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라지를 길경이라 한다. 오랜만에 노래 하나 불러볼까.
"도라지 도라지 백도라지 /심심산천에 백도라지 /한두 뿌리만 캐어도 /대광우리에 철철 넘누나 /에헤요 에헤요 에헤야 /어여라 나다 지화자 좋다 /네가 내 간장 스리살살 다 녹인다"양지쪽 산비탈 노간주나무 한두 그루 보이고 마사토가 섞인 약간은 마르고 척박한 땅에 아직도 산도라지를 만날 수 있다. 숲이 차서 많지는 않다. 연보랏빛이 도는 푸른색 도라지가 흔하지만 더러 백도라지가 있어 꽃으로 보기에도 좋다. 무리지어 자라는 도라지 밭을 보고 있노라면 여름 더위 잊기에 안성맞춤이다.
기관지 관련 약초로 쓰고 무침, 볶음, 튀김으로 우리와 친근했던 도라지. 지난 2007년 봄 처가에서 얻어온 씨를 30년 묵은 밭을 일궈 1000㎡(약 300평) 가량 심었다. 2년만 키워 산으로 옮기기 위해서다. 가을엔 나만 아는 산등성이를 따라 할머니 두 분과 길을 잃는 행운을 얻어 한나절이나 뿌렸다. 여기에 들어간 씨앗만 족히 두 말은 되었을 거다.
올해 또 욕심이 나서 본격적으로 심는 양을 늘리기로 했다. 숲가꾸기를 한 산에 작년에 키운 도라지를 정부미 포대로 스무 가마를 캐서 해발 500미터 백아산(화순 810m) 자락에 옮겼다. 씨앗은 다섯 말이 넘는다. 총 20000㎡(약 6000평)에 흩어 뿌렸다. 바람이 씨앗을 날리고 비가 종자를 실어서 땅에 안착시켰다. 갈퀴질도 하지 않았는데 무수히도 올라온다. 새싹 천지다.
요약하면 묵혔던 밭에 2년생과 1년생 12000㎡(약 3600평), 산에 50000㎡(약 15000평)이니 대략 2만평에 육박하는 너른 면적을 확보했다. 산채원에서 조성한 200여 가지 산나물 가운데 도라지도 무시 못 할 강자다.
당장 내년부터 산자락엔 도라지꽃 무리가 장관을 이룰 게다. 사람 눈을 즐겁게 함은 물론이요, 캐먹어도 될 만큼 자란다. 때론 가장 척박한 땅만 골라 자연 그대로 자라도록 7, 8년 뒀다가 약효가 최고조에 이르면 산양삼(장뇌삼) 가격 못지않게 값을 받을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좋은가.
2008년 상반기 10만평(약 340000㎡=34ha)이 넘는 산에 산나물을 심으면서 여름이 지나자 우린 잡초와 칡넝쿨을 제거하는 한가함을 누렸다. 많게는 다섯 번, 적게는 한두 차례 손길이 닿았지만 여전히 말끔하지는 않다. 하루하루가 일로 쌓여있는 상황에서도 결코 빠트리지 않고 시도한 일이 있다.
사람들이 "백도라지! 백도라지!" 하니까 왠지 남다른 데가 있지 않겠는가 싶었다. 노란 노끈을 잘라 꽃이 필 무렵 따로 묶어뒀다. 흰 것만 따로 골라 심어볼 생각에서다. 인부 다섯 명을 붙여 온종일 일을 하였다. 이제 베어도 될 때가 되었겠지. 백도라지 씨앗만 따로 분양하는 재미도 한번 누려볼 참이다.
사실 그제부터 어제까지 도라지 밭 씨앗을 통째로 사서 도라지 씨앗 꼬투리를 베었다. 농민에게 맡겨두고 이웃이 한 되, 두 되 달라면 확보해야할 씨앗은 금방 동이 나고 남은 건 얼마 되지 않은 게 세상 이치 아닌가. 베어서 말리고 털기까지 산채원이 하고 계산은 그 때 가서 하기로 했다. 상호 신뢰가 쌓여있지 않으면 안 될 일이지만 흔쾌히 동의한 주인이 고맙다.
백도라지 따로 베어놓고 나머지 대부분을 베려면 오늘 하루 동안 열 명으로도 부족하겠다. 산나물 단지 조성을 위한 초창기엔 종자와 모종을 분양하는 것이 오히려 수확에서 얻는 소득보다 클 수도 있음이다.
도라지 씨앗만 벌써 15만평(45ha, 약 450000㎡) 주문이 들어왔으니 대체 우리가 대야 할 양이 얼마여야 하며 과연 채종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부족하면 다른 농가에게 하소연하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쌀쌀해지니 산도라지나 몇 뿌리 캐와 돌배와 우엉 뿌리에 대추 넣고 푹 고아서 먹어야겠다.
덧붙이는 글 | <잃어버린 고향풍경>을 연재하다 3년 전 산나물 단지를 조성하기 위해 전남 화순 백아산 자락으로 귀향하였다. 현재 곰취, 곤달비, 곤드레, 취나물 따위 200여 가지 산나물을 20만 평에 심어 도시 친구들과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산채원 촌장 김규환으을cafe.daum.net/sanchaewon에서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