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어머니를 따라 자갈치 시장에 가면, 어머니는 시장 한 구석에 있는 좌판으로 나를 데려가셨다. 키 작은 의자와 초라한 탁자가 있는 곳. 그곳에선 두투라 불리는 음식이 너저분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두투와 반드시 함께 있는 것이 장어묵이라는 음식이었다.
우선 장어묵을 한 입 베어 무니 물컹하며 씹히는 맛이 너무 이상하다. 비릿하면서도 들큼한 맛이 절로 느껴진다. 순식간에 바닥에 뱉어낸다. 이걸 도대체 무슨 맛으로 먹는단 말인가. 장어묵에 속은 입맛은 슬며시 두투라 불리는 이상한 음식에 호기심이 동한다.
배가 고픈데, 저것은 조금 괜찮을라나. 젓가락으로 살짝 집어 먹어본다. 우우. 입안에 감도는 비릿한 냄새. 아무런 맛도 없이 오도독 씹히는 맛. 도대체 이걸 어른들은 무슨 맛으로 먹을까? 그러나 옆에 앉은 중년의 사내들은 소주 한 잔 입에 털어넣고 두투와 장어묵을 초장에 듬뿍 찍어 입으로 가져간다. 맛있게, 너무나도 맛있게 먹는 그 모습이 신기하다.
내가 두투와 장어묵의 참맛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한참 지난 후였다. 대학생이 되어 친구들과 가끔 자갈치 곰장어를 먹으러 가다가 두투와 장어묵을 다시 먹게 되었다. 이게 아직도 팔리고 있는가? 10년만에 다시 만나 두투와 장어묵은 신기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친구 한 놈이 두투와 장어묵을 잘도 먹었다. 소주 한 잔 입에 털어놓고, 캬아 하는 소리를 내며 두투와 장어묵에 초장을 듬뿍 찍어 먹는다. 나도 따라서 소주 한 잔 먹고 두투를 입에 넣어본다. 오오, 이럴 수가 오도독 씹히는 맛이 10년 전의 그 맛과는 천지 차이다.
세상에 이런 맛도 있었구나. 신기한 기분에 장어묵을 초장에 듬뿍 발라 먹어본다. 도토리묵처럼 물렁하게 씹히는 맛이 절로 느껴진다. 그러면서 입안에 들큼하면서도 꼬들꼬들한 맛이 몰려온다.
그날 친구들과 우리는 두투와 장어묵으로만 소주 5병을 비워냈다. 가난하던 학생 시절. 무슨 돈이 있어 회를 먹겠는가. 그저 좌판에서 두투와 장어묵으로 빈약하지만 풍성한 술자리를 가질 수밖에.
부산 자갈치에 가면 수많은 음식들이 산처럼 쌓여 있지만 반드시 먹고 가야 할 음식은 단연코 두투와 장어묵일 것이다. 두투란 상어 내장을 삶아서 만든 것이고, 장어묵은 꼼장어 껍데기와 그 알을 압축하여 만든 음식이다. 둘 다 자갈치 시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부산의 토속음식인 것이다.
자갈치 시장에도 등급이 있다. 돈 좀 있는 축들은 횟집에 가고, 조금 돈이 적은 이들은 곰장어집에 간다. 그리고 돈이 조금밖에 없는 이들은 두투와 장어묵을 먹고, 정말 돈이 없는 이들은 돼지껍데기를 먹으러 간다. 그러고 보니 두투와 장어묵은 끝에서 2등은 하는 음식인 셈이다.
사실, 두투와 장어묵은 그 자체로는 별로 맛이 없다. 두투는 오도독 씹히는 맛으로 먹고, 장어묵은 초장 맛으로 먹는다고 보면 딱 알맞다. 그러나 이런 음식이어도 두투와 장어묵은 빈약한 서민의 술 안주로는 제격이다. 약간 비린 것이 흠이긴 하지만 소주라는 약주가 있어 그 비린내를 지워주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두투와 장어묵에는 무조건 소주가 궁합에 맞다.
부산에 오면 반드시 먹어야 할 토속음식, 두투와 장어묵을 절대 놓치지 말기를. 이 음식을 파는 곳은 신동아 시장 건물 뒤에 펼쳐진 좌판이다.