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대가 있었다. 나라를 잃은 민족이 외세의 압제 속에서 살고, 그 나라를 찾고자 했던 이들이 이국의 이름 없는 뒷골목과 산천을 떠돌던 한 시대가 있었다. 또 그 시대에 외세에 빌붙어 살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 시대가 끝나자 그들은 부역자라 불리게 된다. 그러던 한 시대가 지나고 압제 받던 이들이 나라를 찾고 이국에서 떠돌던 이들이 돌아온 이 땅은 얼마나 순결했던가?
아니었다. 예전의 순사는 여전히 순사이고 예전의 시인은 아직도 시인이고 예전의 판검사는 여전히 판검사였다. 오히려 더 높은 자리로 더 화려한 선구자적 개척자의 영예의 뒷전으로 나아갔다. 적어도 해방된 땅의 반쪽에서는 부역은 오욕이 아니라 생존하기 위한 선택 정도로 묻혀갔다. 숨길 수 있으면 숨기고 덧씌우고 싶으면 덮었다.
부역을 청산하지 못한 민족은 전쟁을 겪고 독재를 겪고, 참으로 굴곡진 현대사를 살아내게 되었다. 부역자들은 잃어버린 땅을 찾아 전국방방곡곡을 쑤시고 다니고 순수시인의 월계관을 머리에 쓰고 학계에 군림했다. 부역자의 자손들은 여전히 축재하였던 시대의 후광을 등에 업고 또 다른 시대의 리더집단으로 성장해갔다.
끝내 이국 땅에서 귀국하지 못한 이들은 어느 날 갑자기 열차에 끌려 타고 대륙을 횡단하여 이름도 낯선 어느 언 땅에서 괭이질을 하고 그 땅에 묻히고 세월이 흘러 어느 부역자의 아들이 장관이 되어 말한다.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버님이) 일제시대 때 어려운 생활에서 하나의 직업으로 선택한 것."
부역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장관이 된다. 그것도 교육부 장관이 된다. 압제의 시대를 호령했던 어떤 민족이 이 소리를 듣고 한 마디 한다. "조선의 새 교육부 장관 아버지가 우리에게 부역했지만 이 사실을 하나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데, 왜 독도가 조선 땅이냐?" 과장이라고 말하고 싶을는지 모른다. 그래도 그렇게 누가 묻는다면 나는 부끄러워질 것이다.
작가 이문열을 평하는 글에서는 그의 부친에 대한 애증이 하나의 카테고리로 등장한다. 좌익활동을 했었던 부친의 과거가 그에게 어떤 짐이 되었는지, 그의 현재의 태도와 문학을 놓고 이야기할 때 이는 중요한 단서로서 읽힌다. 얼마 전 끝난 드라마 이산에서 세손이 할아버지 왕 영조에게 답한다.
"나는 돌아가신 사도세자의 아들입니다."
어떤 사실에라도 연결 고리를 만들고 싶은 평론가의 그릇된 인식이었거나 그냥 드라마일 뿐이라고 치부해도 좋지만 그런 아버지의 부역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이 장관이 된다는 사실에는 문제가 있다. 또 다른 압제의 시절이 와서 그 시절에 본인이 생활이 어려워지면 아무 부끄럼 없이 시대에 부역할 사람이 아닌가.
연좌제를 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물어야 한다. 그것이 극복해야 할 문제이었으면 당사자는 어떻게 이 사실을 극복하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 하물며 부친의 부역이라는 사실에는 더욱 분명하게 물어야 한다. 아무리 아버지였더라도 잘못된 행위에 대해서는 따져 묻고 본인의 답을 들어야 한다. 그러라고 있는 것이 청문회라고 믿는다.
인사 청문회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자질을 검증하는 것이다. 자질은 그가 걸어온 경로와 그의 사상과 신념을 포함한다. "민족정기를 가르치는 교육부 수장의 부친이 일제 순사였다는 것을 국민들이 정서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나?"라고 물은 질의는 정당했다. 여기에 대한 답은 또 솔직했고 효자다웠다. 그러나 그러려면 효자로만 남아있으면 된다. 누가 효자 하지 말라는 것인가, 장관 하는데 문제가 있다는 것이지.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
헌법 13조 3항의 이 조항은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않는다는 규정일 뿐, 본인이 부역한 대가로 얻은 경제적 배경을 가지고 공부하고 성공하였던 것은 그냥 아버지라는 친족의 죄업으로 남겨두더라도 그가 과연 올바른 역사인식과 잘못된 과거에 대한 통절한 반성 위에 서 있는가를 묻는 질문과는 관계가 없다. 이것이 처우의 문제였던가. 검증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인이었든 신기남 전 의장의 부친이었든, 여든 야든 무엇이든 묻고 그에 대한 답을 요구하는 것은 적법한 검증의 절차일 뿐이다. 이 질문이 치죄였는가?
압제의 한 시대, 눈만 돌리면 순사를 할 수 있었던 한 가장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역하지 않았다. 가장이 부역하지 않았으므로 가족은 가난했고 불행했다. 아들은 공부할 수 없었으며 광복이 되어서도 더 높은 자리에 앉아있는 부역 순사가 싫어 경찰이 되지 못했던 한 가장의 불행은 계속 됐다. 그래서 가난은 대물림 되었고 현재까지 이른 가족사가 없다고 누가 단언할 수 있는가. 반성하란 말이다. 그거까지는 할 수 있어야 대한민국의 장관이 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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