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세제개편안에서 정부가 소득세율을 각 과세표준 구간별로 2%P씩 인하한 목적은 서민과 중산층의 세부담 경감 및 소비진작을 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하나는 거짓말이고, 하나는 침소봉대한 것이다. 그 이유를 밝혀보자.
부자들은 세금 줄면 돈 많이 쓸까, 해외명품 많이 살텐데
우선, 기획재정부는 소득세율 인하로 민간의 가처분 소득이 늘어 소비증가율이 0.5%P 상승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결과, 지난 10년간 2.8%에 불과하던 소비증가율이 5년 뒤에는 6.0%로 상승함으로써 경기활성화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소득세율이 인하하면 가처분소득이 증가하는 것은 당연히 맞다. 그런데, 가처분소득 중 얼마만큼 소비로 이어질 것인지는 소비성향에 따라 좌우되는데, 정부는 소비성향을 0.7로 산정하여 소비증가율을 계산하였다.
소비성향은 소득수준이 높아질수록 낮아진다.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소비량이 많아질수록 소비 1단위 증가시 만족감이 감소한다)으로 인해 소비단위가 많아질수록 한계소비성향은 감소하므로 소비량이 많은 고소득층일수록 평균 소비성향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소득세율 인하로 인한 가처분소득 증가는 소비성향이 낮은 상위 10% 계층에게 극도로 집중돼 있으며, 소비성향이 높은 하위 50% 계층은 대부분 면세자이므로 소득세율 인하 혜택이 거의 없다.
따라서, 소득세율 인하로 인한 가처분소득 증가총액에 전체 평균 소비성향을 적용하여 소비증가율을 산정하는 것은 맞지 않다. 감세혜택을 계층별로 구분계산하고 여기 계층별 평균소비성향을 적용하여 소비증가율을 산정하는 것이 맞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2007년도 가계수지동향에 의거하여 소득계층 5분위별로 [소비지출÷소득]의 식으로 계층별 평균소비성향을 구한 결과 다음과 같다.
1분위(하위 20%) : 1.268 (소득보다 소비 지출액이 더 많다)2분위 : 0.8443분위 : 0.7484분위 : 0.6685분위(상위 20%) : 0.548소득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평균소비성향이 낮아지더니 상위 20%의 평균소비성향은 하위 20%의 반에도 못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지난 2004년에 한나라당은 각 과세표준 구간별로 3%P씩 소득세율을 인하할 것을 주장했다. 그 때 나는 한나라당 주장에 따라 감세가 이루어질 경우의 소득계층별 감세혜택을 구했다. 2002년 귀속 소득금액을 가지고 계산을 하였기 때문에 현재와 약간 다를 수 있지만 큰 틀의 변화는 없을 것이므로 당시 계산결과를 그대로 적용하도록 하자.
계산 결과, 종합소득세 기준으로 하위 50% 정도는 과세미달자로 혜택이 전혀 없고 상위 10%가 전체 감세혜택의 약87.8%, 상위 10~20%가 약7.6%를 가져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상위 20%인 5분위가 전체 감세혜택의 95.4%를 가져간다는 결론이다.
이 계산결과를 가지고 소득세율 인하로 인한 가처분소득 증가분에 대한 소비성향을 산출하면, 0.554가 된다. 결국, 정부가 소비성향 0.7을 적용하여 예측한 소비증가율은 과대포장된 셈이다.
게다가, 고소득층은 해외소비 비중이 높다. 여행을 해도 해외여행을 주로 하고 술을 먹어도 양주를 주로 먹는다. 이를 고려하면 고소득층의 소비가 내수진작에 주는 효과는 수치로 나타난 평균 소비성향보다 다 낮을 것이다.
상위 10%가 87.8% 혜택... 그 돈으로 복지 좀 하자
만약, 소득세율을 인하하지 않고 감세액(연간 약 4.6조원)을 복지재정으로 지출할 경우 내수진작 효과는 어떠할까?
조세연구원의 연구보고서 '조세·재정지출의 소득재분배효과(2008. 2)'에서 5조원의 재정지출을 확대할 경우의 소득계층별 가구의 복지혜택 금액을 산출한 바 있다. 그 결과에 의하면, 하위 10%가 재정지출액의 31.6%를 가져가고(가구당 99만2694원), 상위 10%가 6.1%를 가져가는 것(가구당 19만2215원)으로 나타났다.
이 결과를 적용하여 감세 대신 재정지출을 확대할 경우의 소비성향을 구하면 0.967이 나온다. 이는 감세의 경우보다 0.4 이상이 높은 수치이다. 이 결과만 놓고 볼 때 정부가 목표로 하는 소비진작을 통한 경기활성화를 위해서는 감세보다 재정지출이 훨씬 우월한 정책임을 알 수 있다.
사실, 이러한 나의 주장은 과거 재경부에서 이미 인정한 바 있다.
- 감세할 경우 소비성향이 낮은 부유층의 감세혜택이 많아 단기적인 경기부양효과는 크지 않고 정부의 재정적자와 물가상승만 야기할 가능성 큼(Krugman, Samuelson, Stiglitz, ’01년)- 경제성장에 미치는 효과는 감세보다 재정지출 확대가 큼(조세연구원, '01년) ㅇ 조세승수는 0.23(1조원 감세는0.23조원 GDP증가) ㅇ 지출승수는 0.40(1조원 지출확대는 0.4조원 GDP증가)[출처 : '감세논쟁 주요 논점 정리' 5P. 재경부. 2005. 11]감세정책, 88만원 세대 두번 죽인다한편, 기획재정부는 소득세율 인하가 서민과 중산층의 세부담 경감을 위한 것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는데 이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짓이다. 감세로 서민경제를 살릴 수 없음은 상식 있는 학자들은 다 아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 근거로 구간별로 2%P씩 세율을 인하하는 경우, 최저 과표구간은 8%에서 6%로 세율이 줄어드니 25% 감소 효과가 있고, 최고 과표구간은 35%에서 33%로 세율이 줄어드니 5.7% 감소 효과에 불과하다는 것을 들고 있다. 그리고, 그 증거로 2009년도 4인 가족 기준 2천만원 급여 가구는 세부담이 10만원에서 6만원으로 줄어들므로 43.2%의 감세효과가 있고, 1억원 급여 가구는 세부담이 1351만원에서 1252만원으로 99만원이 줄어들므로 7.3%의 감세효과가 있다는 계산결과를 내세우고 있다.
형식논리의 극치이다. 얼핏 들으면 그럴 듯 하나 진실을 교묘히 숨기고 있다. 이전 기사('2천만원 벌면 4만원 감세, 1억원 벌면 99만원 감세')에서 언급하였지만 실제 감세혜택의 효과는 '감세액÷급여액'으로 구해야 한다. 이렇게 구하면 1억원 연봉자의 감세혜택은 2천만원 연봉자의 5배에 해당한다.
참여연대의 주장에 의하면, 상위 3.6%가 감세액의 58.5%를 가져간다고 한다. 필자의 계산으로는 상위 10%가 87.8%를 가져간다. 그리고, 하위 50%는 혜택이 거의 없다.
또한, 이번 세제개편안에서 근로소득공제액의 최하구간 500만원이 400만원으로 줄어들어 저소득층 1인가구는 오히려 세부담이 늘어난다는 사실은 밝혀지고 있지 않다. 가장 대표적으로 피해를 보는 계층은 88만원 세대인 청년 비정규직노동자들이다(청년 노동자는 대부분 세법상 1인 가구를 구성하고 있다).
88만원 세대의 평균 연봉은 1천만원에서 1100만원 정도가 되는데 세제개편 전과 후의 세부담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편의상 근로소득세액공제를 고려하지 않고 산출세액까지만 계산한다).
- 연봉 1천만원인 경우:<개편 전> 연급여 1000만원 - 근로소득공제 750만원 - 인적공제 및 표준공제 200만원 = 과세표준 50만원. 산출세액 = 50만원 X 8% = 4만원<개편 후>연급여 1000만원 - 근로소득공제 650만원 - 인적공제 및 표준공제 250만원 = 과세표준 100만원. 산출세액 = 100만원 X 6% = 6만원- 연봉 1100만원인 경우:<개편 전>연급여 1100만원 - 근로소득공제 800만원 - 인적공제 및 표준공제 200만원 = 과세표준 100만원. 산출세액 = 100만원 X 8% = 8만원<개편 후>연급여 1100만원 - 근로소득공제 700만원 - 인적공제 및 표준공제 250만원 = 과세표준 150만원. 산출세액 = 150만원 X 6% = 9만원기획재정부의 감세 효과 계산 방식대로 하면 연봉 1천만원인 경우 세부담이 무려 50%가 늘어나고, 1100만원인 경우에는 12.5%가 늘어난다. 연봉 900만원인 경우에는 개편 전에는 세부담이 없다가 개편 후에는 3만원의 산출세액이 새로 생기니 세부담 증가 비율은 무한대이다. 연봉 1200만원 수준에서 비로소 세제개편 전과 후의 세부담이 같아지고, 그 이후는 연봉이 많을수록 세제개편의 혜택도 커진다.
88만원 세대는 기성세대의 잘못된 고용정책의 가장 큰 피해자들이다. 이제는 기성세대의 잘못된 조세정책에 의해서도 피해를 받게 되었다. 불쌍한 88만원 세대.
전체 근로소득자의 0.4%가 8800만원 이상 수입
소득세 개편 안에서 억지 논리의 백미는 소득세 과세표준 8800만원 이하를 중산서민층으로 분류한 점이다. 과세표준은 각종 공제액을 제외한 후의 금액이므로 실제 소득은 이 보다 훨씬 많다. 이렇게 분류한 이유는 중산서민층이 소득세 개편의 가장 큰 수혜계층임을 주장하기 위해서이다.
근로소득자 중 2006년 기준으로 과세표준이 8800만원이 넘은 사람은 5만3722명으로 근로소득세 연말정산 신고를 한 1259만4596명의 0.4%에 불과하다. 종합소득자(자영업자)의 경우, 2006년 기준으로 과세표준이 8800만원을 초과하는 사람은 9만6853명으로 종합소득세 납세인원 436만3257명(2004년 기준)의 2.2%에 불과하다.
기획재정부의 분류대로 하면 근로자의 0.4%, 자영업자의 2.2% 만이 상류층이고 나머지 근로자의 99.6% 자영업자의 97.8%는 중산서민층이 된다. 도대체 어느 나라에서 이런 식으로 계층 분류를 하는가?
우리나라의 GDP 대비 개인소득세 비중(2005년 기준)은 3.4%로 OECD 국가 중 슬로벡공화국 다음으로 낮으며 OECD 평균 9.2%의 37% 수준에 불과하다. 이처럼 낮은 수준의 개인소득세를 또 다시 대폭 낮추려니 합리화를 위해 억지 논리를 동원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번 소득세 개편 안을 통하여 상위 1% 계층을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이명박 정부의 깊은 부자(富者) 사랑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부유층의 곳간이 가득 채워져야 비로소 중산서민층에게 돌아갈 것이 있다는 소위 '떡고물 경제'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