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대로' 서울시교육청은 9월 2일 서울의 고등학교 학교군 조정 방안을 행정 예고했다. '예정대로'라 함은, 지난 2007년 2월의 고교선택제 발표 당시 학군 조정을 이번 달에 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예정대로 한다면, 아마도 다음 달에는 2010학년도 고교 입학전형 계획을 발표할 것이다.
2010년부터 고교선택제가 실시된다. 지금의 중2 학생들부터 그 대상이 된다. 이를 위해 서울시교육청은 기존의 학군을 일반학교군 11개, 단일학교군 1개, 통합학교군 19개로 조정한다고 밝혔다. 그 다음에는 서울시 전체에서 2개 학교, 자기 동네에서 2개 학교 등 4개 학교를 지원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그러면 1단계, 2단계, 3단계로 학교가 추첨 배정된단다.
뭔가 어지럽다. 하지만 복잡해보이는 이 과정은 컴퓨터가 수행하는 거다. 학생과 학부모 입장에서는 서울 전역에서 2개 고교, 자기 동네에서 2개 고교를 선택하여 지원서에 기입하면 그만이다. 나머지는 컴퓨터가 알아서 한다. 그러니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다. 서울 전체를 놓고 선지원 후추첨하는 것이니, 지원한 4개 학교 중 어느 학교에 배정되는지만 확인하면 된다.
선지원 후추첨은 평준화 해체가 아니다선지원 후추첨은 지금도 평준화 지역에서 실시하고 있는 방식이다. 평준화에 대해 획일화 등으로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데, 획일화는 교육과정 정책 때문으로 평준화와 별 관계가 없다.
평준화는 '통합전형'이다. 학교별 입시가 아니라 지역 차원의 통합전형이다. 현행법에서도 "고교 입학전형은 학교장이 실시하지만, 교육부가 정하는 지역은 교육감이 실시한다"(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77조)로 되어 있다. '교육감이 고등학교 입학전형을 실시하는 지역에 관한 규칙'이라는 법령도 있다. 이처럼 평준화는 학교별로 선발하는 게 아니라 지역 차원에서 통째로 고교입학자격자를 판별하는 통합전형이다.
평준화의 방식은 그동안 세 가지였다. 고입 연합고사가 한동안 대세였는데, 점차 무시험전형이 많아진다. 무시험전형 안에서도 '그냥 배정'과 '선지원 후추첨' 방식 등 2가지다. 요즘은 선지원 후추첨을 많이들 이야기한다.
그런데 서울시교육청의 고교선택제는 선지원 후추첨 방식이다. 4개 학교를 먼저 지원하고, 그 중 하나의 학교로 추첨배정받는 거다. 서울이 워낙 커서 뭔가 대단한 것처럼 보이나, 다른 지역에서 하는 선지원 후추첨과 유사하다. 따라서 서울시교육청의 고교선택제를 곧바로 평준화 해체로 규정지을 수 없다.
문제는 선호학교와 기피학교로 갈리는 고교서열화4개 학교를 선지원하게 되면, 당연히 선호학교와 기피학교로 갈린다. 선호학교는 아마도 강남권 학교가 될 것이고, 기피학교는 열악한 지역의 학교일 것이다. 이렇게 선호학교와 기피학교로 나눠지다보면, 서서히 고교간 서열이 매겨진다.
여기에 2010년부터는 일제고사 성적 등 교육정보가 공개된다. 따라서 학교의 평균 성적이나 미달 학생 비율 등을 기준으로 어디를 지원할지 결정하게 된다. 추가로 일류대에 몇 명을 보냈느냐는 진학 실적까지 제공된다면, 선호학교와 기피학교의 구분이 보다 명확해진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학생이 몰리는 학교와 기피하는 학교가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제대로 된 평준화를 하고자 한다면, 기피하는 학교에 특별 지원해야 한다. 뒤처지는 학교를 끌어올려 전체적으로 교육의 질을 함께 높여야 한다. 그래서 "우리 동네 학교가 좋아졌으면 한다"는 바람이 실현되어야 한다.
하지만 서울시교육청이 지난 2007년 2월 27일에 발표한 '학교선택권 확대 계획'의 내용은 조금 다르다. 내년까지는 기피학교를 지원하지만, 2010년부터는 알아서 살아남아야 한다(자구노력). 그게 여의치 않으면, 교육청이 먼저 학급을 줄이고, 3년이 지나도 별반 나아지지 않으면 학교 이전 등 근원적 대책을 강구한단다. 학교를 옮기거나 폐교시킨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기피학교에 대한 서울시교육청의 대책은 '지원을 하기는 하나, 기본적으로 알아서 자율적으로 살아남아라. 그게 실패하면 문 닫는다'이다. 이때 퇴출되는 학교는, 학교선택제가 시행되고 있는 영미의 사례에 비추어보면, 아마도 구도심이나 열악한 지역의 학교가 되지 않을까 한다.
당연히 학교들은 퇴출되지 않기 위한 경쟁체제에 돌입한다. 그리고 승패를 가리는 것은 학교별 성적과 일류대 진학 실적이다. 이를 위해 앞으로 고등학생은 잠자는 시간을 더 줄여야 한다.
평준화 해체는 강남으로 얼마나 몰리느냐에 달려고교선택제가 대단위 선지원 후추첨으로, 곧바로 평준화 해체는 아니다. 하지만 평준화 해체의 가능성은 항상 열려있다. 이건 강남권으로 예상되는 선호학교에 얼마나 몰리느냐에 달렸다.
서울시교육청이 1·2·3단계 하여 고교선택제를 시행하겠다고 한 이유는 학교가 너무 많아서이다. 학교가 한 20여개 정도였으면 한 번에 선지원 후추첨하면 되는데, 서울의 후기 일반계고교는 200개가 넘는다. 따라서 불가피하게 3단계로 나눠 시스템을 돌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누구나 선호하는 강남권 학교로 몰릴 수밖에 없다. 어쩌면 특목고에 합격한 학생을 제외하고는, 12만명에 달하는 서울의 중학생들 모두가 1순위나 2순위로 모두 강남권 학교를 지망할지 모른다.
특히, 그동안 평준화에 비판적이었던 강북권 학부모의 바람은 대단하다. 강북의 중산층 학부모가 강남 학교나 그 동네의 사교육 환경을 모른 척 하기 어렵다. 예컨대, 서울시교육청이 2006년 12월에 실시한 고교선택제 설문조사에서 강북구와 성북구는 75.6%의 학부모가 찬성 의사를 밝힌 바 있다. 강남구와 서초구 학부모의 36.7%보다 2배가 넘는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강남권 학교로 몰렸을 때, 얼마나 오랫동안 선지원 후추첨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까. 지금도 강남은 학생이 부족하여 인근의 강동과 동작의 학생들이 이동배정된다. 하지만 과연 10%의 이동배정 비율로 충분할까. 이와 관련하여 서울시교육청의 연구팀이 2006년에 수행한 모의실험에서는 비강남학생이 강남으로 배정된 비율이 정원의 7%로, 크게 걱정할 수준은 아니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막상 실전에서도 그렇게 될지는 미지수다. 특히, 강남에 지원한 비강남 학생 중에서 실제 배정된 비율이 공개된다면, 여론은 급전직하 악화될 수 있다. 예컨대 강남 학생은 지원자 대부분이 강남 학교에 가는데, 그 외 지역은 10%도 안되더라는 결과라도 나오면, 서울은 시끄러워진다.
이후 수순은 신자유주의가 발달한 영미에 비추어볼 때, 학교별 입시를 실시하자는 여론이다. "우리 아이는 공부를 잘하는데, 강남이 아니라는 이유로 들어갈 수 없는 게 말이 되느냐"며, "이럴 바에 아예 공정하게 선발시험을 보자"라는 움직임이 등장한다. 그러면 선호학교부터 하나 둘 입시를 본다. ‘통합전형’이 깨진다. 그 순간, 평준화는 해체된다.
슬슬 한국은 대학서열화에 이어 고교서열화의 나라가 될 수도 있다. 대학입시·고교입시·중학입시의 나라가 된다. 이명박 정부를 '20년 전으로'나 '80년대로의 회귀'라고 평가하는데 교육만큼은 그 두 배인 '40년 전으로'나 '60년대로의 회귀'다.
덧붙이는 글 | 송경원은 진보신당에서 교육 분야를 살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