사하는 둘째아들네도 있고, 목회하는 막내아들에게 가도 살 수 있다.
그래도 할머니는 고향 같은 인수동에 살면서 떨어져 사는 자식들을 그리워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가끔씩 찾아오는 자식들과 손자들을 만나는 재미로 위안을 삼는다. 어린 손자들에게는 용돈이라도 쥐어주려면 열심히 폐지를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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